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문학 씬에서 한동안 드라큘라의 독주가 계속됐다. 드라큘라 백작의 섹시하고도 압도적인 흡혈 퍼포먼스는 자타공인 넘사벽이었다. 이후 성공을 갈망하는 많은 뱀파이어들이 주구장창 피를 빨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꼭 흡혈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상 드라큘라가 등장한 1897년에도 그랬고 심지어 그 이전에도 아주 독특한 뱀파이어들이 존재했다. 그중에 하나가 사이킥 뱀파이어(Psychic Vampire)다.
사이킥 뱀파이어는 피를 빨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력 다시 말해 에너지, 활력을 빤다. “기를 빨린다”는 표현도 유효할 것 같다. 사이킥 뱀파이어는 그 수단으로 마인트 컨트롤, 최면술 등을 사용한다. 여기서 마인드 컨트롤은 긍정적인 자기주도력이 아니다. 세뇌이자 심리공학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상대의 사고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킥 뱀파이어가 현대적으로 재조명될 여지가 큰 이유다. 현대인의 심리적 균열 여기에 그루밍, 가스라이팅 등의 사회문제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 『사이킥 뱀파이어 걸작선』은 흡혈계의 이 독특한 변종에 관한 대표 단편들을 묶으려는 시도다.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사이킥 뱀파이어에 교두보를 마련해 준 작가는 역시 아서 코난 도일이다. 도일은 뱀파이어뿐 아니라 미라 문학에서도 「경매번호 249」, 「토트의 반지」라는 전환기적인 단편을 선보인 바 있다. 도일의 「기생충」은 사이킥 뱀파이어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 중에 하나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당한다. 「기생충」의 길로리 교수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이자 학장까지 맡은 전도유망한 생리학자다. 게다가 아름다운 애거사와 결혼을 앞두었으니 남자가 꿈꿀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셈.
사실만 중시하고 연구하는 냉철한 과학자의 표본인 그는 동료 교수 윌슨이 초자연적인 주제와 심령 현상에 능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감탄하면서도 딱하게 여긴다. 이런 길로리 교수가 윌슨을 통해 헬렌 펜클로사라는 영매를 소개받으면서 예상치 못한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펜클로사의 최면 실험에 피험자가 돼 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응했던 것이 문제다. 그런 협잡과 사기가 자기한테는 통할 리 없다고 자신만만했던 길로리. 일기 형태의 이 작품은 하루하루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고 타인의 힘에 조종당하는 남자의 절망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
제1장
3월 24일
지금 봄이 완연하다. 실험실 창밖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는 온통 커다랗고 진득진득한 점액질의 새싹이 돋아 있고 이중에는 벌써 작은 녹색 셔틀콕 모양으로 꽃봉오리가 맺힌 것도 있다. 작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주변 어디에나 자연의 풍요롭고 조용한 힘이 미쳐 있음을 깨닫는다. 젖은 땅은 풍성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어디에나 녹색 새싹들이 빼꼼히 돋아있다. 잔가지들은 수액으로 탱탱하다. 촉촉한 영국 공기는 수지 향으로 가득하다. 울타리의 새싹들, 그 아래 어린양들……. 온통 생식 작용이 한창이구나!
나는 눈앞에 없어도 생식을 볼 수 있고, 내안에서 느낄 수 있다. 세동맥이 확장할 때, 림프가 빠르게 흐를 때, 분비샘이 까부르고 선별하면서 더 열심히 일할 때 우리에게 봄이 온 것이다. 해마다 자연은 기계 전체를 재조정한다. 이 순간 나는 혈관 속에 이는 맥동을 느낄 수 있고 차가운 햇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 그 속에서 각다귀처럼 춤을 출 수도 있다. 다만 그랬다가는 찰스 새들러가 위층으로 뛰어올라와 무슨 일인지 알려고 들 것이다. 더구나 내가 길로리 교수임을 명심해야 한다. 늙은 교수라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대학에서 학장자리를 따낸 34세의 행운아라면 직위에 맡게 일관적으로 노력하고 행동해야한다.
나 참 그 친구 윌슨! 그 친구가 심리학에 쏟아붓는 그런 열정을 내가 생리학에 쏟아부을 수만 있다면 아마 못해도 클로드 베르나르 (프랑스의 생리학자로 근대 실험의학의 창시자이자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에 한 명으로 평가받음—옮긴이) 는 될 것이다. 그의 삶과 영혼과 에너지는 오롯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작동한다. 그는 지난 하루의 성과와 함께 잠들고 앞으로의 성과를 위한 연구 계획과 함께 깨어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를 따르는 협소한 학계를 벗어나면 그의 업적은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생리학은 인정받는 과학이다. 내가 이 건물에 벽돌 하나만 추가한다고 해도 모두가 알아주고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윌슨은 미래의 과학을 위한 토대를 놓고 있다. 그의 업적은 땅 밑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고 계속 연구한다. 한 명의 믿을만한 목격자를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반치미광이들과 교류하고 작은 한 점의 진실을 얻고자 무수한 거짓말을 가려내며 고서들을 수집 분석하고 신서들을 탐독하며 그 자신을 태우고 있는 불같은 관심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피려고 애쓰며 실험하고 강의한다. 그를 생각하면 감탄과 존경으로 충만해진다. 그러나 그가 내게 자기의 연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나는 현 상황에서 그와 동료들이 정밀과학에 헌신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매력적인 뭔가를 제안하지 못할 거라고 말해야 했다. 만약에 그가 긍정적이고 객관적인 뭔가를 보여준다면 그때는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해볼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의 피험자 절반은 협잡꾼 기질이 농후하고 나머지 절반은 히스테리 증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생리학자들은 몸의 문제에 만족하고 정신의 문제는 후대에 넘겨야 한다.
나는 당연히 유물론자다. 애거사는 내가 내로라하는 유물론자란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영성 (靈性) 이 절실히 필요했고 우리의 약혼기간을 줄이는 탁월한 이유가 됐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심령작용에 극도로 민감한—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말하자면—내 타고난 기질을 감안하면 나 자신은 교육의 효과가 가져온 흥미로운 사례라 할만하다. 나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몽상가였고 몽유병자였으며 인상과 직감으로 가득했다. 검은 머리칼, 짙은 눈동자, 갸름한 올리브색 얼굴, 끝이 뾰족하고 가는 손가락들은 내 본성을 오롯이 보여주는 특징이고, 윌슨 같은 전문가들이 나를 그쪽 사람이라고 주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정밀과학이 가득히 스며들어 있다. 나는 오로지 사실과 증거만 상대하도록 스스로 훈련해왔다. 추측과 환상은 내 사고체계에서 설 자리가 없다. 내가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것, 외과용 메스로 절개할 수 있는 것, 정밀하게 측정하여 판단할 그런 대상을 보여준다면 나는 평생을 걸고 그것을 연구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내게 감정, 인상, 암시를 연구하라고 청한다면, 그건 내게 무엇이 불쾌한지 무엇이 사기를 꺾는지 묻는 셈이다. 순수 이성에 벗어나는 것은 내게 악취나 불협화음이 주는 그런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