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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는 덴마크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가 파리에서 살아가며 남긴 기록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말테는 파리의 가난한 하숙방에 머물며 거리의 병자와 노인, 거지와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화려한 예술의 도시라 기대했던 파리는 그에게 병원과 빈민가, 악취와 소음, 이름 없는 죽음이 가득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는 사람들이 저마다 고유한 삶을 살기보다 군중 속에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살아가며, 죽음조차 자기답게 맞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파리에 대한 공포는 곧 사람에 대한 공포로, 사람에 대한 공포는 다시 자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번져간다. 현재의 파리를 견디지 못한 말테는 자꾸 어린 시절과 가족의 기억 속으로 물러난다. 덴마크의 오래된 저택, 병약한 어머니, 엄격한 아버지, 이모 아벨로네, 늙은 브라에 백작과 조상들의 이야기가 파리의 장면들 사이에 불쑥 끼어든다. 이 회상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말테는 어린 시절의 가면 놀이와 유령 같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인간에게 진짜 얼굴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사람은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가족과 사회가 씌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이렇게 작품의 중심은 ‘죽음이 무섭다’는 공포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질문으로 이동한다. 말테는 과거의 귀족들과 역사적 인물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현대인의 죽음과 비교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이름과 기억, 가문의 역사 속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파리의 사람들은 병원의 침대와 번호 속에서 익명으로 죽어간다. 여기서 말테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죽음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사유는 결국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관심은 사랑의 문제로 옮겨간다. 말테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가 사랑일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부모와 연인, 가족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이해했다고 믿고, 자기 기대와 욕망 속에 상대를 가두기도 한다. 그는 특히 남성들의 사랑이 상대를 소유하고 사랑받음을 확인하려는 데 머무는 반면, 여성들의 사랑에는 오래 기다리고 견디며 사랑 자체를 감당하는 힘이 있다고 본다. 아벨로네와 사랑에 빠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생각을 보여준다. 다만 이 여성들은 실제 삶을 사는 복잡한 인물이라기보다 릴케가 이상화한 ‘사랑하는 존재’에 가깝다는 한계도 있다. 마지막의 탕자 이야기는 앞선 모든 질문이 모이는 지점이다. 릴케가 다시 해석한 탕자는 단순히 방탕하게 살다가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아니다. 그는 가족의 사랑과 기대 속에서 규정된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떠난 사람이다. 그러나 집을 떠났다고 곧바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탕자는 오랜 고독과 방황을 거치며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작품은 뚜렷한 해결이나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말테가 완전히 성장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자기 삶을 실제로 바꾸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그는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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