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의 허식을 우아하게 비트는
영국 유머의 표상,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1881~1975)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가 P. G. 우드하우스
그의 대표 캐릭터와 최고 단편만을 엄선해 수록한 국내 첫 단편선
우아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글로 오늘날 “영국 유머의 표상”이라 불리는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의 단편집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서른세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우드하우스는 20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읽힌 유머 작가였다. 그는 영국 상류사회를 무대로 순진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신사답지 않은 인물들을 주로 그렸다. 품위나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허점투성이의 캐릭터들을 통해 귀족과 유산계급의 허식을 은근하게 조롱하는 그의 소설은 당대 독자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가 창조한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젊고 부유한 신사 버티 우스터와 무심한 듯 섬세하게 그를 보살피는 유능한 집사 지브스는 1915년 처음 등장한 이래 60여 년간 수많은 단편들에서 활약하며 “돈키호테와 산초에 버금가는 불멸의 콤비”라는 명성을 얻은 명실상부한 걸작 캐릭터이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는 버티와 지브스를 비롯한 그의 대표 캐릭터와 최고 단편들만을 엄선하여 총 39편의 작품을 국내 초역으로 선보인다.
우드하우스는 본인이 쓴 소설처럼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책에 엉뚱한 그림을 그리고 우스운 시를 잔뜩 써 놓는 등 장난기가 다분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홍콩이었던 탓에 성장기 대부분을 부모와 떨어져 보낸 그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낙천적 기질을 발휘하여 일찍부터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스스로 위안을 찾았다.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하고 은행에서 일할 때에도 퇴근 후 글 쓰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는데, 이렇게 완성한 글들을 여러 잡지에 기고하고 고료를 받으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1902년 전업 작가가 되어 첫 책 『상금을 노린 선수들The Pothunters』을 출간한 그는 이후 무서운 속도로 글을 써냈다. 석 달에 한 편 꼴로 소설을 완성하는가 하면, 런던과 파리, 뉴욕 등을 종횡무진 오가며 극작가, 잡지 편집자,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했다. 초반에는 주로 학창 시절과 은행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이야기를 썼으나, 점차 방향을 바꿔 특정 인물들이 등장하는 짧은 유머 소설을 발표한다.
그의 단편은 대부분 1920~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때는 세계가 전쟁과 대공황으로 신음하던,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작품의 분위기는 “그들은 아직 에덴에 있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느긋하고 목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의 작풍을 두고 “지나치게 가볍다”거나 “현실에 존재한 적 없는 동화적 세계”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많은 이들에게 우드하우스의 문학은 암담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탈출구로서, 또한 계급 사회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는 시대의 대변자로서 중대한 역할을 했고, 대중은 물론 에벌린 워, 조지 오웰,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등 동료 문인과 정치가, 심지어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후까지도 그의 팬을 자처했다.
한편 우드하우스는 에드워드 시대풍의 속어와 셰익스피어, 롱펠로, 워즈워스 같은 시인들의 시구를 다양하게 인용하고, 언어유희를 활용해 등장인물 간 대화를 마치 연극배우의 대사처럼 처리함으로써 형식적 측면에서도 뮤지컬 코미디에 비교되는 독특하고 현대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으로 이주한 우드하우스는 평생을 창작에 매진해 9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90권이 넘는 책과 40여 편에 달하는 희곡을 남겼고, 영국 왕실은 문학에 대한 헌신을 기려 1975년 그에게 대영제국훈장(KBE)을 수여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전 세계 30개국에 출간되어 있으며, 영화와 TV 시리즈, 라디오 드라마, 연극, 뮤지컬, 만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어 지금도 대중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사전에는 무려 1,800개에 달하는 인용문이 예문으로 수록되어 “우드하우스가 창조한 세계는 결코 진부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에벌린 워의 말을 증명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하여]
영국의 소설가 수전 힐은 우드하우스를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가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평했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영국 유머의 정의 그 자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200여 편의 단편들 중에서도 ‘명편’으로 꼽히는 작품만을 선별해 수록함으로써 우드하우스를 처음 접하는 한국 독자들도 그의 문학 세계를 한 치의 부족함 없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매번 사소한 일로 고집을 부리다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버티와, 무심한 얼굴로 그를 곤경에서 구해 주는 지브스. 영국 유머 소설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들 콤비는 부적절한 사랑에 빠진 사촌을 잡으러 뉴욕에 갔다가 의도치 않게 ‘사랑의 큐피드’가 되기도 하고(「거시 구하기」),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제일 오래 할까 하는 한심한 내기에 사활을 걸기도 하며(「설교 대회」), 가문의 명예를 더럽힐지도 모르는 삼촌의 회고록 원고를 훔치려다 곤경에 빠지고 마는(「모든 것은 지브스 손에」) 등 황당한 사건을 일으키면서 쉼 없이 웃음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조카의 결혼 문제마저 제쳐 두고 먹이를 거부하는 돼지에만 관심을 쏟는 엉뚱한 백작 엠스워스 경(「돼지 후워어이!」), 큰돈을 벌겠다며 고모의 개들을 훔치고 보험 사기단을 조직하는 어설픈 야심가 유크리지(「유크리지의 개 대학」, 「유크리지의 사고 조합」), ‘골프’를 신으로 모시는 이상한 나라의 왕 메롤차자(「고우프의 도래」) 등 시대와 언어를 초월해 사랑받아온 캐릭터들과 그들이 등장하는 명단편을 통해 우드하우스 소설의 정수, 나아가 영국 유머 소설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이제 막 우드하우스를 알게 된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눈앞에 잔뜩 펼쳐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 매혹적인 일입니다." _토니 블레어(전 영국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