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자본, 좌파 등 특정 세력이 과학 논쟁 과정에서 의도적 ? 조직적으로 진실을 왜곡한다는 ‘청부과학론’은 나름의 사회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모든 논쟁들을 단순한 진실게임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논쟁에 깃든 사회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요소들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쓴이가 꺼내 든 개념은 ‘언던 사이언스(Undone Science)’다.
‘언던 사이언스’는 미국의 과학운동가 데이비드 헤스가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채 생산되지 않은 지식들’을 가리키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글쓴이는 이를 더욱 확장하여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무시되고 배제된 과학 연구 영역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학(STS) 같은 통섭적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 두루 반영된 이 관점은 ‘진실 vs 거짓’ 혹은 ‘과학 vs 비과학’이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어 현대과학의 논쟁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글쓴이는 19세기 이후 지금까지의 다양한 과학 논쟁들을 언던 사이언스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한다. 1부에서는 나치의 인종위생학을 비롯한 과거 사례들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2부에선 구제역 살처분을 비롯한 현대의 쟁점들을 관찰함으로써 ‘언던 사이언스’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입증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광우병, 삼성백혈병, 저선량 방사선 같은 첨예한 과학 논쟁들을 언던 사이언스의 세밀한 렌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1987년 서울 출생. 고교 시절 문과를 택하자니 이과에게 미안하고 이과를 택하자니 문과가 눈에 밟혀 심각한 결정 장애를 겪은 바 있다. 인류의 과거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두 개의 학문 ―역사학과 생물학― 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과학사 · 과학철학과 과학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 STS)이라는 매력적인 분야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양대에서 역사학과 철학, 과학기술학을 전공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에서 기나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찍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동시에 사랑했던 지적 바람기를 학문에서의 통섭적 열정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중이다.요즘엔 1950년대 이후 인간 유전에 대한 생물학 연구의 역사가 사회정치적 흐름의 변화와 뒤얽히며 인간의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꽃피워 온 과정,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다시금 새로운 사회정치적 관계와 이해들을 만들어 내는 양상을 한국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길게 서술된 이 연구 주제를 최대한 간결하게 줄여서 박사 논문의 제목으로 삼을 예정이다. 인간생물학 연구가 낳는 인간에 대한 이해 변화와 관련된 역사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연구가 ‘사회 속의 과학’과 ‘과학 속의 사회’에 깃든 복잡한 문제들을 명료하게 이해시켜 주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고 믿으며, 이에 관한 글들을 《한국과학사학회지》, 《과학철학》, 《과학기술학연구》, 《EASTS》 등에 실었다. 『언던 사이언스』는 그가 세상에 내놓는 첫 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