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판] 위대한 개츠비

옮긴이의 말

위대한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이 왜 위대한가? 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주인공인 개츠비가 왜 위대한가? 이다. 먼저 개츠비가 왜 위대한 인물인지 알아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개츠비는 어떤 인물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성공 지향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나타난 개츠비의 인생 이력을 한번 따라가 보자. 그는 게으른 실패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계획표를 만들어 생활하며 다른 삶을 꿈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네소타 주 남부의 작은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교 측의 무관심과 청소부 일에 싫증을 느끼고 혼자 살던 슈피리어 호수로 돌아와 조개를 캐고 연어를 잡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다 금광으로 백만장자가 된 댄 코디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본명인 개츠에서 개츠비로 이름도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산다. 5년 동안 백만장자의 비서 노릇을 하며 상류사회의 교육도 받지만, 모시던 댄 코디가 죽자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던 중 상류층 아가씨인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백만장자라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의적으로 같은 계급의 사람으로 믿게 행동해서 데이지의 사랑을 얻는다. 그러나 계급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던 중 외국으로 파병된다. 전쟁 중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승진을 거듭하다 전역하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여자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빈털터리로 전전하다가, 암흑계의 거물이자 도박사인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 어두운 방법으로 많은 부를 쌓게 된다. 그가 부를 쌓으려 했던 목적은 오로지 사랑했던 여인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결국, 여자의 사랑을 얻게 되지만, 그 사랑은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꿈꾸었던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러던 중 여자가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스스로 그 여자의 죄를 뒤집어쓰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이런 개츠비의 인생 이력만 보면 사실 별로 위대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여자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어두운 방법으로 부자가 된 성공 지향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위대하다고 할 수는 없고 자수성가한 ‘대단한’ 사람 정도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작품의 원어 제목인 'The Great Gatsby'에서 'The Great'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위대한’이라는 뜻보다는, 어떤 대단한 사람을 소개할 때나 유명한 사람이 나오는 포스터 같은 것에 쓰는 관용구 같은 표현이기에, 어쩌면 ‘대단한 개츠비’ 정도가 맞는 번역이자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목표를 돈에 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둔 인물이다. 고도성장으로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던, 그래서 사랑이나 도덕 같은 이상보다는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했던 1920년대 미국에서, 돈보다는 순수한 사랑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었기에 그를 ‘위대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게 뭐 그리 위대한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오래전부터 동양인은 돈보다 사랑을 택하는 것이 더 옳은 삶이라는 가르침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한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얻는 것과 백만장자가 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전자를 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사랑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개츠비는 분명 대단한 것을 넘어서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1925년에 출간되었지만, 출간 당시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오랫동안 잊혔다가, 1945년과 1952년에 재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어 현재는 고등학교와 대학 교재로까지 쓰일 정도로 세계적인 고전이 되었다.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게 되었고, 지금도 그런 시대이기에 이 작품의 위대함, 개츠비의 위대함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위대함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1920년대에 지금까지 말했던 그런 위대한 개츠비를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개츠비와 다른, 지금 우리와 비슷한, 돈 때문에 비틀려 버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서정성 넘치게 그렸기 때문이다. 외도를 즐기는 부자 남편, 돈 때문에 그런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며 부자 남자와 외도하는 또 다른 여자, 파티장에는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장례식에는 오지 않는 많은 상류층 사람들, 그 파편화된 인간관계를 서정적으로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20년대 뉴욕의 풍경이 소독하고 쓸쓸하게 묘사되고 있어, 읽는 내내 마치 재즈 음악이 흐르는 빛바랜 뉴욕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바로 이것이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위대한 작품의 반열에 오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이루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어느 고독한 남자의 한여름밤 쓸쓸한 사랑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