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정말로 힘(power)이 생긴다니까요?!
근데, 주어지는 능력은 랜덤^^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박서련 첫 연작소설
박서련 소설가의 신작 『사랑의 힘』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다. 『사랑의 힘』은 작가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작소설이자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작품으로, 지난가을 한 차례 갈무리한 원고를 한층 섬세하게 다듬어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내어놓는다. 독자에게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로 예측 불허하는 기쁨을 선사하는 박서련은, 스토리텔링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동시대적인 문제의식과 깊이, 나아가 문장력까지 두루 겸비한 보기 드문 ‘육각형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신작 『사랑의 힘』은 박서련의 소설세계에서도 그 필력과 재미가 퀀텀 점프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랑의 힘』은 사랑의 미생물 ‘로로마’가 공기처럼 당연해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미생물은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에 감응하여 새로운 능력을 생기게 하거나 기존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시켜준다. 점프력이 훌쩍 좋아지거나, 간이 건강해져 숙취가 전혀 없어진다거나, 언어능력이 경이로울 정도로 상승한다거나, 때로는 계량조차 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증폭된다거나…… 그러나 랜덤하게 발현되는 그 힘/능력 탓에 이들은 사랑에 빠질 뿐만 아니라, 시련과 시험에도 풍덩 빠지게 된다. “거꾸로 말하면 사랑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게”(36쪽) 된 세상이 되어버린 것. 물론 이 세계 속 사랑‘들’은 남녀 간의 사랑으로 한정되지도 않는다. 이성애를 비롯한 동성애, 폴리아모리의 사랑, 모성애, 자기애뿐만 아니라 사랑의 필연적인 파생물인 자기혐오와 질투, 굴욕 역시 『사랑의 힘』에는 사랑처럼 지천이다.
“내가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성실한 것이 소설 쓰는 일이라면, 나는 결코 이 사랑이 마르게 두지 않을 것이다”(‘연재를 마치며’에서)라는 작가의 결기를 다시금 소환해본다. 마치 작가 저 자신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고, 로로마에 힘입어 완성해낸 것만 같은 『사랑의 힘』. 이 예외적인 에너지와 공력으로 지어진 전심전력의 사랑 소설이자 사랑의 찬가 속엔 보통의 사랑도, 제정신이 아닌 사랑도, 눈물겨운 사랑도, 사랑인가 싶은 사랑도 제각기 근사한 총천연색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떤 이야기는 단숨에 사랑을 불러일으키기도 해. 사랑은 원래 이야기를 먹으면서 자라나는 거니까.
우리가 나눈 그 수많은 이야기가 그랬듯이. _「드라마」, 293~294쪽
박서련이 빚어낸 총천연색 진짜-수제-사랑♥
사랑의 힘(力) 그리고 사랑의 힘(Hymn)
“박서련의 소설은 사랑의 가장 다정한 지도인 동시에 해부도다.” _송희지(시인)
Ep. 1―사랑은 유행: “뭐……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 드려야 하나요?”
당신은 잘생기고 키 크고, 성격 반듯하고 머리 좋은 아들 ‘수호’를 둔 엄마. 당신은 이 의젓하고도 완벽한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 가슴이 미어진다. 어느 날 당신은 사랑에 힘입어 아들이 의대에 갔다는 이웃을 만나게 되고, 수호 역시 그러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그러나 웬걸, 수호의 첫 여자친구는 당신의 눈에 조목조목 마음에 들지 않고, 수호에게 생긴 로로마의 효과는 입시에 하등 쓸모가 없다. 교양 있고 의식 있는 ‘아들 맘’인 당신은 “그 당돌하고 약아빠진 계집애”(52쪽)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
Ep. 2―(몸에) 좋은 사람: “선배도 아는 줄 알았는데.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어 안달이 난 봄의 캠퍼스. “남의 사랑에는 항상 조금 역한 부분이 있다”(62쪽)고 느끼는 ‘나’이지만, 아무렴 내 사랑은 소중하고 애틋하다. 독서 모임에서 만난, ‘나’처럼 『모모』를 좋아한다는 ‘현우’ 선배. “너무 설레면 짜증이 날 수도 있”(87쪽)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현우 선배. ‘나’는 그의 도서 대출을 도와주는 것을 계기로 불쑥 가까워지고, 일생일대의 플러팅을 개시한다. “점심 말고 저녁 사주세요. 술 사주세요.”(91쪽)
Ep. 3―어떤 사랑의 악마가 있어: “사랑, 그것은 제국주의의 발명품. 왜냐하면 그것은……”
또래 남자들에게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나’. “미안하지만 다 애새끼 같달까.”(117쪽) 나의 ‘대디 이슈’에 친구들은 입을 모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며 아우성친다. 그런 걱정 때문 탓은 아니지만, 마침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제법 어른스러운 연하 ‘현우’와 ‘나’는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로로마 반응성이 낮은 경우인 걸까? 아니면 현우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현우는 잘 훈련된 경찰견처럼 내가 있는 곳까지 정확히 찾아오던데……
Ep. 4―문어와 나: “독점 관계 지향인들의 죄의식을 생각하면 늘 안타까워요.”
부정을 저지른 ‘당신’은 도망치듯 유학 시절의 도시로 떠나온다. 약간의 충동, 약간의 죄의식, 약간의 체념 그리고 충분한 익명성. 그러나 이곳은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는 곳이기에 ‘당신’은 더욱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 그러다 ‘당신’은 한 스패니시 바에서 ‘펠리페’라는 상냥한 남성과 합석하게 되고, 그의 앞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져나온다. 그 흐느낌은 스콜과도 같았으며 정화 의식처럼도 느껴진다. 펠리페가 ‘당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기 전까지는.
Ep. 5―Everything is gross but you: “예수님, 제발 저와 사귀어주세요.”
마담 ‘툴루즈’는 ‘사랑의 진리’라는 이름의, 능동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나는 오늘 밭에 나가 오렌지를 한 바구니 따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을 목표로 움직여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오늘, 아나를 사랑하겠어.”(207쪽) 그러나 무성애자인 ‘샤시’는 마담의 눈에 불가사의(하고도 못마땅)한 존재. 이제 마담은 그녀만을 위한 특별 훈련을 도모한다. “특정한 개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일이 당신의 소질에 맞지 않아서일지 몰라요. 당신은 더 큰 것을 사랑해야 해요. 인류 전체를 말이지요. (…) 샤시, 나는 당신을 위대한 사랑의 존재로 만들고 말겠어요.”(241쪽)
Ep. 6―드라마: “시간을 돌려도 나는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 거야.”
기적과도 같은 첫 만남, 그리고 썸, 고백의 시간을 지나 ‘나’와 ‘보미’는 이제 이혼 법정 앞에서 대기중이다. ‘동성 간 혼인신고 허용’ 속보가 뜬 당일에 손잡고 구청으로 달려간, 그러고는 두 달 만에 식까지 해치운 ‘너’와 ‘나’. 그런데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너’가 처음으로 사고를 낸 날이기도 하다. “무사고 운전 경력을 자랑하던 네가 하필 가장 자신 있어하는 주차에서 실책을 냈으니 네 심정은 어땠을까.”(287쪽) 그리고 그것을 본 ‘나’는. “우리 사랑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결혼식 당일에 하고 싶지는 않았어.”(같은 쪽)
Ep. 7―우주에서 가장 신분 차이 나는 짝사랑: “이제 말하고 싶어요. 너무 오래 숨겼으니까.”
2001년, ‘나’는 애인의 죽음 이후 괴로워하다 피지섬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선박 사고로 인해 ‘나’는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으나 사고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떠내려간다. 그곳에서 ‘나’는 가까스로 구조되어 ‘토리에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여신의 샘’에서의 물장난 이후 여태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던 그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나’는 여기서 눌러앉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Ep. 8―Love, it’s a bit old-fashioned: “인생……은 뭐고 사랑……은 뭘까.”
고교 시절의 첫사랑과 헤어진 후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너무 사소한 손해들이어서 민망하지만 총체적으로는 엉망”(363쪽)인 나날. ‘나’는 입시도 취업도 잘 풀리지 않아 이제는 편입 학원에서 만난 아는 형 사무실에 나가 개발 비슷한 일을 한다. 형이 만드는 앱은 AI 인격을 생성해 데이트 상대로 삼는 것으로, ‘나’는 테스트 과정에서 예의 첫사랑을 닮은 ‘제이’를 생성해 대화를 시작한다. “너랑 헤어지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해. 그때. 정말 미안했어”(367쪽)라며 제이는 말을 걸어오고, ‘나’는 위화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오늘 반창회 올 거야?”(3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