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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 더 락 상세페이지

러브 온 더 락

창비시선 535

  • 관심 8
창비 출판
소장
전자책 정가
10,400원
판매가
10,400원
출간 정보
  • 2026.04.15 전자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 EPUB
  • 약 3.9만 자
  • 40.7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36484651
UCI
-
러브 온 더 락

작품 정보

“우리는 이 케이크를 먹고 헤어지고요
남은 마음은 포장하고요”

10만 독자가 열광한 고선경의 달콤짜릿한 세계
얼음 위에 쏟아진 독한 술처럼 숨막히게 아찔한 사랑

톡톡 튀는 발랄함과 감각적인 시어로 수많은 젊은 독자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온 고선경 시인의 세번째 시집 『러브 온 더 락』이 출간되었다. 이전 시집들을 통해 반짝이는 일상의 감각과 사랑스러운 위트로 한국 시단에 대체 불가한 고유의 영역을 구축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짙어지고 서늘해진 시선으로 경이로운 문학적 확장을 선보인다. 시인이 새롭게 주목한 것은 낭만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이다. 전작들이 지녔던 귀엽고 다정한 온기에, 얼음 위로 쏟아낸 독한 위스키 같은 매운맛을 더해 피로한 청춘의 민낯을 훌륭한 블랙코미디로 엮어냈다. 무조건적인 위로나 맹목적인 사랑 대신, 이별 앞에서도 감정의 잔량을 계산하고 내일의 출근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웃픈’ 로맨스. 가장 세속적인 언어로 가장 순정한 진심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문장들은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엉망진창이 된 청춘들에게 통쾌하고도 끈적한 위로를 건넨다.

“나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빨리”
생존과 낭만이 충돌하는 리얼리즘의 카타르시스

이번 시집의 강력한 매력은 환상에 기대지 않고, 우리 삶의 비루한 조건들을 시의 한복판으로 성큼 끌고 들어온다는 점이다. 고선경의 시에서 사랑은 더이상 뜬구름 잡는 추상어가 아니다. 화자는 사랑을 나누는 천사 앞에서도 천장만 보며 “이 집 보증금이 삼천이야”라고 읊조리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입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기도”를 드리자면서도 “나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빨리” 끝내자고 서두른다(「엔젤 오브 시티」). 이처럼 시인은 부동산, 출근, 영수증, 모바일 청첩장 등 일상적인 소재를 동원해 동시대인이 겪는 피로감을 정조준한다. “우리는 이 케이크를 먹고 헤어지고요/남은 마음은 포장하고요”(「Guilty Favorite」)라며 이별조차 테이크아웃하듯 경제적으로 처리하려는 태도는 시대상을 리얼하게 반영하는 동시에, 팍팍한 현실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뼈아픈 공감과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너를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너를 위해 돈을 벌고 싶다”(「눈 내리는 3월에 떠오른 좋은 생각」)라는 역설적인 선언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의 동기가 ‘노동의 목적’으로 치환된 이 씁쓸한 구절은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애틋하고 숭고한 고백으로 읽힌다.

달콤한 과즙 이면의 서늘한 향기, 그 감각의 범람
파괴를 무릅쓰고 기꺼이 들이켜는 매혹적인 독주 한잔

나아가 『러브 온 더 락』은 한편의 하이틴 누아르를 보는 듯한 강렬한 후각적 심상이 뒤따른다. “향기의 범람”이자 시집 곳곳이 “후각이라는 코드로 이루어져 있”(해설, 인아영)기에 시적 경험의 밀도가 높다. 멸망하고 끝난 뒤에도 “사랑보다 오래 버티는 냄새”(「사랑과 자유와 평화」)를 집요하게 붙잡아, 지금 여기의 생생한 감각으로 되살려놓는다. 달콤한 과일 향으로 우리를 유혹하던 화자는, 기어이 “껍질이 두꺼운 열매를 짓이기고 난 다음의 감정”(「러브 온 더 락」)을 직시하게 한다. 상처 입고 물러터진 감정들을 부수고 짓이겨 얻어낸 맑고 독한 진심, 그것이 바로 시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한잔의 칵테일이다. “나는 더 망해야 한다는 것을//그리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후르츠 멜란지」)라고 선언하는 화자의 뻔뻔하고도 씩씩한 태도는 불안한 시대를 견디는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낸다. “아찔한 빛깔로 열린 열매의 내부에서 폭죽이 터지듯이”(「러브 온 더 락」) 기꺼이 망가지고 짓이겨지며 사랑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겠다는 파괴적인 선언은 묘한 쾌감마저 안긴다.

기꺼이 망가지는 우리들의 아름답고 찌질한 블루스
상처받은 당신에게 건네는 맵고 달콤한 위로

『러브 온 더 락』은 사랑마저 피로해진 이 시대를 버텨내는 우리 모두의 찌질하고도 눈부신 자화상이다. 독자들은 자조와 위악으로 무장한 화자의 고백 앞에서 킥킥대며 웃다가도, 어느새 서투르게 삐걱거렸던 자신의 지난 연애와 고단한 일상을 떠올리며 가슴 한편이 시큰해짐을 느낀다. 돈과 생존이라는 거대한 농담 속에서도 끝내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고 마는 우리의 벅찬 삶은, 비루하지만 찬란하기 때문이다.
차갑고 단단한 현실 위로 쏟아진 이토록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사랑의 기록은 평소 시를 즐겨 읽지 않던 독자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사로잡을 것이다. “단 한 페이지만 마셔도 그녀가 숙성시켜온 일생에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추천사처럼, 고선경이 내미는 이 눈부신 잔을 기꺼이 받아들길 권한다.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맵고 달콤한 세계에 당신도 완벽하게 취해버리고 말 테니.

책 속으로

너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분홍색 카디건과 청바지를 골라 입었지 상점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노래를 기억해두었고 캐러멜 하나를 너에게 쥐여주면서 이거 내 전부야, 말했어

전부를 건네받고도 질투를 느낀다는 게 이상하지 않고
네가 꿈에서 깨물었다는 과일의 이름이 궁금할 뿐이지

나는 너에게 자두에 가까운지 딸기에 가까운지
어떤 붉음일지
미끈한 턱을 타고 흘렀을 과즙의 끝 맛을 상상했지
―「고백」부분

오려진 손톱 발톱이 불투명하게 바닥을 덮는다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훔쳐내려 하지만
바닥이 손을 훔친다

손바닥에는 무른 딸기 냄새…… 짓이겨진
빨래를 털어 널 때는 우리가 충분히 함께인 것 같았다
가끔 티셔츠 안쪽에서 이름 모를 곤충이 튀어 올랐고 나는

사랑해!
외치고서 책으로 때려 죽였다
―「늦여름 동거」 부분

우리가 살아서
너무 살아서 죽음 같은 키스를 나누고 있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붓끝에서 이 장면이 채색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캔버스 안쪽의 검푸른 바다가 넘실대며 촉감을 지우려 할 테지만 나는 “천국에도 주정뱅이와 협잡꾼이 있어” 속삭일 수 있다
―「스푸마토」 부분

우리 여기서 한 일이라고는 물고기 밥 주는 것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건 해야 할 일의 전부와 같았다 수족관에 가지 않고 아메리칸 빌리지에 가지 않고 단지 태닝 키티가 그려진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하 시내를 걸었어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진짜 촌스럽게
좋았지?

너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지만
나는 사랑에 실패하지 않지

그걸 배우러 너랑 여기에 온 것 같아
―「오키나와 러브!」 부분

미안하거나 미워한 친구와 우연히 길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본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너에게 깨진 사탕 조각처럼 자꾸만 눈에 밟히고 싶었던 것 같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잃을 일이 없는 (거의 추억이 될 뻔한) 기억의 한 장면에 삽입하고 싶었던 음악 또는 소음

오후의 감귤나무 위로 쏟아지던 햇살 눈부셨고
저녁에는 금속처럼 빛을 반사하며 식어가던 바닷물
빨고 말려도 눅눅한 수건
―「물거품과 면도날」 부분

우리는 이 케이크를 먹고 헤어지고요
남은 마음은 포장하고요 어느 날 세면대 앞에서
레몬 향 비누 거품에 다 씻길 테고요

네가 사준 흰 운동화를 신고 찾아간 공원
벤치에 앉아 레몬 맛 맥주를 마셨습니다
사람들 말소리를 좀 듣고 싶었는데
맥주에서 고수 향이 느껴졌습니다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잔디밭에서 개들이 뛰어노는 모습이나
관망하겠습니다
―「Guilty Favorite」 부분


계절성이라는 말에는 의혹이 뒤따른다
의혹과 유혹

멀어진 친구가 어느 날 티브이에 나왔다
몇년 전이더라,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기에
하지 않았다

미워하는 마음이든 축하하는 마음이든
전할 수 없다면 가지기도 싫다
―「후르츠 멜란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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