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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진달래꽃

한국대표시인 시선 4
소장종이책 정가10,000
전자책 정가40%6,000
판매가6,000

진달래꽃작품 소개

<진달래꽃>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소월시의 매혹!
휴먼앤북스의 〈한국대표시인 시선〉 네 번째 시선집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발간되었다.
해마다 한국인의 애송시로 선정되어 온 「진달래꽃」은 우리의 민요적 리듬으로 애한을 노래한 김소월의 대표작이다. 김소월은 1925년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에 127편의 시를 모아 시집 『진달래꽃』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 시집에 실린 시들 가운데 상당수가 애송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시들은 우리 고유의 민요적 율격에 미묘한 변주를 주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시의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더하여, 극적인 상황 설정과 절묘한 역설의 언어를 통한 사랑과 이별의 정서는 한국인에게 보편적이면서도 감동적인 호소력을 발휘한다. 결여와 간극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다다르는 소월시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이 시선집은 「진달래꽃」를 비롯해, 「초혼」,「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등 김소월의 대표적 애송시 70편과 책임편집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인환 교수의 상세한 해설을 담고 있다. 그의 해설을 통해 당시 문학사의 흐름과 더불어, 소월시의 극적인 장면 전개와, 에로스로 가득 찬 몽환적 분위기 등 그동안 독자들이 놓치기 쉬웠던 소월시의 새로운 면모와 진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저자 프로필

김소월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02년 8월 6일 - 1934년 12월 24일
  • 학력 도쿄대학 상과
  • 경력 동아일보 정주지국 설립
  • 데뷔 1920년 시 '낭인의 봄'
  • 수상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1981년 금관문화훈장

2014.11.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김소월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ㆍ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목차

제1부
먼 후일(後日)
풀 따기
옛니야기
님의 노래
님의 말씀
님에게

꿈꾼 그 옛날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두 사람
못 잊어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하늘 끝
만리성(萬里城)
수아(樹芽)
부모(父母)
애모(愛慕)
여자(女子)의 냄새
만나려는 심사(心思)
설음의 덩이
귀뚜라미
바다가 변(變)하야 뽕나무 밭 된다고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할까 보냐
부부(夫婦)
나의 집
물마름
들돌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있었더면
밭고랑 우헤서
합장(合掌)
묵념
무덤
찬 저녁

제2부
초혼(招魂)

개여울
가는 길
왕십리(往十里)
원앙침(鴛鴦枕)
산(山)
진달래꽃
삭주구성(朔州龜城)
접동새
산유화(山有花)

제3부
꽃 촉(燭)불 켜는 밤
부귀공명(富貴功名)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금(金)잔듸
달맞이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고적(孤寂)한 날
장별리(長別里)
꿈자리
나무리벌 노래
옷과 밥과 자유(自由)
돈과 밥과 맘과 들
해 넘어 가기 전(前) 한참은
돈타령
제이, 엠, 에쓰
산수갑산(山水甲山)
고향(故鄕)
상쾌(爽快)한 아츰
박넝쿨 타령(打令)
가시나무
봄과 봄밤과 봄비
인종(忍從)

해설ㅣ김소월의 시적 여정 - 김인환
김소월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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