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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이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에서 그저 잠시잠깐 그 모습을 드러낸데 불과한 라비니아를 과연 어떤 식으로 재창조했을지 궁금했는데, 내심 현대적 여성성을 기대했었나 봅니다. 작품 중반까지 모친에게 내내 억압당하는 라비니아의 모습이 충분히 이해는 되면서도 답답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판세가 드러났다 싶은 시점에서야 비로소 내면의 능동성이 표면화되는 등 제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좀 다르더군요. 어떤 면에선 그녀의 '미쳐버린' 모친 아마타가 자기주장 확실하고 능동적 행동력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신화나 비극 등에서 여성에게 그러한 자기주장과 행동력을 부여할 땐 대체적으론 '악녀' 역할로서죠. 여기서의 아마타 역시 마찬가지고요. 여신들에겐 그러한 특성을 장점 내지 개성으로 허용할 수 있을지라도 보통의 인간 여자들에겐 결코 미덕이 되지 못하는 당대의 현실이랄까요... 그러나 애당초 베르길리우스의 시 속에선 생동감과 자기의지가 전적으로 결여됐었던 라비니아 캐릭터를 당대 사회 내에서의 여성성, 시대 정서 등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그 존재감과 주체적 역할을 되살렸다는데 그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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