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를 비롯한 서인도제도의 섬 외에 좀비의 또 다른 발상지는 아프리카다. 좀비를 아프리카로 데려간 최초의 작가는 아마 비비언 마이크일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두루 탐험한 경험을 십분 살려 아프리카의 마법과 걸어 다니는 시체를 결합한 단편 「화이트 좀비」를 선보였다. 제목 때문에 종종 영화 「화이트 좀비」의 원작으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실상은 영화를 본 마이크가 깊은 인상을 받고 자신의 단편에 제목으로 차용한 결과다.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에일릿은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 행정관이다. 그 트라우마의 한 부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이자 전임 행정관 싱클레어가 있다. 그런데 싱클레어는 죽은 지 1년이 지났고, 자연사한 죽음에 별다른 의혹도 없건만 아프리카 정글의 북소리는 이상하게 에일릿의 신경을 갉아댄다. 특히 남편을 잃은 싱클레어 부인의 농장에서 그 북소리가 들려오고 뭔가 수상쩍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농장을 감시하던 에일릿의 시야에 들어온 충격적인 현장...... <책 속에서> 엔스와지 지방의 행정관으로 일하는 제프리 에일릿은 겁에 질려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20년 사는 동안 이토록 난감한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뭔가가 에워싼 채 짓누르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옥죄듯 위협하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그는 호흡 곤란과 구토감 때문에 한밤중에 화들짝 깨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구토감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한 냄새, 메소포타미아 전쟁의 종전 직후를 떠올리게 만드는 냄새가 떠돌았다. 전쟁이 끝난 후 한동안 콜레라와 이질, 일사병과 장티푸스, 괴저병이 기승을 부렸었다. 숱한 전사자들이 묻힌 곳에 또 숱한 주검이 나뒹굴었다. 적에게 쫓기고 친구에게 잊힌 생존자들은 망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못했다. 그는 파리 떼와 부패, 그리고 섭씨 50도의 뜨거운 열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 한밤중에 깨어날 때마다 그 역겨운 부패의 냄새가 악령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저널리스트. 마이크의 할아버지 때부터 인도에 정착해서 살아왔고, 아버지는 인도 주둔 해양수사관이었다. 마이크는 18세가 되기 전에 이미 세 차례의 세계 일주 경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캘커타 주둔 영국군 소속으로 복무하다가 수차례 부상을 입었다. 이후 계속 캘커타에 남아 철도 회사에 다녔다. 직업상 중앙아프리카를 비롯해 장거리 출장을 많이 다녀야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창작 활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부상 후유증으로 열대 지방을 떠나 1928년 영국에 정착하고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인도에서 미지의 원시 부족을 발견했다는 논픽션 『나뭇잎 사람들People of the Leaves』로 성공을 거두었다. 연이어 아프리카에서의 체험을 다룬 『잠베지 막간Zambezi Interlude』을 출간한 후 소설로 방향을 바꾸었고, 공포 단편집 『악마의 북Devils’Drums』, 장편 『시바의 저주The Curse of Shiva』등을 발표했다. 1935년부터는 언론계 활동에 집중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피플》지를 비롯한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 일했다. 1953년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했다가 1955년 운전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