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선은 1981년 동화 <까치 소리>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들에는 독특하게도 첨단 기계물인 로봇 새가 자주 등장하는데, 새를 통해 물질문명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상황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 책의 수록작인 <아파트에 사는 수탉>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화합을 모색한다.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김학선은 현대인과 물질문명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여러 삶의 방식을 그렸다. 그의 단편동화는 새 이야기가 많다. 각 작품이 다루는 새의 개체는 달라도 주요 공간적 배경이 도시와 숲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이러한 배경적 특징은, 새가 나오지 않는 나머지 작품에서도 지속된다. 작품에 따라서는 아파트가 도시를 대신한다. 아파트는 도시의 속성 중 각박함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도시가 상징하는 것에서 크게 비켜서지 않는다. 때문에 김학선의 단편동화는 도시와 숲 그리고 새의 문학으로 지칭해 볼 수 있다.
작품들에는 독특하게도 첨단 기계물인 로봇 새가 자주 등장한다. <황금새>, <말하는 새>, <하늘새>가 이에 해당된다. 로봇 새들은 한결같이 최첨단 성능을 가진 비밀 개발품이다. 자연의 새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그러나 인간이 조정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니, 자유 면에서는 자연 새를 따라가지 못한다. 현대 인간의 처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유 잃은 새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김학선은 까치와 비둘기와 같은 자연 새도 불러들인다. 우리 동화에서 까치는 주로 도시와 대비되는 자연 공간에서 사는 새들로 나타난다. 김학선은 <까치 소리>에서 도시의 까치는 사육장 문을 열어 주어도 날아가지 않는 새, 도시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새, 가까스로 숲에 이르러 제 본연의 모습을 파악했더라도 도시로 돌아오고 마는 부자유한 존재들이다. <까치와 아파트>에서는 숲만 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자 이 두 공간 사이를 불안하게 옮겨 다니는 까치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아파트와 까치 둥지가 가진 상동성을 통해, 일단 도시가 까치의 삶터를 쉽게 훼손하고 철거에 나서는 각박한 곳임을 지적했다. <대머리 비둘기>의 비둘기는 독한 콘크리트 부식물이 떨어지는 도시의 고가도로 밑에서 사는 탓에 대머리가 되었다. 이 비둘기를 통해 드러난 도시는 위험한 생활공간이다.
한편, 이 선집의 작품들은 도시와 숲을 주요 배경으로 취한다. 작가는 이 두 배경을 한꺼번에 끌어들인 경우 대립적 공간으로 상정한다. <까치 소리>, <까치와 아파트>, <말하는 새>, <황금새>, <하늘새>는 이를 보여 준다. 도시와 달리 숲은 평화롭고 자유롭고 아늑한 곳이다. 물질문명이 침투되지 않은 곳이며 동시에 물질문명의 병폐를 드러내는 기능도 담당한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의 인간 삶의 양식에 대해서 고민을 한 김학선은, 도시에 대한 대립 공간으로 숲을 끌어들였다.
김학선의 동화 문학에서 서사의 주인공들은 선택적 상황에 봉착한다. 그런데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
도시 즉 물질문명에 남는다. <까치 소리>는 이에 해당되는 대표작이다. 까치들은 자기의 상황을 깨쳤음에도 시청 옥상으로 회귀한다. 이는 현대인들이 물질문명이라는 안락함의 굴레를 거부하지 못함을 뜻한다. <황금새>의 황금새는 황금 도시가 만든 최첨단 기계 새인데 조정실 통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숲의 나라에 머문다. 그러던 중 황금새는 폭파된다. 도시에 대한 거부를 존재 소멸로 이은 것이다.
이처럼 현대 도시 생활자들은 물질문명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달리 도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모습도 보인다. <말하는 새>의 새는 로봇인데 역시 기계 고장으로 어느 도시에 불시착한다. 기억을 잃어 연구소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 새는 친구를 사귀려 든다. 어른들은 친구인 척하며 인간의 말을 하는 이 새를 돈벌이로 삼는다. 어린이만은 이 새를 행복하게 지내도록 숲으로 보낸다. 이로써 말하는 새는 로봇 새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사는 숲의 새가 된다. <하늘새>의 새 역시 같은 이유로 어느 도시에 불시착한다. 이 새는 스스로 숲의 새들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을 택한다.
도시의 대치물인 아파트와 숲의 화해를 볼 수도 있다. <까치와 아파트>와 <아파트에 사는 수탉>에서 나타난 아파트 거주자들은 심성이 각박해 까치나 수탉과 같은 자연물을 억압한다. 이렇게 아파트와 자연물의 대립에서 출발하지만, 서사는 둘의 화해를 향해 진행된다.
김학선은 결국 물질문명 앞에 선 인간에 대한 탐색을 진행하면서 화합을 모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