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사랑과 화려한 연인들의 꿈속 같은 시대
방랑하고, 성장하고, 반항하며 보낸 청춘의 기록
물오른 젊음과 아름다운 활기로 빛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환상적인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 『밤은 부드러워라』 등 피츠제럴드의 걸작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작품. _패트릭 오도넬
미국 1920년대 재즈시대 문학의 거장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낙원의 이쪽』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5번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에 기반한 이 작품은 명문 프린스턴대학교를 배경으로, 오만하지만 사랑스러운 소년 에이머리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그린다. 여러 연인과의 관계를 통해 에이머리는 좀더 성장하고 자신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지만, 사랑의 실패로 공허함을 느낀다. “나는 나 자신을 알아, (…) 하지만 그게 전부야”라는 에이머리의 마지막 말은 화려한 재즈시대 젊은이들의 이면을 대변하는 외침과도 같다.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새로 소개되는 『낙원의 이쪽』은 피츠제럴드의 첫 장편소설이자 성공작으로, 『위대한 개츠비』 『밤은 부드러워라』 등 그의 걸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길 잃은 세대의 표류하는 젊음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의 시작과 끝
‘낙원의 이쪽’은 영국 시인 루퍼트 브룩이 쓴 시 「티아레 타히티」의 마지막 구절로, 완전한 낙원에 닿기 전의 불완전한 감각적 세계인 현세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피츠제럴드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에이머리 블레인이 ‘길 잃은 세대(제1차세계대전 후 호황기에도 불구하고 공허감에 못 이겨 현실의 쾌락을 추구하던 세대로, 거트루트 스타인의 조어다)’로 태어나 세속적 인물에서 인격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에이머리는 1896년 존재감 없는 아버지 스티븐과 조금은 별나고 느슨하지만 상냥한 어머니 비어트리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 권의 책과 천 개의 거짓말로 자라난” 에이머리는 독서에 몰두하고 “아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후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하여 교내에서 명예와 명성을 얻기 위해 애쓴다. 미식축구팀에 들어가 활약하고, 학교 신문인 <데일리 프린스터니언>의 편집위원이 되며, 잘생겼다는 칭찬에 흐뭇해하기도 한다. 한때 허영과 자만심으로 가득했던 에이머리의 내면은 복잡하고 부침이 많은 와중에 자라나게 되는데, 그 계기는 네 명의 여성—이저벨, 클래라, 로절린드, 엘리너—과의 친밀한 관계다.
에이머리의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저벨은 단도직입적인 성격과 아름답다는 소문으로 매우 유명하다. 쉽게 흥분하여 순간적으로 감정이 매우 격해지는 성격이나, 요령이 좋아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을 그녀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이저벨과 에이머리는 거의 키스할 뻔하지만, 이저벨을 쫓아다니던 소년들이 갑자기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기회는 지나가버린다.
두번째 연인 클래라는 에이머리의 팔촌이며 슬하에 두 아이를 둔 과부다. 어머니 비어트리스의 옛 연인이자 에이머리의 멘토인 몬시뇨르 다시 신부가 에이머리의 먼 친척인 클래라가 사별하여 가난하게 살고 있다며 그녀를 살펴봐주기를 청한다. 에이머리는 그리 내키지 않지만 길을 나서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클래라는 찰랑거리는 금발에 순수하고 눈부신 미소를 짓는 멋진 여성이다. 클래라와 함께라면 무엇을 하든 좋을 정도로 에이머리는 그녀에게 빠져들어 사랑을 고백한다. 클래라 역시 에이머리에게 호감이 있지만, 그녀는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한 번도 없어” “나는 절대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나는 두 아이가 있고 그애들을 위해 살고 싶어”라는 말로 거절한다.
세번째 연인 로절린드는 에이머리 일생일대의 사랑이다. 프린스턴대학교 동문 앨릭의 동생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로절린드는 여러 모로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밤은 부드러워라』의 니콜, 더 나아가 피츠제럴드의 아내인 젤다까지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마법 같은 그들의 사랑은 황홀경으로 변해 매일 커져갔고, 둘은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에이머리한테는 “이전 연애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고 거의 후회도 되지 않는 어린애 장난처럼 보였다”라고 여겨질 정도다. 이렇듯 둘의 사랑이 깊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 대학 졸업 광고 에이전시에 취직해 변변치 않은 급여를 받는 에이머리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혼자서 머리 손질도 못하는 로절린드는 가난한 에이머리와 결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무와 꽃에서 떨어져 작은 원룸 아파트에 갇힌 채 당신을 기다릴 수가 없어요” “햇빛과 예쁜 것과 쾌활함이 좋아요—그리고 책임감은 두려워요”라며 에이머리에게 이별을 고한다.
네번째 연인 엘리너는 “아름다움의 가면을 쓰고 에이머리에게 가까이 기어온 마지막 악마”였다. 비 오는 날 건초 더미 안에서 폴 베를렌의 시를 낭송하던 엘리너를 에이머리가 발견하는 장면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둘은 처음부터 반쯤 사랑에 빠졌지만, 에이머리는 여전히 로절린드의 그림자 아래 서 있다. 그는 이제 “예전에 사랑했던 것만큼 상대를 사랑할 수는 없음”을 알았다. 로절린드가 아닌 사람은 기껏해야 “대체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의 원형이라고 느껴질 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인 인물인 엘리너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왜 나는 여자애인 거죠? 왜 나는 멍청하지 않은 거죠……? 당신을 좀 봐요. 당신은 나보다 더 멍청하죠, (…) 그런데도 당신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어딘가로 뛰어갈 수 있고, 감상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여자들과 놀아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당연하게 할 수 있어요—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머리를 가졌으면서도 미래의 결혼생활이라는 가라앉는 배에 묶여 있죠. (…)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에 비해 훨씬 똑똑한데도 그들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하고, 그들의 관심을 얻고자 그들이 나의 지성을 가르치려 들어도 내버려두어야만 해요. (363~364쪽)
재즈시대 문학의 빛나는 정수
대작가의 첫 초상, 첫 자전소설
미국의 1920년대 전후 호황기를 뜻하는 ‘재즈시대’는 피츠제럴드가 만들어낸 말로, ‘광란의 20년대’ ‘무법의 십 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 경제 성장과 더불어 빅토리아시대의 ‘정숙함’이라는 가치가 무너지던 급변의 시기로, 양적 팽창으로 이전의 문제들을 덮어버렸다는 어둠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연달은 사랑의 실패 후 공허함과 환멸, 거대한 무기력을 느끼는 에이머리의 모습은 재즈시대의 어두운 이면과도 같다. 그는 일하거나 글을 쓰거나 사랑하거나 방탕하게 살려는 욕망도 잃어버렸다. 그는 몇몇 여자와 여기저기서 만난 남자들에게 자신이 종종 잔인하게 굴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그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정신적 모험을 떠났지만 아무 탈 없이 돌아온 사람은 그뿐이었다”라고 그는 회한에 잠겨 생각한다. 에이머리는 말한다. “그래—나는 젊은 시절에는 에고티스트 에고티스트(egotist)는 에고이스트(egoist)와 비슷한 의미지만, 전자는 ‘자아도취자’, 후자는 ‘이기주의자’에 가깝다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였는지도 몰라. 하지만 자신에 너무 몰두하면 병적인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지.”
이제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원하기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안정감을 주고 싶어한다. 그는 드디어 지독한 환멸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보다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방랑하고, 성장하고, 반항하고, 수많은 밤을 곤히 잠들 수 있었다.” “타락의 기준”이 “가식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에이머리는 유치한 허영심에 가득차 있던 대학 시절에 비해 분명히 성장했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 훨씬 안정된 에이머리의 내면은 여전히 여러 생각으로 들끓고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남아 있고, ‘로절린드’로 대변되는 오래된 야망과 실현되지 못한 꿈이 아직도 희미하게 꿈틀거린다.
소설은 “나는 나 자신을 알아, (…) 하지만 그게 전부야”라는 에이머리의 마지막 외침으로 끝난다. 이 외침은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는 파티에서 키스를 나누는 재즈시대 젊은이들의 복잡한 내면을 적확하게 드러내는 고요한 비명이다. 전쟁을 거치고 암울한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오직 현세의 행복과 아름다움에만 집중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존적인 불안에 시달리며 갈 곳을 잃은 “안절부절못하는 세대”의 안팎을 세심하게 짚어낸다. 에이머리는 각각 『위대한 개츠비』 『밤은 부드러워라』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와 딕 다이버의 젊은 분신과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츠제럴드의 첫 장편소설이자 성공작인 『낙원의 이쪽』은 다음에 쓰게 될 대작을 예고하는 작가의 첫 초상이 담긴 자전소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