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쓴 작가의 메모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기록
무명 병사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한 진실을 전하는 걸작
제1차세계대전 당시 앙리 바르뷔스의 참전 경험에서 탄생한 장편소설. 바르뷔스가 최전방에서 복무하며 틈틈이 쓴 메모를 바탕으로,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라 평범한 병사들이 견디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담아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16년 발표되어 그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어느 분대의 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작가 자신이 투영된 화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 외에도 분대의 일상이나 분대원들의 대화를 꼼꼼히 기록한다. 출신 지역도 직업도 제각각인 분대원들은 민중 그 자체다. 바르뷔스는 민중이 겪는 생생한 고통과 함께, 전쟁의 비인간성을 목도한 민중의 오롯한 각성 그리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현장감 넘치는 문체로 그려냈다. ★ 1916년 공쿠르상
앙리 바르뷔스에게 공쿠르상을 안긴 대표작
이후의 전쟁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적 작품
제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포화』는 바르뷔스가 최전방에서 복무하며 틈틈이 쓴 메모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기록이며, 유럽이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던 1916년 출간된 선구적 작품이다. 1914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바르뷔스는 마흔한 살, 보충역 동원령이 있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면 되는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징병관을 찾아가 사병으로 현역 입대해 전선에 배치되었다. 농민, 노동자, 하층민 출신 병사들과 부대끼는 동안 포격 속에서 부상자들을 옮긴 공으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상과 피로로 쇠약해져 후방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1917년 전역할 때까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다.
『포화』는 바르뷔스가 후방과 병원에 있었던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 1916년 8월부터 11월까지 신문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출간된 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된 『포화』에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특히 소설의 내용에 공감한 병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 이후의 전쟁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헤밍웨이는 “지난 전쟁 동안 나온 책 중에서 훌륭한 것은 『포화』뿐”이라고 했다. 레닌, 그람시 등 지식인들 또한 민중의 각성을 그린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기존의 전쟁문학은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애국심과 사기를 고취하고 승리를 찬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전쟁중에는 당국의 검열이 존재하고 작가들 역시 자기검열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으나, 바르뷔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분대의 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작가 자신이 투영된 화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 외에도 분대의 일상이나 분대원들의 대화를 꼼꼼히 기록한다. 바르뷔스는 평범한 병사들, 이름 없는 병사들을 내세워 그들이 당면해 있는 전쟁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집중포화나 무인지대처럼 극적인 고통은 물론 추위, 배고픔, 향수병, 참호에서의 지겨운 대기 등 덜 극적인, 그러나 더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고통까지 말이다.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 찾아오는 희망의 새벽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묻히지 않는 민중의 외침
『포화』는 총 24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확한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런데 1장 「전망」과 24장 「새벽」의 배경이 각각 석양과 새벽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석양과 새벽 사이에는 길고 어두운 밤이 있다. 그 고난은 20장 「포화」에서 절정에 이르지만, 동시에 전쟁의 희생자였던 민중이 깨어나는 계기가 된다. 마치 지옥을 눈앞에 펼쳐놓은 듯한 19장 「포격」과 20장 「포화」를 거쳐, 부상자들을 묘사한 21장 「구호소」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대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이 싹트고, 병사들은 국가 대 국가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전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들이 말살해야 할 적은 독일군이 아니라, 전쟁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한편 22장 「산책」은 분대원들이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때를 그리고 있어, 혹독한 전장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장이야말로 가장 뼈아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자 부족과 온갖 불편에 시달리는 참호 생활과 대조적으로, 도시는 전쟁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기차고 풍요롭다. 병사들은 전방에는 불행한 자들이 너무 많고, 후방에는 행복한 자들이 너무 많다며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한다고 씁쓸히 말한다. 그리고 24장 「새벽」에서 드디어 그들의 외침이 터져나온다. 병사들은 더이상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전쟁을 일으킨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자신들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외친다.
제1차세계대전의 별명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낙관은 냉소로 바뀌었고, 전쟁은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은 전쟁과 무관하다고, 전쟁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바르뷔스가 『포화』에 담아낸 외침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