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儒敎는 종교宗敎인가? 종교가 아닌가?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초월적 존재자 즉 숭배의 대상인 신神이 있어야 하고, 둘째 신의 가르침 또는 종교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經典이 있어야 하며, 셋째 이를 공유하는 일정한 공동체(종교집단)가 있어야 하고, 넷째 종교행위를 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예배당)이 있어야 한다.
‘유교는 종교인가’라는 케케묵은 논쟁은 1995년 당시 유림儒林에서 “유교는 종교”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상당한 논란이 이어졌으나 아직까지도 유교에 대해 분명하게 ‘종교다.’ ‘종교가 아니다.’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유교에는 서구에서 들어온 현대 학문분야로서 종교와 철학, 정치, 교육 등 많은 분야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림에서는 “유교는 종교가 아닌 가르침[敎]”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묻는다. “유교는 종교인가? 종교가 아닌가?”
현실에 바탕을 둔 유교
종교는 대체로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내세의 삶을 긍정한다. 이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여러 종교들이 심각한 현실의 좌절 속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고통 받는 현실에서 구원救援 받기 위해서는 종교적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신실한 믿음을 통해 죽은 자의 나라인 천국天國, 불국토佛國土 등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은 현실에서가 아닌 죽음 이후에 이루어진다.
이와 반대로 유교는 매우 현실적이다. 귀신鬼神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는 자로子路에게 공자는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하고, 또 죽음에 대해 묻자 “삶의 도리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대답해 주었다. 유교는 종교적 믿음보다는 학문의 대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은 진리의 추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책 속으로
“유교를 두고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은 지금도 매우 예민한 논란거리로 되고 있다. 필자도 많은 사람들에게 유교의 종교성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변을 한다. 종교, 철학, 윤리학, 정치학, 교육학, 경영학, 경제학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근대의 유럽에서 생겨난 것이다. …… 유교도 예외가 아니다. 원래 유교는 종교적인 요소, 철학적인 요소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는 종교라 해도 되고, 철학이라 해도 된다. 윤리학이라 해도 되고 정치학이라 해도 된다. 물론 교육학이라 해도 되고, 경영학이라 해도 된다.” (7쪽)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을 말하는데, 배우는 입장에서는 유학儒學이라 하고, 실천하는 입장에서는 유도儒道라고도 한다. 유교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정신적 삶과 육체적 삶의 조화를 추구하는 중용사상中庸思想이다.” (25쪽)
“유교에서의 진리 접근의 방식은 학문과 일상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교적 의례儀禮 역시 일상생활과 분리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도리와 부모에 대한 자녀의 도리가 하나하나 진리 터득의 방식이 되기 때문에 가정은 교회가 되고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종교적 의례가 된다. 성인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장례식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모두 종교적 의례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145쪽)
“유교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삶은 학문學問을 완성하고 천명天命을 알아서 천명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다. 천명을 알면 천명을 중심으로 판단하게 되므로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남과 내가 하나가 되면 남을 나처럼 여기고 남을 나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마음의 상태가 인仁이다. 인을 실천하면 남에게 고통이 있는 것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남을 구제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고 그런 다음 남의 인격을 완성하여 모든 사람이 인격을 완성함으로써 모두가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 삶이다.” (216쪽)
“유교에서의 이상은 가정이 확산되어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되고 세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교에서의 종교적 공동체는 가정을 단위로 하면 가족이 되고, 사회를 단위로 하면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국가를 단위로 하면 국민이 되며, 세계를 단위로 하면 전 세계인이 된다.” (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