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부부, 노인, 그리고 부검의이자 화자인 나 이렇게 4명이 열차의 칸막이 객실에 동승한다. 칸막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여행 동안 싫든 좋든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우리는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혼부부의 신부 쪽에서 유난히 살인 사건 같은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다.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른 것은 실제로 벌어진 어느 여성 피살 사건과 붙잡히지 않은 범인에 관한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부검의인 내가 막 검시를 끝내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결정적인 단서를 알아낸 사건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열차는 검은 밤을 뚫고 스위스 국경을 향해 질주했다. 그 객실에는 나이 지긋한 신사 한 명, 한 쌍의 젊은 남녀 이렇게 세 명이 나와 동승하고 있었다. 소녀처럼 앳된 아가씨가 이따금씩 청년에게 몇 마디 말을 걸면 청년은 고갯짓 한번 아니면 몸짓 한번으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모두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은 자신의 직업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한가 보다. 나는 절실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스위스로 가는 중이었다. 개업의로서 활동 외에 지난 수개월 동안 파리 시경에서 부검의로 몇 차례 부름을 받았다. 몇 시간 전에 마지막 검시를 마무리하고 몇 가지 물건을 챙겨서 출발했다.
그런데도 나는 부지불식간에 동승인들의 신분, 배경, 직업에 대해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 철도에서 일반적인 추세가 된 칸막이 객실 때문에 운행 동안은 부득이 나와 밀접한 상황에 놓이게 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