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구성, 5개의 대주제와 5개의 간주곡
이 책은 난쟁이와 거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고대하면서 총 16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16개의 주제를 5개의 과학문화 주제로 분류하여, 1부 우리의 과학문화(1~4장), 2부 생명의 행성(5~8장), 3부 과학자의 과학 이야기(9~11장), 4부 과학의 존재론(12~14장), 5부 대중문화 속 과학(15~16장)으로 묶었다. 미처 책에서 다루지 못한 과학문화 주제도 많으며, 이후 더 확장되길 기대한다.
1부는 ‘우리의 과학문화’를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주제를 모아 놓았다. 과학을 문화의 한 형식으로 제안하면서 관련 주제와 개념을 소개할 것이다. 근대과학은 단순히 해답(진실)을 내놓는 마법 상자가 아니다. 근대과학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1부를 읽으면서 과학을 관찰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과학이라는 블랙박스를 열어서 들여다볼 것을 권고한다. 1장 과학의 문화적 지위와 2장 과학혁명과 대중에서 17세기 근대과학의 역사적 기원과 성격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폈다. 이성과 신체, 과학자와 대중,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분리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3장 과학과 젠더는 과학에 내장된 성차별에 주목할 것이고, 유전학자 바버라 맥클린톡의 이야기는 대안적 과학을 암시한다. 참고로 이 책에서 여성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여성 대명사를 기본으로 사용하여 번역 과정에서 한국어에도 ‘그녀’라는 단어가 일상화되었다. 그런데 원래 우리말에는 존재하지 않는 표현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남성과 여성 관계없이 ‘그’라고 표기할 것이다. 이어서 4장 기술의 정치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불평등과 책임 문제를 다룬다.
2부는 찰스 다윈(C. Darwin)에서 레이첼 카슨(R. Carson)에 이르는 생물학 이론과 세계관을 소개한다. 생물학이 다루는 내용은 언제나 사회문화적인 교훈을 던진다. 생물학자의 연구 결과는 지구 생태계에서 인류의 지위를 재고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생물학과 사회-정치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생물학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 개념을 곧이곧대로 사회적인 것에 적용하는 경향은 일종의 결정론이며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우를 범한다. 린 마굴리스(L. Margulis)의 공생이론(6장)은 우리의 상상력을 지구 행성 범위로 넓혀주고 지구 나이 깊이로 늘여 준다.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ull)의 움벨트 이론(7장)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유기체의 주체성을 제안한다.
3부는 ‘과학자의 과학 이야기’라는 주제로 근대과학의 문제와 잠재성에 대한 과학자의 주장을 소개한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 Dyson)과 수학자 노버트 위너(N. Wiener) 그리고 공학자 앨런 튜링(A. Turing)을 통해서 과학과 사회가 연결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과학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철학자였고 정치인이었다. 과학이 철학과 정치를 품을 때 대중과 동기화될 수 있다. 위너와 튜링의 이론은 꾸준히 비판받으면서 개선될 수 있었고 생명을 얻었다. 과학과 사회가 서로 간섭하며 진동할 때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줄 수 있다.
4부는 ‘과학의 존재론’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과학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 형식이다. 우리의 위치는 그 형식 안 어딘가에 배정된다. 오늘날 과학은 헌법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 존재 방식을 규정할 수 있다. 과학의 존재론이 인류 운명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상당히 중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과학 지식은 어떻게 구성되고 승인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현재의 인류(난쟁이)와 지구 행성(거인)이라는 존재에 관한 인식을 생산하는가? 인류세 논의는 우리를 ‘지구족(earth bound)’으로 재정의하고 있다(14장). 도나 해러웨이(D. Haraway)는 우리에게 흙 속의 존재를 만나서 ‘촉수적 사유’를 배우라고 권장한다(13장).
마지막 5부는 ‘대중문화 속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SF는 과학을 주제로 다루는 문학 형식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SF가 과학을 다루는 방식은 과학기술학(STS)이 과학을 다루는 접근과 닮아있다. 학술적 방법론은 비가시적인 것을 다룰 때 특히 취약하다. 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물론 대중문화는 과학주의와 기술결정론에 편승하여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여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SF는 독자를 주체로 태어나게 하는 잠재성이 있다. SF 작가는 과학자와 철학자보다 먼저 인공물을 실험하고 규칙을 실험해왔다.
이 책은 난쟁이와 거인의 노래를 기대한다는 취지에서 5개의 짧은 인터루트(간주곡)도 담았다. 본론의 내용보다 가벼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실천적인 이야기를 선택했다. 본문의 이론과 개념을 실제 주제에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1부 인터루트: 과학의 의제성, 2부 인터루트: 버섯과 엘프, 3부 인터루트: 교과서 속 인공지능, 4부 인터루트: 협상의 극장에서 배우기, 그리고 5부 인터루트: 헬라 세포 이야기이다. 이들 주제는 대체로 진행 중인 주제이므로 관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다.
난쟁이와 거인이 서로에게서 무엇인가를 끌어내고 상대방을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게 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