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쥐락펴락하는 한국문학의 독보적 페이지터너
소설가 장강명, 정한아 추천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서수진 신작 장편소설
2020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서수진의 신작 장편소설 『엄마가 아니어도』가 출간되었다. 호주에 거주중인 작가는 4년 전 퀴어 단편소설을 위한 취재 과정에서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진 한국인 게이 교민을 만났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세요”라는 한마디에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날아가 며칠간 머물며 들었던 그와 남편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 그후 이름을 다 거론하기 어려운 수많은 이의 이야기가 덧붙고 “무수한 고비를”(작가의 말) 넘어 완성된 소설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엄마가 아니어도’라는 제목 뒤에 따라붙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며 숨 쉴 틈 없는 몰입감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수작이다.
서수진은 5년 전 데뷔한 이래 긴 호흡의 중·장편소설 다섯 권을 일 년에 한 권꼴로 발표해왔다.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 『코리안 티처』, 국제 연애를 하는 두 연인을 통해 사랑의 불가능성을 탐구하는 『유진과 데이브』, 십대 여자아이들의 위태롭고 아름다운 성장담을 그려낸 『올리앤더』, 실종된 이웃의 행방을 좇는 과정에서 균열되는 일상을 다룬 추적 스릴러 『다정한 이웃』에 이르기까지 서수진만이 써낼 수 있는 강렬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시의적인 소재에 흡인력 있는 문장을 겸비한 믿음직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엄마가 아니어도』는 그간 서수진의 작품이 조명해온 문제를 퍼즐처럼 꿰맞춘 결정판이다. 가족이란 “자신의 몫이 아니라 생각”(63쪽)해온 주인공 ‘인우’가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꾸린 후 직장마저 그만두고 임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코리안 티처』 『유진과 데이브』의 인물들을, 자신의 아이를 품은 채 사라진 대리모를 찾아 헤매는 여정에서 폭력에 노출된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만나는 대목은 『올리앤더』 『다정한 이웃』의 주제를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작가는 오랫동안 천착해온 ‘경계에서의 삶’을 한층 폭넓게 펼쳐 보인다. 가족과 이웃,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소년과 어른, 한국과 외국까지…… 그간 탐색해온 경계선을 무(無)에서 유(有)가 되는 출발선으로 옮겨놓음으로써 흔히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생명의 탄생이 담보해온 욕망을 들여다본다.
내 아이를 품은 여자가 사라졌다
엄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 집요한 추적극
『엄마가 아니어도』는 내 아이를 품은 여자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인우는 8년간의 난임 치료 과정에서 과도한 호르몬제 투여로 혹이 생긴 자궁을 적출한다. 수술 후 난임 카페에 올린 글을 본 대리모 브로커가 보내온 쪽지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에 처한 인우의 마음을 뒤흔든다. 공덕으로 보호받는다는 뜻의 태국어를 업체명으로 삼은 대리모 에이전시 ‘분포크롱’의 브로커 김실장을 만난 인우는 남편 지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결혼 당시만 해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으나 인우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지석의 설득과 시어머니의 무언의 압박에 임신을 결심하고, 어느덧 지석보다도 더 아이 갖기에 집착하게 된 인우의 변화는 정상가족이란 환상에 담긴 허위 그리고 신화화되는 동시에 폄하되기 일쑤인 모성의 딜레마를 꼬집는다.
인우의 대리모가 된 차논과의 첫 만남은 태국 방콕의 난임 클리닉에서 이뤄진다. 인우는 자신과 띠와 생일이 같은 차논이 아이를 낳아줄 적임자라고 확신하며 그에게 방콕 시내의 고급 아파트 월세와 생활비, 가정부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차논은 추가 비용을 감사히 받겠다고 답하면서도 자신의 남편에게까지 금연할 것을 요구하고 직접 살림을 하거나 가정부를 해고해선 안 된다며 불합리한 주문을 하는 인우에게 “돈으로 나를 착취하려고 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응수한다. 이렇듯 정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보여온 차논의 행방을 좇는 과정에서 인우는 그가 대리모 일을 하기 위해 신변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차논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내면을 지닌 한 사람이라는 혼란에 휩싸인다.
사라진 약속 너머로 드러나는 거래의 민낯
방콕의 뜨거운 태양 아래 벗겨지는 어두운 진실
그즈음 태국의 대리모 산업이 세계적 논란의 중심에 선다. 호주인 부부가 태국인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쌍둥이 중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이는 두고 건강한 아이만 데려간, 이른바 ‘분미 사건’이 터지며 태국 정부는 상업적 대리모를 전면 불법화하겠다고 선언한다. 그와 동시에 브로커 김실장과 현지의 난임 클리닉, 대리모 모두 연락이 두절된다. 깊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인우는 비슷한 노력 끝에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난임 카페 지인 해성과 함께 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태국의 문 닫힌 클리닉 건물 앞에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대리모를 찾기 위해 호주에서 온 게이 부부 요한과 존을 만난다. 실종 신고를 하면 대리모가 태국 경찰에게 체포될 위험이 있는 상황.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품은 여자들을 직접 추적하기로 작정한다.
그들을 도울 통역사 말리까지 합류하면서, 방콕 시내를 누비는 다섯 사람의 뒤로 펼쳐지는 태국인들의 일상적인 풍경은 그들의 공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며 “타인의 육체를 대면하는 일이란 결국 그가 감내한 고통을 헤아리는 일”(소설가 정한아)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이윽고 태국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간 외면해온 진실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인우의 앞에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아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시시각각 닥쳐온다. 대리모 차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인우는 과연 아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대리모 실종 사건’은 의뢰인과 대리모의 관계에 전복을 꾀하는 계기가 된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인우, 직장생활과 난임 치료를 힘겹게 병행하며 딸 서아를 낳았으나 이혼소송 과정에서 간신히 면접교섭권을 얻은 해성, 서로를 닮은 아이를 가질 방법이 없어 대리모라는 선택지를 택한 게이 부부 요한과 존까지. 생명을 돈으로 사고파는 추악한 세계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네 사람은 아이를 되찾겠다는 공통의 마음으로 힘을 모은다. 책임과 소유의 경계에 서 있는 그들을 통해 서수진은 아이를 되찾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혈연과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진정한 돌봄의 세계로 나아간다.
한 사람의 몫을 초과하는 여분의 사랑으로
여정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소설은 총 7부로 나뉜 각 부의 제목에 ‘인우’와 다른 등장인물(해성, 요한, 말리)의 이름이 번갈아 붙는 구성을 취한다. 1부 ‘인우’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자신과 타인 사이의 왕래를 반복한 후 7부 ‘인우’로 끝나는 흐름은 엄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 험난한 발걸음이 결국 시작된 지점에서 끝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인우는 서류를 뒤집어 옆으로 치웠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았고,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잘못 생각했다고, 실수였다고 사과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인우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인우가 머뭇거리는 사이, 앞에 또다른 서류가 놓였다.(20쪽)
인우는 사라진 아이와 대리모를 찾아 나서는 지난한 여정에서 도의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대리모 계약서 조항 뒤에 숨겨진 거래의 현장을 목격한다. 한국으로의 귀국을 앞두고 통역사 말리는 인우에게 “태국어로 대리모는 공덕을 실어나르는 사람이라는 뜻”(271쪽)이라고 설명한다. 인우는 차논이 대리모를 지원하게 된 이유로 돈을 벌어 딸을 공부시키고 싶다는 것과 더불어, 아기를 갖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 공덕을 쌓고 싶다고 답했던 것을 떠올린다.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필연적으로 한 사람의 몫을 초과하는 사랑을 갖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를 때,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심장 소리를 듣는 인우의 광기어린 모습은 엄마라는 이름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모색하려는 희망으로 탈바꿈한다. 엄마가 아니어도 가능한 “진정한 돌봄과 책임, 사랑과 연대”(소설가 정한아)가 그곳에 있다.
*
국내에서는 대리모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2024년 보도된 ‘평택 대리모 사건’을 계기로 음지화된 대리모 산업의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지난 5월 11일에는 한 언론 매체가 〈난임 부부 노리는 검은 거래〉라는 방송을 통해 온라인 세계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국내 대리모/대리부 산업의 실체를 추적한 바 있다.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인도에서 태국으로, 다시 우크라이나에서 조지아로 옮겨가는 대리모 시장은 그 궤적만으로도 우리가 필요에 따라 간과해온 진실을 드러낸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한 인터뷰 과정에서 작가가 들었던 “어떻게 그 사건을 모를 수 있느냐”(작가의 말)는 되물음은 이 책의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향해갈 것이다.
◆
서수진의 글이 근처에 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그의 문장은 독자의 뺨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히 감싸고, 어떤 현실을 보게 한다. 거기에는 늘 국제적이고도 개인적인 불편함이 있고, 그것들은 징글징글하게 맞물린 채 더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은 가장 지독한 박자로 내 심장박동의 속도를 끌어올린다. 가끔 나는 ‘제발 이쯤에서 멈춰주세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하고 빌고 싶은 심정이 된다. 하지만 그 문장의 힘이 너무 단단해서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엄마가 아니어도』는 정말 징글징글하고 지독하고 강력한 작품이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우리가 질렀어야 했던 비명을 목구멍에서 끌어낸다. _장강명(소설가)
여기 어머니 되기를 갈망하는 한 여성이 있다. 사라진 아이와 대리모를 찾아 나선 그녀의 길고 지난한 여정에서 독자들은 생명과 돈을 교환하는 계약의 현장, 시장의 상품이 되어버린 여성의 몸을 마주하게 된다. 타인의 육체를 대면하는 일이란 결국 그가 감내한 고통을 헤아리는 일이다.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본 자들만이 진정한 돌봄과 책임, 사랑과 연대로 나아갈 수 있다. 작가는 그 길 끝에 우리의 잃어버린 아이들이 있음을, 우리 모두의 어머니 되기가 마침내 완수될 것임을 약속한다. _정한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