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줄 알았던 시절과 작별하고
지금 나의 몸을 마주할 시간
독일 최고의 저널리스트 악셀 하케가 전하는
노년을 유쾌하게 건너는 법
◎ 도서 소개
“읽기만 해도 삭신이 쑤신다. 그러나 기묘하게 재밌다!”
먼 나라 독일에서 건너온
어느 68살 저널리스트의 노년 일기
『재채기하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깨달은 것들』은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는 독일 작가 악셀 하케가 평생을 함께한 몸을 통해 삶의 본질을 사유하는 에세이다. 악셀 하케는 노쇠한 몸에 얽힌 에피소드를 따라 노화가 아닌 노화된 몸 자체에 주목한다. 크고 작은 상처와 곳곳의 몸을 바라보면서 몸에 아로새겨진 삶의 역사에 유쾌한 찬사를 보낸다. 이 기록은 나이 듦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는 한 편의 따스한 여정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21세기북스의 책들
▶ 우리는 사랑 안에 살고 있다 | 유혜주, 조정연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1월 | 19,800원
▶ 기어코 반짝일 너에게 | 김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 16,800원
◎ 본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회고록으로 자신의 지적 성취와 업적을 기록한다. 그런데 어째서 피부에 난 흉터나 그와 관련된 사건을 얘기하며 몸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통증, 빠진 치아, 혹과 반점, 닳아버린 연골, 탈모 등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근 성장과 폐활량, 심장의 일상. 나로서는 간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부담이 어떻게 신체 질병으로 옮겨 오는지에 관해서도.
【들어가는 글_8쪽】
어쩌면 나는 어제 한때 증조할머니 속에 있던 원자를 소비했고 어느 날에는 증손주 중 한 명을 안개처럼 둘러쌀 것이다. 언젠가 예수나 찰리 채플린의 뇌에서 일했던 나의 일부가 내년에는 내 정원에서 꽃으로 자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아내의 몸에는, 한때 내 안에 머물던 원자가 거의 확실히 존재한다.
신비주의처럼 들리겠지만, 과학이다.
【피부_33쪽】
“빌헬름!” 나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이야.” 나는 책에 사인과 함께 한 문장을 더했다. ‘나의 오랜 친구 빌헬름을 위하여.’ 그리고 외쳤다. “여기, 빌헬름을 위해 맥주 한잔 주세요!” 지인들이 무리 지어 우리 주위로 모였다. “이쪽은 빌헬름입니다.” 나는 친구를 지인들에게 소개했다. “제 오랜 친구죠. 이름은 빌헬름입니다. 아, 얘기했나요?” 우리는 선 채로 술을 마셨다. “조심히 잘 가, 빌헬름.” 나는 택시에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와줘서 고마웠어, 빌헬름!”
그런 다음 R로부터 답 문자가 도착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슈테판이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악셀 하케, 택시에서 사망. 사인은 슈테판을 빌헬름으로 착각한 것.” 이렇게 적힌 부고 기사가 떠올랐다.
【기억_43쪽】
‘귀에 있는 영혼’, 그것은 과학자들이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다르다. 나는 뭔가를 할 수 있다. 계몽주의 사상은 인간을 자아로, 즉 세상을 창조하길 원하며 할 수 있는 주체로 보았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의 몸과 영혼, 즉 자아가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자아는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어야 마땅하다!
【귀_74쪽】
나는 신음하고, 탄식하고, 훌쩍이며 변기에 앉아 있었고, 장에 꽉 들어찬 똥 덩어리를 배출하기 위해 과도하게 힘을 주다가 혈관이 터져서 뇌출혈로 이어지면 어쩌나, 두려워했다. 이것은 완전히 허황된 두려움도 아닌 것이 응급 의사인 내 친구 M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병원에서 그런 죽음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나는 변기 위에서 웅크린 채 사망한 변비 환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
검시관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타깝군요. 성공 직전이었는데….”
【장_130쪽】
어머니 고향에서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집에서 시가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온 동네에서 시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풀 냄새 같기도 하고, 흙 냄새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 같기도 한 강렬한 냄새였다.
잊을 수 없는 냄새가 또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매주 새로운 책을 찾아 시립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에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종이 냄새와 글자 냄새, 먼지 냄새, 독서에 빠진 사람들의 냄새가 있다.
【코_186쪽】
나는 느낀다.
내 몸은 여기서 자랐지만, 더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것을 명확히 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원자 지식이 사실이라면, 내 주변 어딘가에 아버지, 어머니, 삼촌의 일부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존재하기 전에 입자로 온 세상에 흩어져 있었고, 죽으면 다시 입자가 될 것이다. 오직 지금 짧은 과도기 동안만 생명과 의식을 가진 몸으로 존재한다.
【심장_2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