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으로 알려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참다운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헤세의 오랜 질문을 진지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 질문을 중심으로 중세의 지성들의 모이는 수도원에서 최고의 지성과 열정, 순수한 영혼을 갈구하는 젊은이들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두 개의 가치에 바탕을 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그들이 쌓은 평생의 우정을 두 세계의 공집합으로 설정한다. 이 두 인물의 대비되는 가치관을 보여주어 세계를 대하는 두 가지 모습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그것은 대립이 아니라 화합을 위한 끊임없는 교감과 포용과 이해였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즉 그는 이 소설에서 지성과 감성의 결속, 현실과 이상의 융합이라는 관심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상징하는 학자의 이성과 예술가의 감성은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둘도 없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이때 헤세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궁극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우리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으로써 '이성과 감성의 조화'라는 어려운 경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의 탐구는 유럽과 비유럽, 기독교와 비기독교, 예술과 지성 등 거대한 세계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고는 기어이 세계와 화해하는 구도와 관련이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그러한 주제의식을 유럽 중세라는 기독교의 패러다임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두 인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하나의 진리가 이미 정답처럼 제시된 시절에도 이 인물들은 풍요로운 성찰을 해낸다.
또한 이 작품의 골드문트는 헤세 자신을 많이 닮아있다. 즉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예술가로서 헤세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진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가는 예술가인 동시에 지식인이기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문학가 헤세에게도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지식과 예술성이라는 두 가지의 요소가 충돌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어쩌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문학가 헤세의 두 심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두 영혼은 늘 대화하고 긴장하며 때로는 화해한다. 그러한 모습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인물화하여 ‘과연 문학가는 어떠해야 하며, 예술가는 어떻게 세계를 바라볼 것인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뚜렷한 교집합을 보이지 않은 채 우정으로 교감하던 두 인물은 서서히 깊이 이해하고 교집합을 이루면서 하나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영향을 받고,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둘은 뒤섞이게 된다.
결국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두 인물 모두 자기 탐구를 거쳐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게 되고 관조의 세계를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헤세가 지식인이면서 예술가인 문학가의 참 자세로 제시한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성, 지식과 예술이라는 두 요소의 대립과 화해 그리고 우정을 아름답게 풀어낸 이야기다. 그 긴장과 균형 사이로 흐르는 감미로운 선율로 가득 찬 작품이다. 헤세만의 품격 있고 유려한 이야기를 통해 조화로운 인간의 모습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