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최고의 블랙유머리스트
커트 보니것 특유의 풍자와 블랙유머 폭탄이 터진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로 순문학 팬들과 장르문학 팬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고, 1960년대 반전운동과 히피의 카운터컬처를 대표했으며, 파편적인 구성과 메타픽션적 글쓰기로 토머스 핀천, 저지 코진스키, 존 바스 등과 함께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만들어낸 작가 커트 보니것. 전쟁과 학살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갈수록 환경 파괴가 심각해지는 현실 속에서, 인간을 불신하면서도 끝까지 인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던 그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유머’였다. 그는 유머야말로 공포에 대한 반응이자 신을 찾아서 안도하고 싶은 몸짓이라고, 그리고 모든 훌륭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위대한 농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보니것은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에게도 무시무시한 종류의 웃음이 있을 겁니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아무리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본질적으로 웃음을 잃지 않았다.
1922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독일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 아래서 유머를 체득하고, 고등학교 시절 글쓰기와 과학 전공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유럽으로 간 뒤 독일군 포로가 되어 13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쓸어버린 드레스덴 대공습을 경험한 그는 이 가공할 만한 인류 대학살극에 큰 충격을 받고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났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교묘한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이 인간을 그리고 이 지구를 위협할 수 있는 광기와 무분별한 오만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다. 『마더 나이트』 또한 커트 보니것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핵심에 놓인 소설이다.
전쟁이 빚어낸 인간의 위선과 오만, 야만과 광기를 파헤치다
1961년 발표된 『마더 나이트 』는 보네거트의 세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996년 케이트 고든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데, 여기서 주인공 하워드 W. 캠벨 2세 역을 맡았던 배우 닉 놀테는 커트 보니것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하워드 W. 캠벨 2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부에 포섭된 첩보원으로, 나치당원이라는 가면을 쓰고 교활한 반유대주의자로서 나치 대중연예선전부에서 라디오 선전원으로 일했다. 이 책은 캠벨이 전쟁이 끝나고 십육 년이 지난 1961년 이스라엘 감옥에 전범재판을 받기 위해 갇혀 있는 동안 쓴 고백록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전범이 될 이유는 없다. 그는 나치당원이라는 가면을 썼을 뿐 실제로는 미국을 위해서 일한 첩보원이었고, 희곡 작가였고, 선량한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자아를 절대 혼동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캠벨은 미국 정보부의 도움으로 무사히 미국으로 빠져나와 정체를 숨긴 채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허름한 다락방에 세 들어 조용히 살아간다. 가끔 신문이나 잡지에서 사라진 전범을 모아놓은 리스트에 올라간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체스 말을 들고 아래층에 사는 화가 크래프트를 방문하면서 조용했던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우편물만 가득하던 우편함에서 인종차별주의 내용으로 가득한 <백인 기독교 민병대>라는 신문과 미국 재향군인회 지부에서 온 편지, 그리고 <백인 기독교 민병대> 구독자들이 보낸 수많은 편지를 발견하고 얼마 안 있어 그에게 방문객이 찾아온 것이다. 바로 전후 미국에서 나치 부활을 꿈꾸는 <백인 기독교 민병대>의 발행인 라이오넬 J. D. 존스 목사와 킬리 신부,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그의 아내 헬가이다. 그러나 사실 헬가는 형부를 사랑해서 언니 행세를 한 처제 레지였고, 캠벨을 세상으로 끌어낸 크래프트와 함께 소련의 스파이였다.
그리고 ‘전쟁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독일군 손에 죽은 동료 군인들의 복수를 위해 그의 다락방으로 찾아와 주먹을 날리고, 오래전 그를 체포한 적이 있는 버나드 B. 오헤어가 근거 없는 복수심에 불타 그와 한판 붙으러 온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캠벨에게 접근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부조리하고 뻔뻔하며, 그래서 기괴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이들의 행태를 보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수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부활을 꿈꾸는 인종차별주의자나 캠벨을 소련으로 데려가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려고 하는 소련 스파이나 개인적인 화풀이 대상으로 캠벨을 지목한 남자나 모두 위선과 오만, 야만과 광기에 사로잡혀 반성할 줄 모르는 인물들이다. 캠벨은 버나드 B. 오헤어에게 이렇게 외친다.
“네 모습을 봐라! 맨손으로 악을 물리치려고 왔지만, 지금은 버스 옆구리에 치인 사람 꼴로 비참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건 자업자득이다! 그리고 순수한 악을 물리치겠다고 전쟁을 일삼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꼴이 된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즈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319~320쪽)
결국 캠벨은 자신이 저지른 ‘반인류적인 범죄’에 대해 재판을 받기 위해 이스라엘에 가기로 마음먹고 자신을 신고해달라고 다락방 건물 2층에 사는 유대인 닥터 엡스타인을 찾아간다.
캠벨은 비록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 역할에 너무도 충실히 임했기에, 그래서 그것이 자신에겐 연기였을지 모르지만 전쟁 상황에선 분명 ‘범죄’였기에 끝내 자신을 전범으로 고발한다. 이런 점에서 캠벨은 그를 둘러싼 저 비뚤어진 인물들과는 달리 건강하고 양심적이다. 스스로 반성할 줄 알기에.
‘저 위의 누군가’가 가장 사랑한 작가, 커트 보니것
보니것은 1966년 재출간된 『마더 나이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내 이야기들 가운데 내가 그 교훈을 아는 유일한 이야기이다. 뭐랄까, 대단한 교훈은 아니고, 그저 우연히 알게 된 교훈이다. 그것은, 즉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종류든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든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이든. 그러나 그 가면에 대한 책임은 분명 자신에게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저지른 온갖 범죄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 누구의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되고 돌릴 수도 없다. 하워드 W. 캠벨처럼 말이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가 자행되고,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고, 온갖 비도덕적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무차별 가자지구 공습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사태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커트 보니것이다. ‘살아생전에 인간의 양심과 선량한 휴머니즘을 열렬히 옹호했고, 히틀러와 조지 부시와 미국 사회를 맹비난했던’,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했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커트 보니것이 사망했을 때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비록 그가 1997년 발표한 『타임 퀘이크』를 끝으로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팬들은 꾸준히 그가 다시 펜을 들기를 기다렸고 새로운 작품을 읽게 되리라 생각했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풍자와 블랙유머 가득한,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드는 작품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커다란 울림을 만들 수 있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