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분노다!"
현대 문명을 향해 던지는 깊이 있고 아름다운 풍자극!
우스꽝스러운 현실과 부조리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
사형선고를 받지 않은 작가라면 결코 쓸 수 없는 소설!
1988년 한 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그의 열두 명의 아내를 창녀에 비유해 출간 즉시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던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바로 그것. 이 작품으로 루슈디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지만, 무함마드를 모독했다 하여 이슬람계의 격분을 촉발하게 된다. 루슈디 지지 사설을 게재했던 미국의 한 신문사가 폭탄 테러를 당하는가 하면, 이 책의 일본어 번역가가 살해당했고, 이 책을 발간한 노르웨이 출판사 사장은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출간한 이듬해 루슈디는 이란의 이슬람 최고 지도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영국은 이란과 단교하고, 루슈디는 암살 위협을 피해 오랜 세월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작품은 『악마의 시』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세계를 들끓게 하는 살만 루슈디의 또다른 역작이다. 이 소설은 루슈디가 영국에서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집필한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에 전환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루슈디는 2000년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며, 2001년 이 작품을 발표했다). 『분노』가 출간되었을 때, 미국 언론들이 “루슈디가 미국에 왔다”며 호들갑을 떤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2000년 뉴욕을 무대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분노와 폭력의 21세기’를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는 예견자 “살만 루슈디”를 만난다.
“생은 분노다!”
문제적 작가 살만 루슈디가 현대 문명을 향해 거침없이 날리는 통렬한 일침!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상사 교수인 말릭 솔랑카는 어느 날 학문적인 삶에 염증을 느끼고 이 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포기한다. 학교를 그만둔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온다. BBC에서 그에게 대중적인 심야 철학사 시리즈 기획을 제안하면서, 방송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지식인 인형들이 나와 대담을 나누며 논쟁을 벌이는 <리틀 브레인의 모험>은 당대의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 잡고,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은 여자 인형 ‘리틀 브레인’은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참여하는가 하면, 패션쇼 무대에도 서고, 영화에도 출연하고, 심지어 자서전을 발표해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리틀 브레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지적이고 당차던 이 인형은 저속하고 속물적인 대중의 아이콘으로 변질되고, 자신의 피조물 중 유일하게 사랑했던 이 인형이 제멋대로 생명을 얻어 꼭두각시처럼 변해가자 솔랑카는 참을 수 없는 노여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밤, 솔랑카는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아내와 세 살 된 아들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정말로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 그는 이튿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온다. 부와 힘이 절정에 달해 있는 곳, 모든 과거가 사라지고 현재만 있는 이곳, 모두가 현대인이라는 익명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 솔랑카는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조차 솔랑카의 분노는 잠재워지지 않는다. 감정과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술에 취해 기억을 잃고 잠드는 일도 잦아진다. 한편 명망 있는 가문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잇따라 콘크리트로 살인을 당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도시의 열기는 더해져간다. 특별한 살인 동기와 뚜렷한 용의자가 등장하지 않은 채,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죽은 세 여자의 연인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증폭되어 간다. 죽은 여자는 모두 세 명, 그리고 솔랑카가 술을 먹고 의식을 잃었던 것도 모두 세 번. 게다가 여자들이 죽기 전에 파나마모자를 쓴 낯선 사람이 따라다닌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솔랑카도 파나마모자를 즐겨 쓴다), 솔랑카는 어쩌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솔랑카는 젊고 매력적인 여인 밀라를 만나게 되고, <리틀 브레인의 모험>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밀라가 점점 리틀 브레인의 현신처럼 변해가고 그들의 관계도 변태적인 형태로 변질되자 솔랑카는 또다시 알 수 없는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 그러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아름다운 여인 닐라를 만난다. 자신과 같은 인도계 출신인 닐라에게서 솔랑카는 그동안 찾지 못했던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다. 시시때때로 불쑥불쑥 찾아와 그를 불안에 떨게 하던 분노도 이 기적 같은 사랑 앞에 드디어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인가? 신화와 문학작품, 영화와 TV 드라마와 대중가요까지, 여러 문화 텍스트를 현란하게 인용하며 입심 좋게 내달리던 이 소설은 예기치 못한 반전을 거듭하며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우스꽝스러운 현실과 부조리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깊이 있고 아름다운 풍자극!
영국에서의 오랜 도피를 끝내고 살만 루슈디가 새롭게 발을 디딘 이 땅. 스스로 세계의 중심임을 자부하는 이 오만한 땅에서, 루슈디는 21세기 미국의 표정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인도 출생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것,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도피한 것,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연인의 흉터까지…… 자신의 실제 이력과 매우 흡사한 주인공 솔랑카의 입을 빌려 루슈디는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국민성 등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곳에서 편안히 정착할 수 없는 방랑자이자 이방인인 루슈디가 자신의 새로운 고향을 바라보는 애증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는 팽창할 대로 팽창한 물질문명의 명암을 예리하게 통찰하며,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롱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분노’의 정서는 실상 삶의 근본적인 비애와 우울에 맞닿아 있다. 자신의 삶에서조차 소외되는 이 상황을, 장난과 폭력, 사랑과 강간조차 구분하지 못해 쩔쩔매는 이 사회를 우리가 분노 없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느냐고 그는 되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