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간직하는 기억은 오해여도 좋았다”
고요가 부서지는 순간에 발생하는 서정
우리 내면에 균열을 일으키는 파안(破顔)으로서의 시
문학동네시인선 227번으로 이동욱 시인의 시집 『우리의 파안』을 펴낸다. 2007년 서울신문에 시가, 2009년 동아일보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2019년에 소설집 『여우의 빛』, 2021년에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를 나란히 펴내며 시와 소설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단단히 구축해왔다. 『우리의 파안』은 그의 두번째 시집으로, 더욱 깊어진 시세계를 담아냈다. 첫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에서는 슬픔에서 섬광이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해 시화한 그는 『우리의 파안』에서는 고요가 부서지는 순간에 발생하는 역설적인 서정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첫 시집의 주요 이미지가 말과 사물들이 스치며 피어나는 불꽃들이었다면 이번 시집의 주요 이미지는 우리 내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커다란 웃음, 파안(破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이 세계와 주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임을 폭로하며 새롭게 조립될 파편들을 만들어낸다”(해설)는 평론가 오연경의 말처럼 이동욱의 파안은 새로움이 탄생될 토대로서의 부숨이다. “그에겐 한 번의 도약이 남았다”(「공간이 나를 흔들 때까지」)라는 마지막 시의 시구처럼 그의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를 통해 우리 내면의 세계는 끊임없이 재탄생한다.
기린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럭무럭 자랐다
슬픔이 되기 위해 종일 먹었다
(……)
모든 깃발이 사라졌다
나는 줄곧 패자를 사랑했다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공
누군가 아직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_「폐회」에서
『우리의 파안』에서는 반과 정, 하강과 상승, 없음과 있음이 수시로 교차된다. 이 시집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시 「폐회」는 “기린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럭무럭 자랐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음 “슬픔이 되기 위해 종일 먹었다”라는 뜻밖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유머의 원리와도 유사한 이와 같은 일종의 심상 갱신은 읽는 이에게 긴장과 파안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는 시 전반에 걸쳐 보여진다. 높이 솟았던 깃발은 사라지고 “줄곧 패자를 사랑”한 화자는 텅 빈 올림픽공원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인물을 지켜본다. 공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왕복 운동을 하고, 시는 “누군가 아직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로 끝난다. 아니, 계속 이어진다. 이처럼 서정과 긴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미지는 시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과도와 과육 사이
접시의 고요 위로 껍질이 떨어진다
접시를 들고 일어선다
모두 나를 지켜본다
등뒤로 방문이 열린다
접시 위에 담고 싶은
작고 초라한 발등이다
_「우리의 파안」에서
표제작인 「우리의 파안」. “두 달 만에 퇴원한 엄마가 방에 있”을 때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접시 위로 떨어지는 복숭아 껍질이 고요를 깨트릴 정도로 적막할 뿐이다. 고요를 그리는 이 탁월한 묘사에 마치 껍질이 떨어지며 쿵 소리를 내는 듯하다. 이 시에서는 아무도 파안하지 않는다. 화자는 심지어 “접시를 깨트리고 싶어”하지만 그저 조용히 접시를 들고 일어설 뿐이다. 어머니가 있는 방의 방문이 열리며 시는 소리 없이 끝난다. 그러나 이 시의 제목은 ‘우리의 파안’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파안은 숨소리도, 침묵도, 접시 위로 떨어지는 과일 껍질도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동욱은 그저 큰 소리의 웃음이 아니라, 고요한 파안이 우리 내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음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보여준다.
저기에 기척이 있다
무언가 날아오른다
흔들리는 게 무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살고 싶어
그 날개를 훔친다
_「밤까마귀」에서
시집의 해설을 쓴 오연경은 ‘은둔’이라는 키워드로 이동욱의 시를 설명한다. “이동욱 시의 주체는 도시의 거리 한복판에서 간격을 만들어내고 경계선을 재배치하는 ‘거리의 은둔자’라 부를 만하다”(해설)고, “경계 너머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의 배치를 바꾸고자”(김홍중, 『은둔기계』, 문학동네, 2020) 하는 존재로서의 은둔자라고 말이다. 이동욱은 시를 통해 우리 안에서 파안의 개념을 바꾸었듯 여러 차례의 갱신을 통해 우리의 인식을 재배치한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희망은 절망으로, 그리고 다시 절망은 희망으로 뒤바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마지막에 놓인 시는 의미심장해질 수밖에 없겠다.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 그는 “한 번의 도약이 남았다”(「공간이 나를 흔들 때까지」)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그가 “삶의 매 순간이 불행의 연속일지라도, 세계가 폭력과 갈등과 오해로 들끓을지라도, 보이지 않게 되어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어두운 곳으로 밀려나는 세상일지라도”(해설) 이 세계 안에서 살아나가고자 하는 의지이며, 그가 희망을 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의지를 ‘우리의 파안’이라고 불러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