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그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
<화첩기행>의 화가 김병종 글,
뉴욕 타임스 객원기자 김남식 사진
• 삶의 속도와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책 •
• ‘집’이 마련해준 행복에 대한 이야기 •
나무 집이 마련해준 작고 소담한 행복의 순간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20년간 마음속에 그리다 짓고 살게 된 집이 있다. 그 집에 대해 쓴 이 책은 그러나 ‘집 잘 짓는 법’이나 ‘집 잘 꾸미는 법’을 담고 있지 않다. 대신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작은 나무 집 한 채를 쌓아 올리는 과정과, 그렇게 지어진 집의 툇마루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느낀 작고 소담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김병종의 『나무 집 예찬』. 저자가 예찬해 마지않는 ‘나무 집’은 우리 옛집 ‘한옥’의 다른 이름이다. 저자에게는 ‘콘크리트 아파트’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김병종의 글과 함께, 뉴욕 타임스 객원 사진기자인 김남식이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품 안에서, 아침, 오후, 저녁, 밤, 그리고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작은 한옥 한 채의 표정을 담아냈다. 한옥에 살기를 꿈꾸지 않는다 해도, 조금쯤 쉬어가고픈 이들에게 ‘시간을 늘려’ 살아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광속의 시간에 저항하고 싶다면,
나무 집으로 갈 일이다
『나무 집 예찬』은 ‘집’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책 읽을 시간도, 추억할 시간도, 꿈꿀 시간도 빼앗겨버린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세상에 갈증을 느끼며, 저자는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시골에 집을 짓고 들어앉은 문필가 웬델 베리의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모두가 웬델 베리가 되어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으며(그럴 용기도, 여유도 없기에), ‘번쩍번쩍’ 지나가버린 생애의 시간들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는 ‘광속의 시간’에 맞서 자신의 속도를 되찾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여유도 없는 이들을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나무 집으로 가보는 것, ‘햇빛과 바람과 빗방울의 시간 쪽으로 눈과 마음을 돌려보는 것’이다.
천천히 새벽이 열리고 아침이 오기까지 시간은 더디 오고 더디 간다. 창호에 햇살이 푸짐하게 비쳐 오기까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조반을 챙겨 먹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한 번 하고 와도 점심때까지는 턱없이 멀다. 장터에 가서 국밥을 사 먹고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가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가지고 들어온다. 산그늘이 내리고 실내의 빛이 나무 틈으로 서서히 빠져나가고 나면 평화로운 저녁이다. 도시의 삶에서는 증발되어버린 지 오래인 저녁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_<프롤로그>, 16쪽
마당의 풀을 뽑고 세숫대야에 물을 떠 툇마루에 앉아 손을 닦고 그 물을 마당에 버리고 돌아서서 하늘을 보는 것도 그곳에서는 하나의 ‘일’이었다. 나의 모든 행위는 즐겁게 퇴행하기 시작했다. _<달빛과 은행나무>, 48쪽
그런데 왜 한옥을 ‘나무 집’이라 하는가. ‘한옥’이라 하면 ‘옛집’, ‘전통의 미’가 먼저 떠오른다. ‘나무 집’이라고 하면 그보다는 ‘자연’이라는 의미가 더 강해진다. 전자가 ‘집’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면, 후자는 그 집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 집으로 가자’는 것은 그러므로 ‘삶의 방식을 되돌리자’는 말인 것이다.
나무 틈으로 비쳐든 석양, 어둠 속에 섞여 있는 박명(薄明)…
집이 그림이 되는 순간이 있다
아름다운 집을 이를 때 ‘그림 같은 집’이라고 한다. 저자는 흔히 건물의 외관을 떠올리게 되는 이 표현을 조금 바꾸어 ‘집이 그림이 되는 순간’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1부 <인연으로 쌓아 올린 집 한 채>에서는 시절과 인연을 좇아 한옥 한 채를 지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써 내려갔다. 처음 한옥을 갖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 순간, 집터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 목수, 철물장이 등 ‘말 없는 실천가들’의 집짓기를 지켜보며 느낀 신선한 감동 등 따뜻한 추억들이 이어진다.
2부 <가을의 빛>, 3부 <눈 온 날 오후>에는 시간을 들여 지은 나무 집에서 ‘참 좋다’ 하고 느낀 행복의 순간들을, 계절과 시간에 따라 나누어 담았다. 가을 아침, 기왓장 위에 툭툭 떨어져 있는 잘 익은 모과를 보며 ‘방하착(放下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을 생각하고, 눈 온 날 오후,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며 ‘허다한 죄의 얼룩을 덮어주려는 신의 배려’를 생각한다. 집과 풍경을 통해 우리네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사진은 뉴욕 타임스 사진부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남식이 일 년여의 시간 동안 공들여 찍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아낸 듯 담백하면서도 햇빛과 바람이 깃든 나무 집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천천히 넘겨 보다보면 휴식이 된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힘들고 팍팍한 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늙은 은행나무’, 잠시 숨을 돌리며 ‘하냥 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좁다란 툇마루가 간절하다.
책 속에서
힘들고 팍팍한 날에 뒷마당의 그 늙은 나무 아래로 가면 나무는 쏴아 하는 바람 소리를 머금은 채, 괜찮아, 괜찮아, 이 바람처럼 다 지나가고 만다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며 깨끗한 햇빛에 눈길을 주고 있는 사이, 그 조용한 바람 소리는 어느덧 가슴까지 시원하게 쓸어주곤 했다. 늙은 나무 아래 앉아, 나는 그 옛날 어머니가 배앓이하는 어린 나의 배를 쓸어주시면서 희미하게 무슨 노래인가를 혼자 부르시던 때의 그 달콤한 위로감과 평안함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 나무가 사람을 치유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곳의 늙은 은행나무를 대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_<달빛과 은행나무>, 44~45쪽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는 집이다. 숨소리와 말소리가 스며 있는 집, 체온이 어리고 세월이 녹아드는 집,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는 집, 해가 뜨고 석양이 지는 것이 바라보이는 집, 시간이 고이는 집, 창호에 어리는 댓잎과 하늘하늘 지는 꽃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집, 아아, 이것이 집이다.
아, 언젠가 나도 이런 집을 한 채 지을 수 있다면……. 사회 비판적 의식의 날을 팽팽히 세우고 있는 고학생 형편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날, 아름다운 한옥 한 채에 대한 꿈이 그만 내 마음을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말았다. _<고요한 황홀>, 63~64쪽
사람의 말이 아닌 사물의 말, 예컨대 나무의 말, 돌의 말, 흙의 말, 바람의 말 사이에, 혹은 앉고 혹은 서서, 그것들이 서로 조립되고 서로에게 지탱하며 하나의 집이 이루어지는 것을 몰두하여 구경했다. 난무하는 언어들로부터 비켜선 그 몇 달은 내게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자 학습의 시기였다. 비로소 왜 그 많은 종교 서적들에서 말을 경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말이 아닌 노동의 신성함을 알게 된 것이다. 참선이나 수행을 통한 말 없음과 말 줄임이 아닌, 노동에 의해 언어가 사라져버린 그런 경지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_<인연으로 쌓아 올린 집 한 채>,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