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80일이면 된다’고 장담하는 바람에 2만 파운드를 걸고 여행에 나선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와 프랑스 출신의 용감하고 선량한 하인 파스파르투가 세계를 무대로 펼치는 생동감 넘치는 모험담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예리한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들을 발표해 시대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손꼽히는 쥘 베른의 대표작이다. 이 이야기는 1872년 11월 6일부터 12월 22일까지 프랑스 일간지《르 탕》에 연재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듬해인 187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뒤 지금까지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다양하게 각색되어 전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필리어스 포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한 계획을 세워 여행을 시작하지만, 때마침 영국은행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픽스 형사에게 끊임없이 추적을 당한다.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수많은 사건과 장애에 부딪치는데, 모든 이동 수단과 오만 가지 탈것을 이용하고 뛰어난 지략을 발휘해 난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간다. 수에즈에서 인도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80일간의 여정에는 기막힌 반전을 꾀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득 담겨 있다. 또한 풍부하고 치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이국적인 풍경과 지리, 문화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매력적인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와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들이 세계 일주를 하는 80일 동안, 아마 독자들도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책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필리어스 포그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는가?
과학적 창의력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미지의 세계를 탁월하게 묘사한,
쥘 베른의 대표작
쥘 베른은 과학기술에 대한 식견과 미래를 향한 직관으로 독자의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함으로써 열렬한 팬을 거느리게 되었다. 특히《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작가 생전에 이미 10만 부가 팔릴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소설은 기술적 측면을 담고 있으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독특한 인물들과 유쾌한 모험을 펼치기 때문에 대부분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쥘 베른 자신은 그저 즐겁게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데 대단히 치밀하고 엄격해,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더구나 그가 쓴 소설의 성격상 과학기술, 지리, 역사, 시사 관련 배경지식이나 사실을 바탕으로 고증하는 작업이 꼭 필요했을 테니, 지금처럼 정보를 수집할 수도 없던 당시에 작가의 수고가 상당했으리라 짐작된다. 실제로 쥘 베른은 방대한 분량의 작가 노트를 썼고, 자신의 소설 속에서 실현되는 일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지 확인하고자 힘썼다.《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쓸 때도 실제로 자기가 세계를 한 바퀴 돌기로 작정한 것처럼 일정과 교통편 등을 챙기고 여행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상상했다고 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정확하고 풍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쓴 쥘 베른의 소설은 사람들,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나이가 들수록 염세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집필이 너무 고되었던 탓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기상천외하지만 허무맹랑하지는 않은 것을 쓰려고 했던 쥘 베른의 노력 덕분에, 그의 수많은 상상 중 어떤 것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어떤 것은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생동감 넘치는 모험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미국과 인도의 횡단철도가 완공되고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던 당시의 시대적 관심과 기대에 부응했을 뿐 아니라 흥미로운 인물들을 모험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상반된 것들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독자에게 그가 대단히 부유하고 정확성을 중시하는 영국 신사라는 정보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일주가 시작되면서, 특히 여행 계획이 어긋날 때마다 이 주인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틀을 깨는 행동을 보여준다. 나중에 가서야 그가 항해 경험이 많다는 사실이 암시되지만, 그의 인생 이력은 결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필리어스 포그는 냉정과 열정을, 이성과 충동을 보란 듯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이어 붙인 캐릭터다. 런던을 거의 떠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일정한 보폭으로 걷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집 앞에 산책 나가듯 훌쩍 세계 일주를 떠난다. 익숙한 공간에 대한 집착과 세계를 향한 갈망이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 같다. 루틴을 좀체 벗어나지 않지만, 벗어날 때는 파격적으로 벗어난다. 목욕물 온도 때문에 하인을 해고할 만큼 박정한 면도 있지만, 때로는 스케일이 다른 관대함을 드러낸다. 이렇듯 필리어스 포그의 매력은 어느 한쪽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한다는 점, 어떤 이미지로 고정되기 쉬우면서도 그 이미지를 즉각 배반한다는 점에 있다.
이 부자연스러움을 상쇄하기 위해 생동하고 펄떡대는 인간적인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일까. 파스파르투는 필리어스 포그보다 훨씬 젊고, 활력이 넘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상식과 용기를 지녔다. 그래서 독자는 그다지 인간적이지 않은 주인공보다 이 인물에게 훨씬 편하게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이 있다. 필리어스 포그는 매력적이지만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반면, 파스파르투는 작중 다른 인물들에게만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붙임성이 있다. 파스파르투는 주인에게 충직하지만 고지식하지 않고, 주인을 따라다니지만 실상은 세계 여행을 하는 경험의 주체다.
‘서쪽 말고 동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하루를 번다’는 아이디어가 절묘한 반전이었던 이유는 당시에 날짜변경선 개념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날짜변경선이 생긴 것이 1917년이다.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이 소설에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세계 각국에 대한 묘사도 당시 대중의 수준에서는 이국적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대중의 오락적 취향과 지적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고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이 끝날 미래의 12월 21일을 기다리다
_‘독후감’: 듀나(소설가, 영화 평론가)
쥘 베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마치 영웅의 기원담과 같다. 열한 살의 쥘 베른 어린이는 사랑하는 사촌 카롤린에게 산호 목걸이를 사주기 위해 인도로 가는 원양어선을 탔지만, 나라를 뜨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잡히고 만다. 우리의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약속한다. “오직 상상 속에서만 여행하겠다”고.
《80일간의 세계 일주》는《지구 속 여행》이나《해저 2만 리》와 달리 현실적인 여행 스케줄에 바탕을 둔다. 우주정거장이 한 시간 반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초음속 전투기가 없는 일반 여행자도 일주일 안에 지구를 넉넉하게 돌 수 있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80일은 갑갑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하지만 19세기 말 사람들에게 그 기간은 경이로웠다. 그리고 이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간 승리의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