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 동심은 세월이 흐른다고, 나이가 든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심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쭙잖은 지식과 어지러운 욕망의 두겁이 덮고 있을 뿐입니다. 하빈 시인은 그 두겁의 두께가 좀 옅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이다운 상상력과 엉뚱함과 순수를 이토록 간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늙은 아이 하빈의 순백한 감수성
그는 시를 공부하러 문예창작아카데미를 다녔다. 어느 날 교수님은 작정 없이 써 놓은 그의 동시 몇 편을 우연히 보고 ‘어라!’ 하셨다. 시에 비해 동시는 반짝반짝 빛나는 수작이었기 때문이다. 그 교수님의 권유로 그때부터 그는 동시를 쓰기 시작했고 교수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언젠가 당신이 동시집을 발간한다면 꽤 주목받는 동시집이 될 거라고.
동시를 쓰기 시작한 그해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 동시로 운문부 대상을 수상하고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썼다.
― 저는 살면서 가끔,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절대자가 있다면 그는 왜 특별하지도, 뛰어난 그 무엇도 없는 나를 살려주었을까? (큰 병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기 때문) 자문해 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순을 넘기고도 그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시를 쓰면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듯했습니다. 아마 그때 나를 살려 둔 것은 나에게 동시를 쓰게 하기 위해서 일거라고.
동시를 쓸 때는 언제나 마음이 맑고 환해집니다. 어쩌면 이 환한 마음을 세상에 전하라는 사명을 주기 위해 저를 살려 주었을 거라고 믿고 싶어집니다. ―
참으로 놀라운 것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동시를 쓴다면서 어떻게 이런 순수한 동심을 간직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동시를 읽으면 참으로 참신하고 산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이 읽어도 충분할 시적 아우라도 지니고 있다. 그의 수상작 <마늘밭>을 보자.
마늘쫑
뽑으면
뽀-옥
기적소리가 난다.
엄마 마늘대
아가 마늘쫑
이별하는
소리다.
뽀-옥
뽀-옥
마늘밭은
슬픈
기차역
심사평의 한 대목을 보면
― ‘시에는 시어 · 운율 · 이미지 · 비유 · 상징 · 반어 · 역설 등의 여러 요소가 있다.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특별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려면 적절한 언어의 선택과 배치, 또한 앞의 여러 요소를 효율적으로 결합하여 완성도를 높여야만 한다. 대상에 올린 하빈의 동시 「마늘밭」은 실제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작품으로 옮기기 어려운 소재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 이를 앞의 여러 요소를 반영해 한 편의 시로 빚어 낸 수작이다. 시는 보태기가 아니라 빼기 작업이라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한 단어만 빠져도 시 전체가 와해 될 정도로 정제된 시어로만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빈의 「마늘밭」은 꼭 할 말만, 즉 필요한 낱말만 골라 엮은 짧지만 명료한 작품이다. 시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가장 언어를 중시하는 예술이고, 그 중에서도 동시(동심의 시)는 문학의 정수라고 하는 말을 공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
하빈 시인의 시적 감수성은 다음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 어디 갔노?’
낡은 칠판
낙서 한 줄
“삐그덕”
바람이 읽는 소리만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폐교」라는 작품이다. 두 문장 정도의 짧은 글 속에 폐교의 쓸쓸함과 적막함과 을씨년스러움을 가슴 서늘하도록 담아내고 있다.
동시를 쓰기 시작한지 채 3년도 되지 않아 500여 편의 작품을 썼을 만큼 동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이번 작품집 「수업 끝」은 각 부별 주제에 맞게 가려 뽑은 50편이다. 그 중 몇 편을 보자.
진드기
엄마는
꽃이 불쌍하다며
진드기에게
살충제를 뿌렸다.
달리아 꽃받침 아래
송알송알
붙어 있는 진드기
엄마 젖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복실이 새끼 같다.
나는
슬며시
살충제를 숨겼다.
장래희망
염소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풀꽃을
삭둑, 잘라 먹습니다.
사자가
눈이 큰 가젤을
덮쳤어요.
아빠는
앞마당에서 나하고 놀던
암탉을 잡았어요.
‘그래, 나는
한 알만 먹으면
평생 살 수 있는
알약을 만들 거야.’
지구를 빙글
텔레비전 속
아프리카는
다
말라 죽는데
창밖에는
좍-
좍-
장대비 온다.
지구를
빙∼글
아프리카를
이곳까지
돌릴 수 있다면.
앞의 예와 같이 이 동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배려와 따뜻함이다. 모든 시편들의 바탕에는 이 주제가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륜이 있는 작가에 베여 있는 철학의 번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