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먼이 대표적인 고딕 작가지만 부드러움과 밋밋함의 경계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다. 고딕소설이 피 튀기는 호러와는 거리가 있지만(또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프리먼의 유령들은 퍽 온건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벽 그림자」는 프리먼의 유순한 유령 중에서는 공포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그림자(들)를 보여준다. 글린 가의 2남 3녀 형제 중에서 막내 에드워드가 갑자기 죽는다. 남자형제 즉 헨리와 에드워드가 격한 말다툼을 주고받은 직후에 생긴 일. 세 자매는 에드워드의 죽음에 헨리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헨리가 과연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지 가늠해보면서 공포감에 휩싸인다. 이 공포감은 벽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로 극대화된다.
<책 속에서>
“에드워드가 죽기 전날 밤에 서재에서 헨리와 에드워드가 얘기를 나누었어.” 캐롤라인 글린이 말했다.
그녀는 지긋한 나이에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로 굳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다. 그녀의 말투는 표독스럽지는 않지만 몹시 심각했다.
그녀의 동생 레베카 앤 글린은 뽀글뽀글 부풀린 잿빛 머리칼 사이로 통통하고 붉은 혈색의 얼굴을 하고서 언니의 말을 수긍하듯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넓게 주름이 잡힌 검은 명주옷 차림으로 소파 구석에 앉아서, 언니 캐롤라인에게서 언니 스티븐 브리검 부인을 향해 겁먹은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한때 에마 글린이었던 스티븐 브리검 부인은 가족 중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고, 화려하게 농익은 매력으로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풍만한 자태로 꽉 채워진 커다란 안락의자가 부드럽게 앞뒤로 흔들리는 동안, 검은 명주옷이 살랑거렸고 가장자리 주름 장식이 가볍게 하늘거렸다. 죽음의 충격조차(그녀의 동생 에드워드가 그 집에 시체로 누워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침착한 태도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에드워드는 막내였고, 그를 몹시 아끼던 그녀였지만 시련의 물결 한복판에서도 그녀는 위신을 잃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삶과 한결같은 자태의 당당함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