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작가의 새로운 단편.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살 방도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뇌를 ‘통째로‘ 팔아 살아가는 이야기. 짧지만 강렬한 단편이다.
인공지능 데이터 수집을 위해 사람들의 뇌에서 각종 정보들, 예를 들면 팔 하나를 움직일 때도 온 몸의 신경과 근육이 어떻게, 어떤 순서로 움직이는지까지 이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 해서 뽑아가는 방식으로 ‘뇌를 통째로 산다‘는 표현을 했는데, 정말 기발했다. 모든 입주자는 입주한 뒤 한 시간 이내로 인증을 완료하고 그 뒤로는 최소 여덟 시간 이상 두뇌연결을 진행해야 한다.
“ 두뇌연결이 진행되는 동안 내 몸은 무의식 상태로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게 된다. 프로젝트 입주 요건이 요구하는 대로 하루에 최소 여덟 시간 혹은 그 이상 계속해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누워 있으면 ‘근육 감소, 골밀도 감소, 신체 능력 퇴화, 노화 가속’이 우려되므로 운동 서비스를 신청하라고 입주 안내문에도 적혀 있기는 했다. ”
여기까지만 해도 기발했는데, 이 사회에도 신경망 피싱을 하는 범죄자가 있다는 상상력까지.
“ 디지털화해서 서버에 전송되는 나의 기억, 생각, 경험 안에는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당연히 나 자신의 모습도 각인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경망 피싱 범죄자들이 내 모습, 감각, 경험을 탈취하면 그 뒤로는 내가 현실에서 하지도 않은 음란 행위를 내 기억 속의 아는 사람과 저지르는 영상을 내가 실제 기억하는 신체 부위와 내 표정과 감각적, 정서적 반응을 활용해서 아주 사실적으로 만들어 여러 가지 범죄에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정말 으시시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작가의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각종 SNS에 모든 취미, 삶의 모든 경험을 광고나 조회수와 연결해서 돈을 벌라는 게시물들, 특히 구독자나 조회수가 많은 계정을 돈 주고 사겠다는 메시지와 광고를 보면서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 된다”는 문구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현실이라는 생각.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되고 어쩔 수 없이 그 수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더 이상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는 빈곤층들이 최후에 선택하는 이곳, 폐교된 대학교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든 이 기계학습센터 방 안에 누워 저물어가는 분홍빛 햇살을 바라보는 ‘나‘도 그렇게 ‘끝의 끝‘으로 몰린 사람이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계약이 만료되어 센터를 나가야하는 시점에서 자신을 곤란한 처지로 몰아가는 915호를 잔인한 방법으로 밟아버린다. 아무런 죄의식없이.
어쩌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상황이 극단적인 수단까지 서슴없이 선택하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빈곤’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돈을 모아주고 잠시 잠잘 곳을 제공하는 것보다 ‘당신들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겠다. 빈곤사회연대 운동을 지지하는 작가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주인공은 별다른 꿈을 꿀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피해 달아날 곳이 없는 분들께 제가 뭔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분들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다들 빈곤사회연대 후원하십시오 투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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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행정의 관점에서 볼 때 서울 한복판에 전입신고를 하고 주소지를 갖고 살 돈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밀려나고 밀려나다 못해 이 산속에 모여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으니까 살고 있을 뿐이다.
너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듯, 네가 죽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창문 | 정보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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