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필립 로스.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읽는 작품마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소설에서 설정한 사건도 쇼킹한데, 그 사건을 설명하고 풀어가는 방식 또한 너무나 절묘하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입장과 사건이 결부되어 서로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이해하고, 그 판단에 입각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나간다. 게다가 사건의 진행 또한 과감하게 중간중간 불필요한 설명을 제거하고 시간을 건너뛰는 방식을 사용해서 속도감있게 전개한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루해질라치면 중간에 빠진 내용을 따라가느라 다시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필립 로스는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이나 사회문제를 직접적인 소재로 삼거나 이야기 전반에 배경처럼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휴먼 스테인>에서도 역시 다르지 않다.
첫 번째는 인종문제.
흑인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피부가 밝아서 신분을 감추고 백인 아내와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백인사회에 합류하는 야심있는 남자 ‘콜먼 실크’의 이야기다.
소설 <패싱>에서도 흑인종임을 숨기고 백인행세를 하면서 불안해하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휴먼 스테인>에서의 콜먼은 아주 냉정하게 어머니와 가족에게 절연을 선언하고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없이 밀고가는 강단을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흑인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을 했다는 오해를 받으며 대학에서 밀려나는데, 책을 읽고 내막을 알게되면 ‘천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다음은 베트남전이 남긴 정신적 트라우마.
콜먼의 애인 ‘포니아’의 전남편 ‘레스터 팔리’는 베트남전에 두 번이나 참여했던 전직군인으로, 미국으로 돌아와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감정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갑자기 아내의 목을 조르거나 심한 폭행을 하곤 한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모아 재활과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면이 소설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직장과 가정에서 벌어지는 성희롱과 성폭행문제.
포니아는 어릴 때 계부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는다. 이후 집을 나와서 10대 미혼모, 창녀생활을 하기도 하고, 대학의 청소부로 일하면서는 전략적으로 불우한 처지의 여성을 타겟으로 성착취를 일삼는 직장상사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다.
또한, 출세를 위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가식적으로 행동하며 어떻게든 윗사람을 치고 올라가고싶어하는 출세지향의 인물, 자신을 발탁해준 사람의 무고함을 변호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해서 모른척 하는 인물 등도 소설 속에 등장한다. 소설의 제목 <Hunam S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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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절대 아이들을 내게 보여주지 않겠지.” 어머니가 말했다. “넌 절대 그애들에게 내가 누군지 가르쳐주지 않겠지. ‘엄마,’ 넌 내게 이러겠지. ‘뉴욕 기차역에 와서 대합실 벤치에 앉아 계시면 애들을 깔끔하게 차려입혀서 오전 열한시 이십오분에 엄마 앞을 지나갈게요.’ 이게 앞으로 오 년 후에 내가 받게 될 생일선물이겠구나. ‘거기 그대로 앉아 계셔야 해요, 엄마. 아무 말도 하지 말고요. 그러면 내가 애들을 데리고 천천히 지나갈게요.’ 그리고 넌 내가 그 자리에 나갈 거라는 것도 잘 알지. 기차역. 동물원. 센트럴파크. 어디든 네가 말하는 곳이면 난 당연히 갈 거야. 내가 내 손자 손녀를 만져보려면 브라운 부인이니 뭐니 하는 이름으로 너희 집에 베이비시터로 들어가서 애들을 재우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난 그것도 할 거다. 브라운 부인이 되어 네 집에 청소하러 와달라고 해도 난 그렇게 할 거다. 그럼, 그럼, 난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 거야. 내겐 선택의 여지라곤 없으니까.”
“없다고요?”
“선택할 수 있는 게 있니?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냐, 콜먼?”
“저랑 의절하는 거죠.”
휴먼 스테인 1 | 필립 로스, 박범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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