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거룩하여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영혼의 순결한 징표, 구원의 아련한 약속
어제와 내일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시인
하나의 추억으로 서 있을 삶의 분위기를 담담한 어조로 직조해내는 시인 홍영철이 7년 만에 네번째 시집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문학과지성사, 2012)를 선보인다. 시인은 35년이라는 두툼한 시력(詩歷)을 쌓아오는 동안 일상적 삶의 풍경을 통해 생의 공허와 허무를 읊으면서도 결국엔 폭력과 상처를 모두 껴안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시인은 허무의 정조가 가득한 화법으로 오늘을 배회하는 듯하지만 도처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 어제의 추억과 내일의 희망을 탁본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아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피상과 추상의 옅고 얕은 흔적에서 ‘수선화’라는 구체를 떠내기까지 시인이 감내했을 고뇌가 엿보인다.
‘내일’을 향한 열망이 꺾인 자리
이 시집을 여는 첫번째 시 「가슴을 열어보니」는 화자의 이력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 사막을 지나’온 듯한 ‘청춘’이 있다. 그 청춘의 가슴에는 ‘샘도 풀도 나무도 오아시스’도 사라지고 ‘마른 모래바람’만 가득하다. ‘먼 사막’은 청춘이(내가) 지나온 ‘어제’를 말한다. 나의 ‘어제’에는 혼내고 겁주던 아버지(「그러면 아프잖아요」)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시던 어머니(「슬픈 컵라면」)가 있다. 그런가하면 ‘꽃잎 밟으며 꽃향내 따라’가버린 ‘그 사람’은 내게 지독한 풀냄새만 남겨놓았다(「풀냄새」). 아픔을 하소연하고 슬퍼서 울고 상실에 절망하던 나는 어느덧 오늘에 와 있다. 나를 오늘까지 이끈 것은 어제의 내일, 즉 오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것은 구원의 열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오늘은 기대했던 ‘내일’이 아니라 어제의 반복일 뿐, 다시 ‘어제’가 될 오늘을 살고 있는 내게 ‘내일’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오늘이라 아플 수밖에 없다는 역설
내일로 가 닿기 위해 걸어온 날들의 축적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내일’은 아직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내일」). 그러니 그간의 견딤과 쓰라림은 무의미해졌으며 시간 속 여행은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문득 알게 된 하나의 사실이 이 실패에 대한 ‘역설’로 나를 이끈다. 나는 지금 내일을 잃었다. 내일을 만나지 못했기에 오늘에 있다. 그래서 아프다. 아픈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나다. 아프다는 사실이 어느 무엇보다도 명징하게 내가 ‘오늘’에 있음을 증명한다는 역설. 결국 아프니까 오늘이고 오늘이라 아플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오히려 나를 “괜찮다”라는 위로의 순간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 위로를 발판으로 나는 ‘내일’이 아닌 다른 방식의 구원을 갈망하게 된다.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는 내 마음
오늘의 아픈 나는 수선화가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때를 회상한다(「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 수선화가 있었다. 아주 따뜻한 꽃밭이 하나 있었다. 꽃밭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슬픔이 되었다가 기쁨이 되었다가 상처를 감싸는 가슴도 되었다. 여기서 나는 수선화가 바로 자신의 마음임을 고백한다. 상처를 감싸는 가슴, 그 가슴으로 아버지를 연민하고 어머니를 이해했다. 혼내고 겁주던 아버지가 아니라 “햇빛만으로도 힘을 키우시던 아버지”였으며 컵라면만 드셔서 가슴 아프게 했던 어머니가 아니라 “바람만으로도 배를 채우시던 어머니”였다. 그들은 “노래 같은 사람”들로 재인식된다. 내가 오늘에 이르는 동안 잃은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마음임을 깨닫는 장면이다. 나는 이제 수선화가 아주 없어졌다고 말하지 못한다. 흔적이 있으므로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듯, “지금은 지워진”이라고 했다가 “아니 희미해진”으로 수정하고 “지금은 없는”이라고 했다가 “아니, 없을 수 없는”이라고 고쳐 말한다. 소극적, 수동적으로 ‘내일’만 기다리던 ‘나’는 현재의 아픔과 슬픔을 껴안아 희망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므로 이제 수선화로 구체화된 내 ‘마음’은 너무나 거룩하여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영혼의 순결한 징표이자 구원의 아련한 약속이 된다.
■ 시인의 말
허술한 시간이 덧없이 지났다.
허위허위 먼 길 걸은 듯한데 제자리다.
마음이 아프다.
돌아온 탕아 같아 죄스럽다.
■ 시인의 산문
그대를 사랑했습니다. 살아 있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에 살아 있음으로 그대를 사랑했습니다. 이유와 목적이 있는 사랑은 불순하다 여겼습니다. 나의 사랑은 삶의 표현이자 흔적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대만을 사랑하기에 내 삶은 너무 허술했습니다.
삶의 빈틈들을 메우고 싶었습니다. 악을 쓰며 먼 길을 걸었습니다. 부르고 두드리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만나지도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나의 발걸음은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닌 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주 그대 생각을 했습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 잘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희망이 없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대를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타이릅니다. 언젠가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받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