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고 어설프나마 사진적인 어떤 것,
어눌하고 소박하나마 시적인 어떤 것,
“너와 함께 볼 수 있다면 이 사소한 것들을”
시인 장철문의 첫번째 포토포에지
1.
근래 한국시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는 상찬과 함께 2016년 백석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서정시 역사의 괄목할 만한 이정표가 된 장철문 시인의 첫번째 포토포에지 『날개를 가진 자의 발자국』이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사진Photo과 시적인 글Poesie을 어울렀기에 ‘포토포에지’라 이름 붙였다. 시인은 코로나 시절 2019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산책중에 만난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눈에 띄는 사물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귀퉁이에 메모를 남겼다. 총 64편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로 그리고 겨울에서 봄으로 이동하는 계절의 흐름을 담아냈으며 각 부의 꽃 사진은 피어나는 시간 순으로 수록했다. 꽃의 이름을 ‘아는’ 대신 온전히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사진을 모르는 사람도 시를 모르는 사람도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찍어보고 톡탁이면서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한다. 장철문은 서툴고 어설프나마 사진적인 어떤 것, 어눌하고 소박하나마 시적인 어떤 것을 어울렀다고 겸손히 말하지만 글과 사진이 담아낸 사소함의 깊이가 놀랍다.
2.
그의 눈에 담긴 한순간은 “풍경도 슬그머니 빗장이 풀린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날”(37쪽)이다. 이것은 시인 자신이 굳게 잠궈둔 마음의 빗장이 함께 풀리는, 명치를 데워오는 것이 오는(「왔다」) 순간이기도 하다. 점심 먹으러 간 길에 만난 화단에 핀 꽃,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너와 함께 볼 수 있다면/이 사소한 것들을//너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아무렇지 않은/몇 마디 말”(「사소한 것에 대하여」)이라는 호명으로 여운을 준다. 우리는 이 작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할 수 없음을 통해 누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한다. 상실과 이별, 애도와 인연의 만남은 늘 바람오라기처럼 우리의 피부에 닿아 흐르고 있으며 우리는 그 만져질 듯 말 듯한 아픔의 감각, 가벼운 웃음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들로 지는 꽃과 피는 잎이 서로 잇대고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낸다(「저항에 대하여」).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감사함을 가르쳐준다. 삶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은 산책길이며 우리는 이 길을 아껴 걸어야 한다고, 가끔은 쪼그려앉아 바람의 손길과 그것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부드럽게 권하면서(「오늘은,」).
3.
시인 최정례는 장철문의 시를 가리켜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라고 생각하는 그런 형식의 시들을 무심히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는 슬쩍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유쾌함을 갖고 있다며 그만이 발견한 이 특별한 길은 때로는 우리를 알지 못하는 구덩이로 끌고 가기도 한다고 말한 바 있다(『창작과비평』 2016 겨울). 어떤 ‘척’으로부터 참으로 멀리 있는(김민정) 장철문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자신이 느낀 것에 가장 가까이 가려 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날개를 가진 자의 발자국」은 ‘날개를 가진 새들도 발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통해 날개는 얽매임 없는 자유나 해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날개는 자유의 형식이 아니라 삶의 형식임을 보여준다. 치열하고 광범한 예술적 혁신의 고투로 서정시의 내부로부터 새로움과 살아 있음을 벼려낸(한기욱) 그다. 그는 첫 포토포에지 『날개를 가진 발자국』에서 ‘피고 지는 어느 사이’인 꽃(「저 동백은 지금,」) “생겼다 없어지는 거, (…) 어디서 온 것일 리 없고, 어디로 가는 것일 리 없는”(「어느 쪽으로 발을 내디뎌야 하나?」) ‘사람이 있고, 삶이 있는 거기’(「룸비니 근처」)로 서성이는 소롯길을 낸다.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걸어서 까만 새끼 염소 세 마리를 낳은 어미 염소를 데리러 가던 그 저물녘의 이야기를 이제 알아들을 귀가 없다고 합니다. 당신과 나의 날들은 그날의 땅거미와 함께 어느 땅밑으로 기어들어간 것일까요? 어느 서쪽에서 낮달처럼 떠 가다가 하늘 속으로 스며든 것일까요? 뿔도 없이 바위에 뛰어올라 자꾸 들이받는 연습을 하던 그 새끼 염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녀석들의 상추싹 같은 귀는. _「가을밭둑에 서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