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진남포를 왕래하는 기선 영덕환은 옹진 기린도를 외로이 뒤에 남겨놓고 검은 연기를 길게 뽑으며 서편으로 서편으로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동쪽 하늘에 엉킨 구름 속으로 손길같이 내뽑는 붉은 햇발이 음습한 안개를 일시를 거두어 먼 산 밑에 흰 막을 드리우고 그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마치 질곡에서 해방된 노예의 마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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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잠들었던 승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이젠 시간이 되지 않았나? 하고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그리 번화하던 이 거리도 어느덧 고요하고, 전등불만이 가로수 사이로 두어 줄의 긴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는 눈을 두어 번 부비고 나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한참이나 나오던 그는 싸늘한 볼을 어루만지며 자기 머리에 모자가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래서 곧 돌아와서 모자를 눌러 쓰고 총총히 걸었다.
그의 안해의 병은 장질부사라는 것이 판명이 되고 어느 날 아침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요란히 나더니 기어이 피병원( 病院)으로 담아가고 말았다. 간호할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지마는 원래 가난한 탓으로 하루 얼마라는 돈이 없어서 깨끗하고 편한 유료실(有料室)에다 입원을 못 시키고는 악머구리 끓듯 하는 무료실(無料室)에다 병자를 눕혀놓고도 집안에서는 누구 하나 와서 들여다볼 사람이 없었으니 기가 막히게 딱하였다.
맨처음 만나든날 밤 당신은 여기오기전에 어데서 무엇을 했었느냐고 물으니까 그 여자 대답이 나는 참말이지 바로 어제까지도 어느 병원에서 간호부노릇을 하고 있었노라고 하였다. 물론 좀 수상한 점이 있어 그럼 간호부를 하기전에는 어딜 다녔느냐고 하니까 네 비리야드에 있었읍죠 참 말성이시군 하면서 한눈을 찌끗하고는 손으로 다마치는 숭내를 내었다.
밤 11시가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따금씩 벽에다가 연필로 그어놓은 줄을 세어보니까 모두 아홉, 그러니까 남편이 나의 앞에서 서로 신용할 수 있도록 진실한 낯빛으로 다시는 술 안 먹겠다 맹서한 것이 아홉 번이나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아래 내려 그어놓은 줄이 다섯, 이것은 바로 며칠 전에 남편이 맨 나중 맹서를 한 후에도 벌써 다섯 번이나 술을 먹고 들어왔다는 표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남자가 아니냐고 하니까 어머님 말씀이 그렇지 않다고 하시길래 그럼 여자냐고 했더니 이번에도 아니라고 하셨다. 사람이구보면 두가지 중에서 하나이지 사내도 아니고 계집애도 아니라면 대체 뭐냐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시므로 어째서 하나님의 딸이 아니요 하필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반문을 했더니 그제서야 말문이 막히신 모양 아무 대답도 안하셨다.
8월 15일이 일주일 지나 23일경에 처음으로 탄광에 쌀 배급이 되었다. 배급소에서 요사무실(寮事務室)로 통서를 하면 여기는 돈을 들여 품삯을 주면서 사람을 쓰는 데가 아니니까 그냥 요(寮)에 기숙하는 광부들을 동원시켜 쌀을 운반해 온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께서 약주를 자수셨는 까닭에 나도 술을 먹는 거요. 이렇게 말을해야만 내 마음이 편안하고 직성이 풀리오. 내가 술을 먹고 곤드레만드레가 되는것도 옛날 아버님께서 약주가 취하시어 비틀거리시던것과 같지만 제발 술 마시지말라고 간하는 당신의 모양도 옛날 아버님께 그렇게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과 흡사하오.
갑용(甲龍)이는 문학소년(文學少年)이었습니다. 생활이 퍽 가난하면서도 그 위협은 조곰도 인식하지못하고 매일 책읽고 글짓는것만 생각하였습니다. 마음이 석 어리였습니다. 대문밖을 나스며 오늘도 속으로 빕니다. 거짓영예(榮譽)와 의(義)아닌 행복보다는 몇 번이라도 참다운 삶의 비극(悲劇)이있으소라고.
왕바위를 지났으니 요 아래가 바로 더덕바위. 새장터도 인제 일 마장밖에 안 남았다. 땀서린 이마에 이른봄 새벽 바람결이 선뜩선뜩 마주쳤다.
나뭇잎 한잎 두잎, 품에 지는 것 폐로울 것이 없다. 비늘구름 가난한 하늘에 북두칠성이 앵돌아졌어도, 따따 또, 나팔 소리 아직 그치 잖았다. 깔깔 껄걸, 웃음소리 숲 사이로 굴러내리고, 술내 나는 노랫가락 목통 굵게 떨리었다. 비린내 나는 연한 목청, 쌍으로 쌍으로 받아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