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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영 동화선집 상세페이지

남미영 동화선집작품 소개

<남미영 동화선집> 남미영은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아기 송아지>가 당선되면서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의 동화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동심을 가진 어린이에 의해 문제 해결과 화해를 보이는 열쇠의 문학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현실 묘사와 함께 동물에 대한 사랑을 다룬 동화가 있다. 이러한 특성을 보여 주는 동화 <공주님과 첫사랑>과 <석이와 짠>을 비롯한 7편의 동화가 이 선집에 수록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우리 현대사의 암울했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한 남미영이 등단한 1964년도는 ‘본격 아동문학의 전개’ 시기다. 1950년대 후반부터 각 신문사가 신춘문예 제도에 동화와 동시 분야를 설치함으로써 시작된 문단 풍토의 개선은 1960년대 신춘문예 제도의 부활과 함께 각종 아동문학 잡지의 신인 추천 제도 설치로 본격화된다. 남미영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어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장한 신인이었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 교수로 초·중·고 국어과 교육 과정과 교과서 개발 책임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한국독서교육대학 교수 및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을 맡아 우리나라 독서 교육의 최고 권위자다. 그런 남미영의 동화 쓰기는 어린이에게 보내는 찬란한 사랑의 편지며 비상에 대한 희구다. ‘환상적 세계의 해결사’, ‘꿈을 가지고 성장하는 소년’을 통해 허위의 세계에서 진실의 세계로 향하는 화해 촉구의 동화를 써 한국 동화 문학의 질적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에는 남미영 문학의 대표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를 교류해 환상 동화의 본령에 도달하며, 대조법·열거법·점층법 등의 유려한 문체와 함께 단도직입적 서두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열린 결말은 독자 스스로 작품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한국 동화 문학의 수준을 올리는 데 기여한다. 무엇보다도 철저히 동심의 입장에 충실해서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순수한 세계를 어린이다운 눈으로 꾸밈없이 담아내었다.

남미영 동화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본다.
첫째 유형은 동심을 가진 어린이에 의해서 문제의 해결과 화해를 보여 주는 열쇠의 문학이다. <공주님과 첫사랑>, <가시나무에 떨어진 별>, <거인과 꽃시계>, <제비꽃> 등으로, 어디에도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극렬한 대립과 고통의 현장에서 동심을 가진 주인공에 의해 한 줄기 실마리를 찾고 반목과 질시를 종식시켜 드디어 기쁨과 소망을 쟁취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분단 민족의 아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소년병과 들국화>는 대립과 고통의 극렬한 전쟁터에서 분단을 종식시킬 가능성을 모색하는 점이 돋보인다. 남미영은 강소천의 문학을 ‘열쇠의 문학’이라 명명했는데 <공주님과 첫사랑> 등 남미영의 작품 세계 역시 시대의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거울의 문학’이기보다는 기쁨과 소망을 쟁취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열쇠의 문학’으로 유추된다. 결코 평화롭게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시위대와의 분쟁에 공주님이 대포알 대신 장미꽃을 발포하게 함으로써 미움과 분노 대신 웃음과 함성이 터져 나오게 되어 전쟁이 아닌 사랑이 성취된다. 그리하여 ‘공주님의 첫사랑’과 같이 로맨틱한 이름을 가진 나라의 건설이 이루어진다. 또한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해 두 편으로 갈라 싸우는 어느 마을의 비극을 우화적 기법으로 전개한 <가시나무에 떨어진 별> 역시 아동에 의한 해결과 화해의 정신을 구현한다. <거인과 꽃시계> 역시 세상에서 아름답고 정확한 꽃시계가 100주년 기념일에 갑자기 고장이 나서 도시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데 결국은 한 조그만 어린 아이에 의해서 고쳐진다는 내용이다. 독자를 동화 속 순이가 되어 작품에 감정이입을 하게 함으로써 실감 나는 판타지의 세계에 몰입하게 한다. 조그만 순이는 순수한 꿈을 지닌 소녀로 남을 생각할 줄 알고 호기심 많으며 사색적·탐구적·개척적이다. 순이의 그러한 호기심에 기인해 문제가 해결된다. <제비꽃>에서 또한 제비꽃의 입을 빌려 “마음속으로 보고 싶은 이를 오래오래 생각하면, 마음속에 보고 싶은 이가 살게 된대”라고 말하는데, 이는 작가 스스로가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자기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현실 묘사와 함께 동물에 대한 사랑을 다룬 동화로, 정들었던 동물과 헤어지는 안타까운 정서와 함께 신동심주의적 성숙된 아동상이 돋보인다. 어린이의 순수한 세계를 꾸밈없이 담아내어 신동심주의적 입장에서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해송동화상을 받음으로써 남미영이 작품 활동을 하는 데 계기가 된 <아기 송아지>는 소년과 아기 송아지의 사랑을 통해서 동물 애호 정신을 일깨워 준다. 여기서 마음이 나약했던 소년의 성장하는 모습은 <석이와 짠>에서도 발견된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석이가 다시 강아지를 얻을 기회를 얻었지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주인아주머니의 제안을 거절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석이는 이미 자신의 욕심보다는 어미 개와 강아지와의 사랑을 더욱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소년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저자 프로필

남미영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3년 3월 8일
  • 학력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청소년문학 박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우너 어린이 문학 석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 학사
  • 경력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
    클애들교육 교육개발 이사
    한국독서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육개발원 국어교육연구실 실장
  • 수상 제34회 소천 아동문학상
    제1회 해송 문학상
  • 링크 공식 사이트

2019.01.2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남미영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우리 가정에도 맹폭격을 가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동생까지 열두 명이나 되던 대가족이 하루아침에 다섯 명만 남겨진 것이다. 그것도 경제력이 전혀 없는 어머니와 중학생인 고모들, 초등학생인 오빠와 나만 남았다.
피란길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는 거지였다. 어머니와 고모들이 전후 복구 작업을 하는 보국대 식당으로 일하러 가고 나면, 오빠와 나는 길에 나가 미군 지프차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큰길에 미군 지프차가 나타나면 무조건 따라가며 “헬로 기브 미, 초코렛또 기브 미!”를 외쳤다.
미군들은 훈련시키는 강아지에게 과자를 던져 주듯, 달리는 지프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과자를 던졌다. 그것을 주운 날은 행운의 날이었다. 그것마저 없는 날은 쪼르륵 소리 나는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에 널브러져 어머니를 기다렸다. 밤중에 돌아오신 어머니와 고모들이 품 안에 숨겨 가져온 주먹밥은 우리 가족의 목숨을 연명하는 수입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애는 왜 저리 못생겼니? 얼굴은 마상에, 턱은 도라지 캐는 꼬챙이같이 뾰족한 게, 앞 마빡 뒤 마빡은 짱구지, 코는 양놈들처럼 삐죽하고, 귀는 칼귀에, 인중마저 짧네…. 에구, 쓸 곳이 하나도 없구나.”
“못 먹여서 그래요. 살이 오르면 좀 나아질 거예요.”
“나아지긴 뭐가 나아져. 저렇게 복 없이 생겼으니 지 애비가 빨갱이들한테 죽었지.”
외할머니는 부잣집에서 고이 자란 자기 딸이 남편을 잃고 입에 풀칠도 못 하며 사는 것에 심사가 뒤틀려서 그런지, 툭하면 우리 식구들에게 험담을 날렸다. 그중에서도 여덟 살짜리 외손녀가 제일 만만했던지, 선생 사위가 전쟁 통에 죽게 된 것이 다 ‘못생긴 외손녀 때문’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펴곤 했다.
외할머니의 말은 어린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는 차츰 말 없는 아이가 되어 갔다. 학교에 가서는 수업 시간에 손을 들지 않았고, 선생님이 무얼 시켜도 고개만 숙였다. 내가 손을 들거나 말을 하면 무언가 세상이 잘못될 것만 같았다. 어쩌면 6·25 전쟁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공부 시간에 딴청을 부린다고 꾸중하셨다. 숙제도 안 해 가는 날이 많아졌다. 통신표에는 ‘우수우수’가 있던 자리를 ‘미양미양’이 차지했다. 어머니는 나의 성적표를 보면서 혼잣말을 하셨다.
“아무래도 네 외할머니 말이 맞는 거 같다.”

4학년이 되어 담임이 되신 한현석 선생님은 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숙제를 내 주었다. 책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 오라는 것이었다. 충청북도 교육청에서 무슨 대회를 하는데, 잘된 글을 뽑아 그 대회에 보내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교무실에 있는 책을 스무 권쯤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생님은 내 앞을 지나쳐 가다가 되돌아와서 나한테도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나에게 돌아온 책은 겉장이 없고 본문도 몇 장인가 떨어져 나간 헌책이었다. 그 책을 품에 안고 집으로 오다가 너무나 궁금해 방천 둑에 앉아서 펴 보았다.
책은 18쪽부터 시작되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나는 그 속에서 못생겼다고 구박을 받고 있는 오리 새끼 한 마리를 만났다. 털이 자기들처럼 반지르르하지 않다고 형제 오리들이 머리를 쪼아 피가 흘렀다. 자기들처럼 동동 헤엄칠 줄 모른다고 친구 오리들이 놀아 주지 않아 울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못생긴 오리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그, 어쩌다 저리 못생긴 것이 태어나 가지고….”

숨이 막혔다. 꼭 나 같은 오리가 책 속에 있었던 것이다. 숨을 죽이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운 오리가 구박을 받으면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미운 오리가 머리를 쪼이면 내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아서 울었다. 외롭고 슬픈 미운 오리가 연못가를 떠날 때는 빨리 안전한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낯선 마을 농가에서 만난 닭들이 “못생겼지만 우리 닭들하고 결혼만 안 한다면 용서해 줄 수 있어”라고 말하며 미운 오리를 비웃을 때는 세상의 모든 닭이 미워졌다.
그러다가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되어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에서 아름다운 흰 날개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내 어깻죽지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힘이 솟구쳤다. 그리고 백조가 된 미운 오리가 아름다운 날개를 좍 펼치고 창공으로 날아오를 때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얘, 얘, 너도 백조가 될 수 있어!”
‘누구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홍빛에서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던 충주의 저녁노을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어두워서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방천 둑에 앉아서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맞다. 그건 내 이야기였다. 나는 그 감동을 독서 감상문 속에 고스란히 넣어서 선생님에게 드렸다. 선생님은 내 독서 감상문을 들고 이 교실 저 교실로 다니며 읽어 주셨다. 그러자 다른 반 선생님들이 나를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네가 글 잘 쓰는 그 아이구나” 하면서 칭찬해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그 감상문을 대회에 보내어 연필 한 다스와 공책 열 권까지 받아다 주셨다. 그 일은 나에게 책이 주는 위로와 책이 주는 희망의 달콤함을 알게 해 주었다.

미운 오리 새끼 사건.
그것은 어린 나에게 삶의 칙칙함과 슬픔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책 속에는 나를 위로하는 그 무엇이 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공책 귀퉁이마다 이야기들을 끼적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입학의 마수≫라는 추리소설인데, 나처럼 가난해서 중학교를 갈 수 없는 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에 가는 이야기였다. 당시에 읽던 어떤 책의 구성을 본 딴 것이었지만, 나는 그러면서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5학년이 되었을 때는 주위에 읽을 책이 더 이상 없었다. 학교에 있는 책들을 몇 번씩 다시 읽곤 하던 나는 어느 날 충주에 하나밖에 없는 책방인 ‘보문당’으로 진출했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들고 보문당으로 달려간다. 드르륵 소리가 나는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책방 주인 할아버지가 동그란 안경알 속에서 말없이 쳐다본다. 나는 책 사러 온 아이처럼 책 구경을 하다가 아직 안 읽은 책을 발견하면 선 채로 읽는다. 그러면 주인 할아버지는 ‘흠흠’ 기침을 하면서 내게 다가오고, 나는 준비해 간 꽃잎이나 나뭇잎을 끼워 놓고 슬며시 그곳을 빠져나온다. 힘없이 집에 와서는 다음 장면이 너무도 궁금해 안달이 났지만, 할 수 없이 다음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 불안한 책 읽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충주 군청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담임선생님이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충주 군청 한 귀퉁이에는 닭장처럼 철사 그물을 쳐 놓은 책장이 몇 개 있는 방이 있었다. 거기에 들어서면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래된 담뱃진 냄새와 장마철 변소 냄새가 섞인 것 같은 그 냄새는 차멀미할 때처럼 속을 메슥거리게 했다. 그러나 나는 매일 그곳으로 책을 읽으러 갔다.
내가 그 방으로 들어가면, 냄새 속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던 직원 언니는 나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어딜 잠깐 다녀오기도 했다. 밖에서 육각형 철사 그물 사이로 책등을 손가락으로 밀면 안에서 그 책을 꺼내어 카드에 이름을 기입하고 빌려 주는 서고였는데, 그곳 직원 언니는 내가 정직한 아이라며 자기 자리로 들어와 맘대로 책을 꺼내 봐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학교만 끝나면 군청으로 달려가 직원 언니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장발장≫, ≪엉클 톰스 캐빈≫, ≪몬테크리스토 백작≫, ≪백가면≫, ≪철가면≫, ≪흑가면≫, ≪작은 아씨들≫, ≪쌍무지개 뜨는 언덕≫, ≪모래알 고금≫, ≪진달래와 철쭉≫, ≪꼬마 옥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대위의 딸≫, ≪검정고양이≫, ≪잔 다르크≫, ≪스파르타쿠스≫, ≪알렉산더 대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5시≫, ≪개선문≫…. 그러면서 6학년이 되었다.

6학년까지 담임이었던 한현석 선생님은 어느 날 장래에 갖고 싶은 직업을 써 오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을 써 보다가 문득 생소한 직업을 하나 생각해 냈다. ‘재미있는 책만 실컷 읽어도 월급을 주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여쭈어 보았다.
“엄마, 재미있는 책만 실컷 읽고도 월급을 주는 직업이 뭐예요?”
“세상에 그런 직업은 없어. 넌 왜 그렇게 엉뚱하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에구, 내 팔자야.”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자기 가슴을 두드리셨다. 그래서 고등학생인 오빠에게 물어보았다.
“그따위 공상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해!”
전교 1등을 맡아 놓고 하는 오빠지만 그런 직업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도 잘 모르시는지 교무실로 가서 다른 선생님들하고 이야기를 해 보고 오더니, ‘도서관 사서가 그런 직업’이라고 일러 주셨다.
“도서관 사서!”
나는 너무나 기뻐서 우선 공책 뒷장마다 ‘도서관 사서’라고 썼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벽에도 한 장 써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그 직업의 이름을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기를 한 달쯤,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미안한 듯 말씀하셨다.
“피연희 선생님 친구가 청주에 있는 시립 도서관 사서인데, 도서관 사서는 책 훔쳐 가는 사람을 감시해야 해서 책 읽을 시간이 통 없다고 하는구나.”
낙심천만이었다. 책 훔쳐 가는 사람을 감시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로 벽에 붙여 놓았던 종이를 찢어 버렸다.

그 후 세월은 흘러갔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동화 작가가 되었고, 숙명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에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이는 35세, 직업은 전업주부, 부업은 한국출판문화협회 우수도서 선정 위원.
그 부업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기 전에 한 1년간 새싹회 윤석중 선생님의 비서 역을 한 덕에 얻은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일자리를 소개해 주면서 말씀하셨다.
“수당은 많지 않지만, 책은 실컷 읽을 수 있을 거야.”
당시 한국출판문화협회는 출판사들이 보내 온 도서를 선정 위원 집으로 배달해 주고는 일주일 후에 찾으러 오곤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한 100권씩 오던 책이 점점 많아지더니, 얼마 안 가 300권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책 실으러 오는 차가 다음 날 아침에 올 것에 대비해 새벽 2시까지 책을 읽고 있었다.
“정말 너무해. 일주일에 300권이라니! 양심도 없어.”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렇게도 되고 싶어 했던 ‘재미있는 책만 실컷 읽어도 돈을 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이런 일을 한 것일까? 전래 동화에서 만났던 도깨비일까? 서양 동화에 나오는 요정일까? 그리스신화에서 만난 여신일까?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생각했다. 내가 동화 작가로 데뷔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우수도서 선정 위원이 됐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런데 미련하게도 나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불평을 한 것이다.

레일 위에 오른 기차는 바람이 밀어 주는 것일까? 그 후의 내 인생은 책 읽기와 관련된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었다. 한국교육개발원 국어교육연구실 연구원이 되어서는 국어 교과서를 만드느라 수많은 책을 읽어야 했다.
교과서란 좋은 제재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재가 좋지 않으면 교과서의 품위가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교과서 만드는 사람은 고전부터 현대까지 책 읽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기를 23년 6개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던지. 물론 월급도 많이 받아 가면서.

그러나 내 인생은 ‘재미있는 책만 실컷 읽고도 월급 받는 직업 갖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해 스승의 날에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일일 교사로 갔다가 한 소년을 만났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배우는 국어 교과서를 만든 준환이 엄마가 왔다고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교단에 올라가 고개를 들었을 때, 초라한 옷차림에 겁먹은 표정으로 책상과 의자 사이에 쑤셔 박힌 듯 앉아 있는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먼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아이에게 한껏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배울 부분을 네가 읽어 볼까?”
그때 반 아이들이 ‘와아’ 하고 웃어 대었다. 책상을 두드리며 웃는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 속에서 “선생님, 쟤는 책 못 읽어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세상에! 중학교 2학년이 책을 못 읽다니!’
가슴이 아팠다. 외로운 시간마다, 슬픈 시간마다 저 아이는 어떻게 자기를 위로한단 말인가? 저 아이는 이 힘든 삶을 어떻게 견디고 있단 말인가? 아니, 책을 못 읽는 아이에게 학교란 얼마나 가혹한 장소인가? 저런 아이들에게 교과서란 얼마나 큰 사치인가? 나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날 이후 독서 교육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나를 손짓했다. 이제는 ‘재미있는 책만 실컷 읽고도 월급을 받는 직업’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는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책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독서를 하찮은 심심풀이로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독서의 위력을 알려 주고 싶었다. 지금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삶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어린 나에게 “너도 백조가 될 수 있다”고 속삭여 주던 미운 오리에게 감사한다. 나를 책 속으로 안내했던 ‘미운 오리’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을 책 속으로 안내하는 ‘미운 오리’가 되고 싶다.

해설 - 정선혜
1955년 서울 사직동에서 출생했다. 매동초등학교, 풍문여중·고등학교,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한국유년동화연구)와 박사 학위(한국기독교아동문학연구)를 받았다. 1981년 ≪아동문학평론≫에 이재철의 추천으로 아동문학평론가가 되었고 2001년 ≪아동문학연구≫에 <황금액자>를 발표해 동시 작가로 등단했다. 한국독서대학교 전임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겸임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아동문학학회 부회장,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방송문예학과 외래 교수, 한국독서치료학회 부설 전임 교수로 ‘문학과 독서 치료’를 담당하며, ≪아동문학평론≫ 상임 운영 위원, 동심치유연구소장이다. 저서에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한 평론집 ≪한국아동문학을 위한 탐색≫(청동거울)과 동시집 ≪다롱이꽃≫(코람데오), 수필집 ≪딸에게 주는 편지≫(문공사)와 공저로 ≪독서 치료의 이론과 실제≫, ≪시 치료의 이론과 실제≫, ≪발달적 독서 치료를 통한 독서 치료≫, ≪상호작용을 통한 독서치료≫가 있고, 논문 <한국동화상에 나타난 어머니상>(1996, ≪한국아동문학연구≫ 5), <한국 동화 속에서 잃어버린 모성찾기>(1999, ≪한국문예비평연구≫), <한국 아동문학에 나타난 테크놀로지 탐색>(1999, ≪한국어린이문학교육연구≫), <한국 동화의 구조를 위한 탐색>(1993) 등 다수가 있다.

목차

작가의 말

아기 송아지
석이와 짠
가시나무에 떨어진 별
거인과 꽃시계
제비꽃
소년병과 들국화
공주님의 첫사랑

해설
남미영은
정선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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