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과연 현대의 예언서인가?
이기적 유전자는 생명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생명과 과학을 관통하는 지식의 대통합!
표정을 잃은 과학에 생로병사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유전자는 낱말, 단백질은 문장, 인생은 대하소설
우리 몸으로 다시 쓰는 과학의 역사!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는 유전자의 눈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겪는 생로병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로 유명해진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그릇인 사람을 조종해 이득을 취하지만, 불량 유전자는 어떤 이익이나 목적도 없이 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목적 중심의 개념이며, 불량 유전자는 결과 중심의 개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지 유전자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생로병사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몸이다. 그 몸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여전히 과학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의 언어를 다시 인문학에 비추어본다. 저자는 이런 방법을 ‘인문의학’이라 칭한다.
이 책은 이제 막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짤막한 에세이 형식의 글 3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과학 용어나 딱딱한 도표를 배제하고, 고정된 이론 대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채워 넣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하기의 재미와 삶의 의미를 동시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래부터 ‘과학’과 ‘삶’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의학이란?”
생로병사의 경험적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인문학의 가치와 규범을 통해 이해하려는 생명 이해의 방법. 저자 강신익 교수는 국내 최초의 인문의학자로 2004년부터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인문의학교실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동시에 인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의료계에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은 여러 의과대학에 인문의학 또는 의료인문학 교실이 생기고 있다.
현대의 예언서 DNA,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20세기는 유전자의 세기였다. 이중나선으로 꼬인 DNA 분자의 구조가 알려지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드디어 인간의 DNA 구조 전체가 밝혀졌다. 리처드 도킨스는 DNA 분자로 구성된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복제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기적 유전자』를 써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도킨스가 유전자에 이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유전자가 정말로 이기적 목적에 따라 행동해서가 아니다. 그 결과가 사람에게는 이기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눈으로 생명을 보려고 했지만,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인간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순간 엄청난 비판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암묵적으로 그런 쪽으로 잡아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이기적인 행동으로 득을 보면서도 도덕적으로는 면죄부를 받고 싶은 현대인의 무의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성공은 과학을 넘어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도킨스는 생명의 행동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함으로써 협동과 상호부조와 같은 상위 수준의 사회현상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치명적 문제가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왜 실패했을까?
1990년에 시작된 인간유전체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의 책임자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이었다. 그는 사업이 끝나면 우리가 주머니에서 CD 한 장을 꺼내면서 ‘이게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 공언했다. 하지만 사업이 끝났을 때의 상황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유전형질의 최종 발현자인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의 서열은 전체의 1.1퍼센트에 불과했고, 염기의 95퍼센트는 아무런 기능도 밝혀지지 않은 이른바 ‘쓰레기’ DNA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전자가 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사업의 결론이 ‘나는 유전자 이상의 존재다’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아직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DNA 염기 서열의 95퍼센트를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게놈 프로젝트의 실패 속에서 생명과학의 신비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95퍼센트에 해당하는 염기 서열 안에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온 기나긴 생명의 이력이 담겨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전체는 생명의 설계도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책에 가깝다. 영화 「가타카」처럼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의 종을 디자인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곧 유전자’라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요와 불평등을 앓는 현대인,
자연의학의 독주를 막는 것이 해법!
세상과 자연을 안다는 것은 차갑게 추상화한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는 검증된 결과를 나열하기보다, 새로운 가설들과 그 가설을 세운 사람들이 겪었던 우여곡절을 다룬다. 세균이 발견되기 전에 직관적으로 ‘손 씻기’를 통해 산모의 사망률을 낮춘 제멜바이스는 주류 의학계에 외면당한 채 평생을 고독하게 싸웠다. 사회의학의 아버지 루돌프 피르코는 「독일 실레지아 지방의 발진 티푸스 창궐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사회 전체의 민주적 교육과 자유’라는 파격적인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저자는 자연의학, 인문의학, 사회의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을 때, 우리 몸의 고통과 질병에 대한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더 이상 콜레라나 페스트 같은 전염병을 앓지 않는다.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키운 슈퍼박테리아가 우리를 위협하는가 하면, 과도한 열량에 비해 섭취량이 낮은 비타민을 인위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들어 ‘현대인은 풍요와 불평등을 앓는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과학이고, 인문학이며, 사회학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의학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과학 역시도 생생한 삶과 유리되어 표정을 잃고 말았다.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에서는 우리 몸과 삶의 여정을 통해 과학과 의학, 인문학의 긴밀한 관계를 복원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