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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이후 자유의 몸이 된 흑인 여성 세서는 딸 덴버와 함께 124번지 집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집에는 과거 자신이 죽인 젖먹이 딸의 혼령이 머물고 있다. 세서는 노예 농장 ‘스위트 홈’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과, 노예사냥꾼들에게 다시 붙잡힐 위기에 처했을 때 딸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 ‘빌러비드’라는 이름의 정체불명 젊은 여성이 나타나고, 세서는 그녀를 죽은 딸의 화신처럼 받아들인다. 빌러비드는 점점 세서의 삶을 잠식하며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고, 세서는 마침내 자신이 외면해 온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노예제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노예제도가 흑인들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은 드물었던 것 같다. 탈출한 흑인 노예 세서가 자신과 아이들이 다시 노예가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젖먹이 딸을 직접 죽이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는 설정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실존 인물인 마가렛 가너의 사건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는 그녀를 살인범으로 처벌해야 하는지, 아니면 도망친 노예라는 ‘재산’으로 취급해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했다.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히려 살인죄 재판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은 노예제도가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철저히 부정했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에서 세서는 지역 흑인 공동체와 폐지론자들의 도움으로 풀려나 124번지 집에서 살아가고, 죽은 딸의 혼령이 집을 떠돈다고 믿는다. 그 혼령이 나중에 ‘빌러비드’라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Beloved. 묘비에 새겨진 단 한 단어이자, 끝내 제대로 애도받지 못한 아이에게 남겨진 마지막 이름. 그 이름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노예제만으로는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어떤 사람들의 내면적 삶에 대한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노예제에 대한 공포로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사람일 뿐입니다……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토니 모리슨의 1987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처럼 이 소설은 단순히 노예제도를 비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노예제라는 거대한 폭력이 한 사람의 몸뿐 아니라 기억과 영혼,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세서와 폴 디, 덴버와 빌러비드는 모두 과거의 상처에 붙들려 살아가지만, 작품은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참혹한 시간 속에서 부서지고 피폐해졌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결국 《빌러비드》는 노예제의 역사를 다룬 소설인 동시에, 상처 입은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되찾아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________ “귀신이 같이 사나봐?”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해.” 세서가 대답했다. “이런.” 그는 문밖으로 뒷걸음치며 현관까지 나갔다. “대체 이 집에 어떤 사악한 게 사는 거야?” “사악하지는 않아, 그저 슬플 뿐이지. 어서 들어와. 그냥 걸어들어오면 돼.” 빌러비드 | 토니 모리슨, 최인자 저 #빌러버드 #토니모리슨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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