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가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따금씩 벽에다가 연필로 그어놓은 줄을 세어보니까 모두 아홉, 그러니까 남편이 나의 앞에서 서로 신용할 수 있도록 진실한 낯빛으로 다시는 술 안 먹겠다 맹서한 것이 아홉 번이나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아래 내려 그어놓은 줄이 다섯, 이것은 바로 며칠 전에 남편이 맨 나중 맹서를 한 후에도 벌써 다섯 번이나 술을 먹고 들어왔다는 표적입니다.
소장 500원
8월 15일이 일주일 지나 23일경에 처음으로 탄광에 쌀 배급이 되었다. 배급소에서 요사무실(寮事務室)로 통서를 하면 여기는 돈을 들여 품삯을 주면서 사람을 쓰는 데가 아니니까 그냥 요(寮)에 기숙하는 광부들을 동원시켜 쌀을 운반해 온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께서 약주를 자수셨는 까닭에 나도 술을 먹는 거요. 이렇게 말을해야만 내 마음이 편안하고 직성이 풀리오. 내가 술을 먹고 곤드레만드레가 되는것도 옛날 아버님께서 약주가 취하시어 비틀거리시던것과 같지만 제발 술 마시지말라고 간하는 당신의 모양도 옛날 아버님께 그렇게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과 흡사하오.
갑용(甲龍)이는 문학소년(文學少年)이었습니다. 생활이 퍽 가난하면서도 그 위협은 조곰도 인식하지못하고 매일 책읽고 글짓는것만 생각하였습니다. 마음이 석 어리였습니다. 대문밖을 나스며 오늘도 속으로 빕니다. 거짓영예(榮譽)와 의(義)아닌 행복보다는 몇 번이라도 참다운 삶의 비극(悲劇)이있으소라고.
왕바위를 지났으니 요 아래가 바로 더덕바위. 새장터도 인제 일 마장밖에 안 남았다. 땀서린 이마에 이른봄 새벽 바람결이 선뜩선뜩 마주쳤다.
나뭇잎 한잎 두잎, 품에 지는 것 폐로울 것이 없다. 비늘구름 가난한 하늘에 북두칠성이 앵돌아졌어도, 따따 또, 나팔 소리 아직 그치 잖았다. 깔깔 껄걸, 웃음소리 숲 사이로 굴러내리고, 술내 나는 노랫가락 목통 굵게 떨리었다. 비린내 나는 연한 목청, 쌍으로 쌍으로 받아 넘어간다.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산매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