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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 관심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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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종이책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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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2,000원
판매가
12,000원
출간 정보
  • 2023.10.04 전자책 출간
  • 2023.09.30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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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8.7만 자
  • 12.6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60405880
ECN
-
단 한 사람

작품 정보

■ 책 소개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수천 년 무성한 나무의 수명 가운데 이파리 한 장만큼을 빌려
죽을 위기에 처한 단 한 명만을 구해야 한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의 틈에서 피어나는 최진영식 사랑의 세계

2023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는 최진영이었다. 2006년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10년 첫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지 10여 년. 지독한 비관의 세계에서 시작한 그는 “등단 이후 10여 년간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걸어온 작가의 작품 세계가 마침내 새로운 경지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눈이 부시다”(소설가 윤대녕)라는 평을 받기에 이른다. 불멸하는 사랑의 가치를 탁월하게 담아낸 《구의 증명》,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혼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아포칼립스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내밀한 의식과 현실을 정면으로 주파한 《이제야 언니에게》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거침없는 서사와 긴 여운을 남기는 서정으로 그만의 세계를 공고히 했다. 상실을 경험한 여성, 학대 가정에서 자라난 소녀, 비정규직 청년 등 폭력과 고통의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따스한 진심을 담으려 한 그의 이야기는 내내 주목받고 신뢰받았다. 그럼에도 어떠한 동요 없이 어떠한 소비 없이 묵묵히 쓰기를 계속해온 작가. “쓰다 보면 견딜 수 있다”라는 그의 말은 “최진영은 끝까지 우리 삶의 전부를 써낼 것이다”(소설가 황현진)라는 말로 통한다.
이런 그가 2년여 만에 발표하는 신작 장편소설 《단 한 사람》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지구에서 가장 키가 크고 오래 사는 생물, 수천 년 무성한 나무의 생 가운데 이파리 한 장만큼을 빌려 죽을 위기에 처한 단 한 명만 살릴 수 있는, 나무와 인간 사이 ‘수명 중개인’의 이야기다.
열여섯 살 목화는 꿈을 빌려서 그러나 현실처럼 생생한 순간들을 목격한다. 투신과 살해, 사고사와 자연사 등 무작위한 죽음의 장면. 동시에 한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구하면 살아. 나무의 알 수 없는 소환은 이어지고 일상은 흔들린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을 살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 일은 대를 이어온 과업. 할머니인 임천자는 이를 기적이라 했고, 엄마인 장미수는 악마라고 했다. 이제 목화는 선택해야 한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신에게는 뜻이 있는가? 사람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신념과 사랑 없이 인간은 살 수 있을까?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묵직한 주제와 더불어 문명과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임은 물론, ‘수명 중개’라는 판타지적 요소까지 더해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최진영 소설 세계의 전환점이 될 《단 한 사람》은 작가가 3년 전 착안해 지난 1년간의 집필 끝에 출간하는 전작 소설이자 여덟 번째 장편이다.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3대에 걸친 ‘살리는 자’의 숙명, 그리고 ‘인간의 몫’에 관하여

최초에 씨앗에서 움튼 어린 두 나무가 있었다. 부족함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 천재지변을 견디고 장엄한 숲이 된. 그러나 두 발로 걷는 희귀한 종족 인간이 나타나고 나무들은 차례로 쓰러진다.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는 나무, 그 나무는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장미수와 신복일은 결속하여 일화, 월화, 금화, 쌍둥이 남매 목화와 목수를 낳는다. 어느 날 꼬마 금화와 쌍둥이는 홀린 듯 그 숲속으로 향한다. 산을 오르던 금화의 머리 위로 나무가 우지끈 기운다. 목화는 어른을 부르러 산 아래로 뛰어가고 다시 돌아왔을 때 금화는 온데간데없다. 금화의 실종 후 가족들은 죄책감으로 고통 속에 살아간다.
목화가 열여섯이 되던 봄, 꿈인 듯 눈앞으로 투신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 죽음을 목도하다가 목소리를 듣는다. 가서 그를 구하라는 말. 망설이다가 목화는 달려간다. 열기와 함께 사뿐 내려앉는다. 그는 조금의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난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재차 그 세계로 ‘소환’되고 나서야 이 일이 꿈이 아님을 안다. 깨어나 우는 목화를 보고 엄마인 장미수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다. 차라리 금화이길 바랐는데. 장미수는 열다섯부터 사람을 구했던 것. 장미수에게는 구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죽음에 비해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겨우’에 불과했다. 패배감과 무력감에 신을 저주한 장미수와 달리, 할머니 임천자는 단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둔다. 목화는 첫 소환에서부터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의 존재를 느낀다. 의심과 반항과 시험도 있었지만“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인 ‘중개인’의 정체성을 체화해간다. 소환하는 그 나무를 잘 알고 싶어 목공소에서 일한다. 그러던 중 일화의 딸인 루나의 자살을 막게 되고 중개 때 목화를 봤다는 루나의 말에 놀라 그가 이제껏 살린 ‘단 한 사람들’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살아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평범한 그들의 일상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삶과 죽음에 판단을 멈춘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을 한다. 임천자의 평온한 죽음 이후, 목화는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구한 것이다. 한 번뿐인 삶, 다시없을 오늘을 사는 한 존재, 그것은 신도 나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오직 인간의 몫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_본문에서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가가 세계를 호명하는 아름다운 방식

엄청난 수령의 나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악행을, 나약함을, 순수함을, 서로를 돕고 아끼는 모습을, 사랑하고 기도하다 어느 날 문득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삶을”(‘작가의 말’에서) 다 보았을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무의 눈에서 보자면 인간은 순간을 사는 존재일 뿐이라고. 압도적인 자연의 스케일 가운데서 인간이란 미약하지만 그 ‘단 한 명’들의 낱낱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또한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하다. 목화가 중개에서 깨어난 뒤 장소를 유추해 죽은 자들의 마지막 자리를 찾아가보는 장면이 그것이다. 어떤 이는 새벽 가로등 빛이 닿는 건물 입구 계단 벽에 기대어 홀로 죽었다. 어떤 이는 늦은 밤 갓길에 세운 자동차 안에서 쪽잠을 자다가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는 이른 새벽 눈을 떠 옆에 누운 반백 년 넘게 함께한 얼굴을 한번 보고 편안한 잠 속에서 심장이 멈췄다. 사고 현장 혹은 폭력 속에서 사라진 원통한 죽음과 충분히 생을 누려 되살리지 않아도 좋을 죽음 등등 그 모든 마지막을 목화가 끝까지 보았다. 죽은 자가 한 대로 건물 계단에 잠시 기대었다가 떠날 때 생수 한 통을 남겨두고 오는 목화의 발걸음에서 가까스로 살아가는 인간을 향한 작가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작가가 부려놓은 이 세계를 통해 독자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그릇에 담긴 나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단 한 사람으로서.

목화는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했으며 그와 같은 죽음을 원했다. 그러므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_본문에서



■ 작가의 말
열일곱 살부터 나에게는 나무 친구가 있었습니다. 첫 친구는 다른 가로수보다 줄기는 가늘고 키가 작았던 은행나무.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그 나무 옆에 서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넸어요. 보통 시시한 이야기였지만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털어놓기도했습니다. 집에서 식물 영양제를 가지고 나와 밑동에 꽂아주기도 했습니다. 그 나무는 잘 있을까요. 사람이 뽑거나 베어내지 않았다면 아마 키가 많이 자랐겠지요.
나무 친구는 학교에도 있었습니다. 교실 창과 복도 창에서 각각 볼 수 있었던 나무들. 꽤 멀리 있는 그들에게도 매일 마음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끼리 부딪치는 모양은 마치 손뼉을 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때 그들에게 건넨 말이란 대개 슬프거나 속상한 내용이었고, 그들은 나를 향해 힘껏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른이 된 다음에도 자주 오가는 산책길이나 버스정류장, 주기적으로 들르는 장소마다 나무 친구를 두었습니다. 눈길이 머무는 나무는 늘 있었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무는 늘 거기 있으니까요. 내 얘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가끔은 물었습니다. 넌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어? 여기서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어? 어떤 풍경을 가장 좋아해? 물론 나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나무의 나이가 궁금해서 줄기나 수관을 유심히 살펴본 적도 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제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매일 저녁 산책을 했습니다. 친구를 만날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 산책길에 팽나무(제주에서는 ‘폭낭’ 또는 ‘퐁낭’이라고 부릅니다)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나무 근처에는 사람이 만든 안내판이 있었고, 나무들의 수령이 적혀 있었습니다. 수령은 대개 300년이 넘었습니다. 300년 동안 나무는 그곳에서…… 다 봤을 겁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악행을, 나약함을, 순수함을, 서로를 돕고 아끼는 모습을, 사랑하고 기도하다 어느 날 문득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삶을.

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주와 서울, 대전과 천안의 나무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요.
나무를 알고 싶어서 이런저런 책과 인터넷 정보를 찾아 봤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무를 모릅니다. 나무를 보면서도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어둡고 축축해져서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계속해서 땅을 파는 기분이었습니다. 줄기처럼, 잎처럼, 햇살을 받으며 하늘 높이 오르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러나 뿌리처럼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매일 글을 썼습니다.

10여 년간 붙들고 지낸 여러 질문이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쓴 문장과 단어가 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겨우 질문을 이해했을 뿐입니다. 내가 계속 묻던 것은 알고 싶지 않은 것이었어요. 모른 채 살고 싶은 것. 답을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풀지 못한 문제로 남겨두고 다른 질문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질문. 그것이 가능할까요. 가까스로 사람에 불과한 내가. 글을 쓸수록 강렬하게 인지합니다. 한 번뿐인 삶, 다시없을 오늘을.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파란 하늘에서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 그리고 이 문장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전해요. 지금 내 마음에는 광활한 하늘과 드넓은 바다, 거센 바람을 타는 새, 비바람에도 한자리에서 다만 흔들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단 한 사람, 당신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지키며 언제고 당도할 안부를 기다리겠습니다.

■ 본문에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 그중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일. 그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
왜 모두 다를까. 다른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까. 생명은 어째서 태어났을까. 탄생이 없다면 두려워할 죽음도 없을 텐데.
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날 목수는 그 말을 기록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숨. 그는 거기 있었다. 목화가 끝까지 지켜봤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탄생이란,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사랑의 시작 또한,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언젠가 목화는 임천자의 혼잣말을 들었다. 신을 찾는 사람은 자기 속부터 들여다봐야 해. 거기 짐승이 있는지, 연꽃이 있는지. 언젠가 목화는 장미수의 혼잣말을 들었다. 기도로 구할 수 있는 건 감사하다는 말뿐이지. 나머지는 다 인간 몫이야.
목화는 종종 상상했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태어나 홀로 살다가 홀로 죽은 사람을. 작은 행성의 드넓은 바다에서 홀로 탄생해 홀로 숨 쉬다 홀로 소멸한 생명을. 끝없는 사막에서 홀로 피어나 홀로 메말라 가는 식물을. 그들이 확실히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신은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우주에서 생명이란 너무나도 이상한 현상. 신은 생명에 관심이 없다. 살려달라는 기도를 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 생존의 각종 증거와 인사말을 저장한 탐사선이 우주를 비행하더라도 그것은 돌과 불덩이와 먼지와 암흑 물질 사이를 떠돌 뿐. 적막과 적요뿐. 어둠과 고독뿐. 인류는 해변의 모래알보다도 작은 행성에서 홀로 존재하다 홀로 사라질 것이다. 인류가 잠시나마 실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줄 이는 없다.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목화는 자기를 둘러싼 나무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숲속의 날개 달린 것들에게, 흙이 되어가는 죽은 것들에게, 가장 먼 곳까지 이동하는 바람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당신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 가서 그 나무에게 전해. 당신의 일을 대신하는 나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나를 도구로만 쓰지 말라고. 나 또한 한 번뿐인 삶을 사는 단 한 명임을 기억하라고.
살아도 귀신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죽어서도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
오직 사람만이 다른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신을 필요로 한다. 기적을 바란다. 먼저 떠난 존재가 너무 그리워 죽음 이후를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목화가 하는 일이었다. 나무의 지시가 아니었다. 목화의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속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목화는 그들의 마지막을 기억했으며 그와 같은 죽음을 원했다. 그러므로 남김없이 슬퍼할 것이다. 마음껏 그리워할 것이다. 사소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목화가 원하는 삶.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처럼 삶과 죽음 또한 나눌 수 없었다.

작가

최진영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81년
학력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데뷔
2006년 실천문학
수상
2023년 46회 이상문학상 대상
2010년 제15회 한겨레문학상
2006년 실천문학 단편소설부문 신인상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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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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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입부와 플롯, 문장력도 좋았지만 내 취향에는......

    kty***
    2024.12.14
  • 제게는 두번을 읽고 다시 시작하는 얘기...

    jiy***
    2024.11.30
  •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여운이 남는 책

    seh***
    2024.11.21
  • 최진영 작가 책이 이렇게 난해했던가 싶어서 살짝 당황스러웠던 책. 등장인물도 너무 많았고, 군더더기같이 보이는 부분들이 좀 많은게 아닌가 싶었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 파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등장인물들의 특정한 운명을 가지고 돌려돌려 말하려고 했던 것이 맥락을 잡는데 혼란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구의 증명>정도가 읽기에 딱 적당했던거 같다는 느낌. 최초에 씨앗에서 움튼 어린 두 나무가 있었다. 부족함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 천재지변을 견디고 장엄한 숲이 된 나무들은 어느 날 인간으로부터 차례로 쓰러진다.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는 나무, 그 나무는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파괴한 적이 있다. 장면이 바뀌어, 장미수와 신복일의 다섯 자녀들 일화, 월화, 금화, 쌍둥이 남매 목화와 목수 이야기로 넘어간다. 어느 날 꼬마 금화와 쌍둥이는 홀린 듯 그 숲속으로 갔다가 금화의 머리 위로 나무가 덮치고, 목화는 어른을 부르러 내려갔다 왔으나 금화는 실종된다. 금화의 실종 후 가족들은 죄책감으로 고통 속에 살아간다. 목화가 열여섯이 되던 봄, 꿈인 듯 눈앞으로 사람들이 죽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가서 그를 구하라’는 목소리를 듣고 망설이다가 달려가서 사람을 구하는 이상한 꿈을 꾸고나서 불안해하는 목화에게 엄마인 장미수는 3대에 걸친 비밀을 알려준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단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살려지는 목숨은 당위성에 의한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착한 사람이 아닌 악인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엄마 장미수는 자신의 운명을 혐오한다. 그러나 그의 엄마 임천자는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들의 신비한 능력에서 나무가 가진 힘을 느낀 쌍둥이들은 나무를 다루는 일을 배우며 삶과 생명, 자신과 타인들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살아있기까지 내가 인식히지 못하고 있던, 나 대신 희생했을지 모를 존재들을 상상해본다는 것. 분명히 존재했을 그런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과정인듯 하다.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인 나의 존재에 대해서 좀 더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생명있는 존재들 사이의 연결성’ ‘생명에 대한 존중’에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화두가 아닐까. 중요하지만 잊어버리며 살기 쉬운 주제를 다소 환상적이지만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독특한 소설. _______ 사람의 탄생이란,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사랑의 시작 또한,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단 한 사람 | 최진영 저 #단한사람 #최진영 #한겨레출판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geo***
    2024.09.01
  •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입니다.
    suj***
    2024.08.15
  • 스포일러가 있는 리뷰입니다.
    ria***
    2024.05.07
  • 핵 존 잼 개 꿀 잼

    my8***
    2024.02.26
  • 꿈과 현실속에서 헤메다보면 소설의 중반 쯤에 와 있다가 가다보면 그 끝인데 ... ... 정작 작가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좀 어렵다. 나무를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멍 해진다.

    sai***
    2024.01.13
  • 등장인물 이름 때문에 내용 이해가 불필요하게 어려워짐

    dnf***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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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강보라)
  • 파과 (구병모)
  • 퇴마록 외전 1 (이우혁)
  • 개정판 | 채식주의자 (한강)
  • 탄금 - 금을 삼키다 (장다혜)
  • 퇴마록 : 국내편 세트 (전2권) (이우혁)
  • 급류 (정대건)
  • 칼의 노래 (김훈)
  • 퇴마록 세계편 1 (이우혁)
  • 개정판 | 퇴마록 국내편 1 (이우혁)
  • 구의 증명 (최진영)
  • 살인 택배 (정해연)
  • 개정판 |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 퇴마록 말세편 1 (이우혁)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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