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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신대륙의 이름이 어떻게 ‘아메리카’가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작품이다. 신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지만, 그 이름은 그의 것이 아니라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것이 되었다. 베스푸치는 최초의 발견자도 아니었고, 자신의 이름이 대륙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생을 마쳤다. 츠바이크는 그의 항해 기록을 둘러싼 오해와 출판 과정의 오류, 그리고 한 지리학자의 선택 같은 사소한 계기들이 어떻게 한 개인의 이름을 세계의 이름으로 굳혀버렸는지를 따라간다. 이 이야기에서 콜럼버스와 베스푸치는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콜럼버스는 누구보다 먼저 그 땅에 도착했지만 끝내 그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믿었다. 그는 세계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사람이었다. 반대로 베스푸치는 최초로 도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곳이 아시아가 아닌 새로운 세계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는 세계를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세계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았고, 결국 그의 이름을 대륙 위에 남겼다. 츠바이크의 다른 작품 <광기와 우연의 역사>가 떠오른다. 그 책에서 그는 한 시대의 방향조차 사소한 우연에 의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 한 번의 선택, 단 하나의 기록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아메리고> 역시 마찬가지다. 베스푸치의 이름이 세계의 이름이 된 것은 그의 의지라기보다, 그의 이름이 지도 위에 인쇄되고 반복되었다는 우연의 결과에 가까웠다. 츠바이크에게 역사는 위대한 필연이라기보다, 우연이 굳어져버린 흔적이었다. 어쩌면 그가 이토록 ‘우연’이라는 요소에 집착했던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누구보다 유럽 문명을 사랑했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조국을 잃고 망명자가 되어야 했다. 그의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는 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의 기반이 무너져버리는 경험이 깊은 상실감으로 남아 있다. 개인의 노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리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가 되는지를 그는 직접 살아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메리고>는 한 항해가의 전기라기보다, 역사의 본질에 대한 성찰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은 세계를 발견하고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사라지고, 또 한 사람은 세계를 발견하지 않았음에도 그 이름을 세계 위에 남긴다. 그리고 츠바이크 자신 역시 세계를 깊이 이해했던 사람이었지만, 끝내 그 세계로부터 밀려났다. 한 인간의 이름과 운명은 그의 본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우연과 오해, 그리고 시대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가 당연하게 부르는 ‘아메리카’라는 이름 속에는, 바로 그 우연의 역사가 담겨있다. ______ 명성의 빛나는 햇살이 다른 사람이 아닌 그에게 비추어졌다면, 그것은 어떤 특별한 공적이나 책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숙명에 의한 것이다. 오류와 우연과 오해에 의한 것이다. 명성의 햇살은 그와 함께 여행을 하며 편지를 쓴 다른 사람에게 비추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배에 탄 항해사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다름 아닌 그를 선택했고,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다. 역사의 결정은 그것이 아무리 잘못되고 부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번복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자장 속에서는 아주 작은 자극이 엄청난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 역사에서 정의를 기대하는 사람은 역사가 주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역사는 대체로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위대한 행위와 불멸을 선물하고 가장 훌륭한 자들과 용감한 자들과 현명한 자들은 이름도 부르지 않은 채 외면해버린다. 한 인간의 의지가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이름을 불멸의 경지로 이끈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의를 행하는 것 같아도 늘 정의를 베푸는 운명의 의지였다. 이 드높은 의지가 명령을 내리면 우리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 아메리고 | 슈테판 츠바이크, 김재혁 저 #아메리고 #슈테판츠바이크 #이글루 #우연의역사 #아메리고베스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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