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사의 위대한 유산
도서관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니네베 왕궁도서관의 쐐기문자 점토판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중세 수도원의 양피지 코덱스와 구텐베르크의 활자본,
21세기 글로벌 디지털 아카이브, 미디어테크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축적하려는 ‘권력의 욕망’이 빚은
교양과 무지, 헌신과 파괴의 드라마
""인류 문명과 함께한 도서관의 역사, 방대한 연구와 흡인력 있는 서술""
— 리처드 오벤든, 옥스퍼드대학교 보들리 도서관 관장
""풍요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도서관의 역사, 책과 지식의 여정을 따라가는 흥미진진한 안내서""
— 주디스 플랜더스, 『모든 것을 위한 장소』 저자
◎ 도서 소개
지성사의 위대한 유산
도서관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문자 체계가 탄생한 이래 인류는 기록을 통해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노력의 산물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인류 지성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진 장소이자, 지식을 향한 인류의 열정을 보여 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책과 미디어 환경 변화를 분석하며 커뮤니케이션 분야 권위자로서 지난 20년 동안 유럽 인쇄물의 역사를 연구해 온, 앤드루 페테그리와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은 『도서관의 역사(The Library: A Fragile History)』(필로스 시리즈 36번)에서 인류의 지적 자산을 보관하고 전승해 온 장소로서 도서관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들은 도서관이란 단순히 책의 보관 장소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때로는 소실되며,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는 역동적인 공간임을 강조한다. 『도서관의 역사』는 쐐기 문자판이 보관되어 있던 니네베 왕궁도서관에서부터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으고자 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필사본의 산실이었던 중세 시대 수도원 도서관과 오늘날의 글로벌 디지털 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의 흥망성쇠를 따라가며 인류의 지적 자산이 어떻게 보존되고 때로 위협받았으며, 어떻게 재탄생되었는지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조명한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주목하는 것은 도서관의 탄생과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지식을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지금까지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주로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왕궁도서관이나 수도원 도서관에 주목해 왔다. 혹은 거대한 국가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의 바탕 욕망인 수집 욕구와 인정 욕구에 날카롭게 주목하면서 공공도서관과 개인도서관(서재)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엮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펼쳐 낸다”.(장은수 역자 해제)
지식에 대한 욕망, 수집에 대한 욕구는 수많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과 개인 서재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책과 도서관이 지닌 본질적 취약성으로 인해 또 손쉽게 사라지거나 파괴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장서들이 무관심과 방치, 전쟁, 검열, 화재 등으로 사라졌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양차 세계대전과 정치적 검열로 인해 많은 도서관이 억압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도서관의 역사』는 지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충돌하는 장소로서의 도서관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인상적인 부사는 아이러니하게도”(배동근 역자, 옮긴이의 말)인 것처럼 책은 길들이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반란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인류의 교양과 무지를 첨예하게 드러내고, 지식에 대한 헌신과 파괴의 드라마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 준다. “상상 그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주디스 플랜더스, 추천사)
◎ 책 속에서
우리는 로마의 책 세계를 지켜 낸 두 부류의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필사를 통해 텍스트를 보존해 준 노예 필경사들, 처음에는 배척당했으나 결국 로마 문화 구원자로 남은 교회다. 반달인(Vandal), 고트인(Goth), 동고트인(Ostrogoth)이 로마 문명을 폐허로 만들고 약탈 잔치를 벌이는 동안 로마 문화는 기독교 수도원을 최후의 피난처로 삼았다. 이곳에서 키케로와 세네카의 저작은 기독교 텍스트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아 일시적으로 시간과 약탈의 재앙으로부터 안식처를 구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발굴돼 도서관 문화의 초석이 됐다. 어떤 텍스트는 완전히 소멸하는 반면, 어떤 텍스트는 외딴 수도원에 치워지는 바람에 살아남는 변덕스러운 운명의 장난은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많은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 38쪽(1장 두루마리의 운명)
개인 서재의 등장은 도서관 공간 발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어떤 서재는 기존의 방을 쪼개어 상자만 한 최소 공간으로 마련되기도 했다. 작은 나무 칸막이로 공간을 분리하고, 붙박이로 맞춘 책상, 책과 필기도구를 놓을 선반과 의자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칸막이 서재는 방 한 칸을 당당히 차지했다. 그 방은 독서만을 위한 공간으로, 취지에 맞게 필요한 것을 갖추었는데 때로는 사용자가 책 여러 권을 동시에 편하게 참조할 수 있도록 세심히 만든 회전 책상이나 ‘책물레’도 있었다. 책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을 갖춰 놓기도 했다. 이 선반을 이용해 책을 전시할 수도 있었다.
― 84쪽(3장 작은 원숭이들과 금박 글자)
종교개혁은 책의 특성에도 서서히 변화를 가져왔다. 더 싸졌고 더 짧아졌고 덜 현학적으로 변했다. 이런 변화는 책을 살 법하지 않던 많은 사람이 자기 책을 소장하고 싶게 만들었다. 개인이 서점을 출입하고 팸플릿을 읽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그 들은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다시 서점을 방문했고, 곧 작은 서고를 갖게 됐고, 그 속에는 라틴어 책뿐 아니라 독일어 책도 나란히 놓였다.
― 144쪽(5장 종교개혁)
경매는 수집가가 더 빨리, 더 명확한 목적의식으로 서재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 수집가들은 늘 탐욕스러웠고 때로 비양심적이었으며 종종 이기적이었다. 경매는 구매자들에게 책을 구할 새로운 기회를 충실히 제공했을 뿐 아니라 구매자가 죽더라도 그 후손들이 책을 제값에 쉽게 팔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어 큰 안도감도 느끼게 했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었다. 책은 가치를 꽤 잘 담보할 수 있는 물품이었고 종종 20~30 년이 지나도 구매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가격으로 팔렸다.
― 181쪽(6장 전문가들)
1580년과 1620년 사이에 무려 40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인 도서관 구축 프로그램이 네덜란드에서 가동됐다. ‘공익을 위한 도서관’ 혹은 ‘공적 이용을 위한 도서관’ 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진행된 이 사업으로 과거의 수도원 도서관은 새로운 시립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가장 귀중한 책은 예외 없이 약탈당하거나 쫓겨난 수도사가 가져갔지만 도서관 대부분에는 책들이 200~300 권 정도 남아 있었다.
― 264쪽(10장 원대한 계획)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책의 가치를 영적이고 윤리적인 데 두었다. 책은 학문의 상징이자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신념의 표징이었다. 18 세기에 쇄도한 광적인 고서 강탈 경쟁은 국격의 상징으로서 책이라는 새로운 역사 자본을 창조했다. 최대의 아이러니는 그 고서의 내용이 흔히 이 시기의 지적 혁명이 전복하려 했던 바로 그 과거의 철학을 옹호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 339쪽(12장 고서 수집가들)
제국의 시대였던 19세기는 도서관 세계화에도 중요한 시기였다. 유럽 문화를 해외에 수출하려는 시도는 제국이 팽창하고 유럽인이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더욱더 가속화했다. 유럽의 도서관을 캐나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식하려는 시도가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고, 그 결과물은 런던이나 파리의 도서관 문화와 완전히 달랐다. 식민지의 새로운 국립도서관에서 제국의 영광은 찬양됐고 유럽 각국의 문화와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도서가 비치됐다.
― 384쪽(14장 제국 건설)
1000년의 문화유산에 너무나 많은 손상이, 게다가 그 손상이 고의로 가해졌다는 사실에 유럽인들은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근본적 회의에 빠졌다. 산산이 부서진 건물, 사라졌거나 잿더미가 되어 연기를 피워 올리는 장서, 그리고 책보다 훨씬 더 긴급한 과제인 뿔뿔이 헤어진 가족과 굶주린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책이라는 문화유산이 애초에 구축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했다. 파괴도 파괴지만 수많은 책이 원래 있던 곳을 떠나 정처 없이 먼 곳으로 실려 다녔다. 어떤 책은 주인과 함께 사라졌고, 어떤 책은 약탈당했으며, 어떤 책은 안전한 곳으로 치워졌고, 다른 많은 책은 새로운 주인의 손에 있었다. 책 송환의 어려움과 누가 진짜 주인인지를 다투는 분쟁은 두 차례 세계대전 후 새로운 상처와 원한을 낳았다.
― 488쪽(16장 20세기에서 살아남기)
1860년까지 프랑스 공공도서관들은 일반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열망을 거의 보여 주지 않았다. 1975년 프랑스 정부가 개입해 낡은 공공도서관의 전면 개보수를 추진하고, 공채 발행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 모든 것이 놀라운 창의성의 물결로 바뀌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새로운 미디어테크였다. 도시 중심에 아름답게 디자인된 건물을 새로 짓고 지역사회의 필요에 맞추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발전하는 미래의 요구까지 예측해 수용할 수 있도록 한 도서관이었다. 새로 지어진 도서관의 위치를 보면, 이 프로젝트에 투자된 시민적 자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 567쪽(18장 도서관, 책 그리고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