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한강 뱃길을 따라 노래하다
〈열상 기행 절구〉는 한강 일대를 소재로 삼은 7언 절구 100수의 장편 연작 기행시다. 신필영은 1846년(헌종 12) 음력 8월 초에 지금의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및 금호동 일대인 두모포(豆毛浦)에서 출발해 동호(東湖) 일대와 남한강을 거쳐 고향인 경기도 지평현 부근까지를 일정으로 해서 8월 하순까지 약 20일간의 여정을 시로 담았다. 한강 기행시는 김선(金䥧, 1772∼1833)의 〈주행 백 수(舟行百首)〉로부터 비롯했는데, 김선은 당나라 전후(錢珝)의 〈강행무제(江行無題)〉 100수를 전례로 삼아 100수의 한강 기행시를 창작했다. 이후 두릉의 마재[馬峴]에서 출발해 북한강을 거슬러 춘천을 여행하며 남긴 정약용의 《천우 기행(穿牛紀行)》에 수록된 7언 절구 25수, 한강의 서호(西湖) 일대를 읊은 신위의 〈서강 절구(西江絶句)〉 30수 등, 18∼19세기에는 한강 기행시 창작이 유행했다.
조선 후기 죽지사(竹枝詞)의 흐름을 잇다
신필영의 〈열상 기행 절구〉는 오롯이 뱃길 여행만을 다룬 김선의 〈주행 백 수〉와는 달리, 한강의 동호 및 남한강 일대의 역사·문화 경관, 빼어난 산수풍경, 친교를 맺은 인물들과 사별한 아내에 대한 정회(情懷), 한강 변 향촌의 일상 등 다양한 내용을 100수의 편폭에 담아내었다. 그러나 죽지사를 표방한다는 점과 절구의 형식을 활용해 여행에서 마주하는 짧은 순간의 광경이나 정감을 효율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주행 백 수〉와 일맥상통한다. 죽지사란 중국 민가에서 기원한 양식으로, 경치, 인정, 풍속 등을 주로 다루는 풍물 연작시의 일종이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조선 시단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작가가 등장해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면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작가의 독특한 주제 의식을 담은 연작시의 대량 출현이다. 이 같은 연작시는 조선 후기에 대거 창작된 기속시 및 연행 체험을 서술한 장편 연행시 등의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으며, 그 가운데서 절구 형식의 단형 연작시들도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열상 기행 절구〉 역시 일반적인 기행시를 표방하면서도 내용 면에서는 다채롭고 독특한 작가의 주제 의식을 담아내었으며, 형식 면에서는 절구 형식의 단형 연작시로 창작되었으므로, 18세기 한시사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필영은 이러한 자유로운 연작시의 시체를 따라 회고시, 산수 경물시, 회인시, 도망시, 농촌시 등 여행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들을 자유롭게 노래해 개별 절구가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게 한 한편, 유기적 구성에서 밀도가 떨어지는 연작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구성 면에서 하나의 짜임새를 갖춘 작품을 만들었다. 소재와 내용 면에서도 여정과 함께 일대 향촌의 풍정까지도 담아내고자 한 결과, 〈열상 기행 절구〉는 일반적인 기행시를 넘어서 죽지사풍 기속시로서의 성격도 지니게 되었다.
실제를 기록하다
신필영은 〈열상 기행 절구〉의 서문에서 선상 여행, 성묘, 관가라는 여행의 세 가지 주요 목적을 제시했으며, 특히 “실제를 기록한 것이다”라고 해서 자신이 눈으로 보고 느낀 한강 유역과 농촌의 ‘참모습[實]’을 보여 주고자 했음을 밝혔다. 회고시, 산수 경물시에서는 남한강 일대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전고를 활용해 시경(詩境)을 확장하는가 하면, 동양화 작법의 하나인 도영법(倒影法)과 색채어를 활용해 풍경을 그림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홍길주, 김매순, 신익성, 서유구 등을 추모한 회인시에서는 그들의 삶의 내력과 그들에 대한 추억 등을 형상화했으며, 사별한 아내 연일 정씨를 위해 남긴 총 여덟 수의 도망시는 비창(悲愴)한 심정이 진솔하게 투영되어 〈열상 기행 절구〉 전체의 서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동호의 뚝섬(제3수), 송파나루(제6수)와 우천의 사옹원 분원(제20수), 여주의 이포나루(제89수)를 소재로 한 기속시에서는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 및 경제 활동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내었고, 농촌시에서는 농촌에서 마주친 다양한 민중을 사실적인 필치로 형상화하면서 해학적인 묘사와 대화체를 활용해서 현장의 생동감을 부각해 농촌의 일상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농민들의 온정을 드러내는 등 조선 농촌의 특색을 전면에 드러내 19세기 한시의 ‘조선풍’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