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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든 폭력이든,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무리를 붙잡는 힘은 결국 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남은 이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골라내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깊게 남는다.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생존을 선택하는 태도, 그 냉정함 속에 오히려 더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전쟁 이후의 경제공황 속에서 농부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길 위로 내몰린다. 더 나은 임금을 기대하며 서부로 향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착취다. 절박함에 놓인 사람들을 이용해 임금을 낮추고,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틀어쥔 채 가격을 올리며 이중으로 짓누르는 구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자리를 빼앗고, 결국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 난 25센트짜리야. 당신이 20센트로 내 자리를 뺏으면, 나는 15센트로 내려가겠지.” 누군가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 그 잔인한 조건이 사람들을 서로의 적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천막촌에서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모여 물자를 나누고, 규칙을 세우고, 서로를 돌본다.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공동체. 그러나 이런 움직임조차 위협으로 간주한 농장주들은 사람을 사서 내부를 흔든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고발하게 만들고, 결국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구조.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상황. 그 틈에서 이익을 챙기는 소수. 최근 씨유 화물연대의 파업과정에서 시위하던 노동자가 트럭이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직접적인 대립은 화물연대 노동자와 씨유 운영사에 있지만, 둘 사이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것은 물건을 팔아야하는 씨유편의점주들이다. 돈을 쥔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를 힘들게하는 상황이 소설 밖에서도 그대로 구현되는 상황이라 마음에 착찹하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시 가족들을 이끌고 살 곳을 찾아 길을 떠나야하는 가족들에게 어머니는 확언에 가까운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삶을 온 가슴에 품고있는 여자의 관점에서. 여자들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 앞이 보이지 않는 갈등 상황과 지옥 같은 가난의 굴레 속에서도,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발버둥치는 모습 역시 삶의 한 장면일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가진 삶의 본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 뿐, 특별히 더 절망적이거나 견디지 못할 순간만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우리에게는 죽은 아이에게 주었어야 할 젖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모성이 남아 있을 테니. 사람에 대한 믿음과,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 삶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소설이다. ________ “그렇지 않아요, 여보. 여자들은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살면서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남자들은 단계별로 인생을 살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 그게 한 단계죠. 농장을 일구고 그 농장을 잃는 것, 그게 또 한 단계예요. 하지만 여자들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에요. 개울처럼, 소용돌이처럼, 폭포처럼. 강처럼 그냥 계속 흐르죠. 여자들이 보는 인생은 그래요.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조금 변하기야 하겠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 분노의 포도 2 | 존 스타인벡, 김승욱 저 #분노의포도 #존스타인벡 #민음사
'분노의 포도'는 형이상학적인 사색보다 처절한 현실의 대지 위에서 인간의 존엄을 길어 올리는 소설이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짐 케이시의 '초영혼' 사상은 개인의 고립된 영혼을 넘어 인류가 하나로 연결될 때 비로소 거룩해진다는 범신론적 신앙을 보여준다. 케이시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을 넘어 한 가족의 생존 투쟁을 노동 계급의 보편적 저항으로 확장하며, 톰 조드를 어둠 속 어디에나 존재하는 투쟁가로 거듭나게 한다. 가장 강인한 존재로 묘사되는 어머니는 가부장제가 붕괴된 자리를 지키는 실질적인 리더다. 그녀는 가족의 해체라는 극한의 비극 속에서도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하며, 절망 대신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소설 내내 패배하지 않는 정서적 지주가 된다. 기득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빨갱이'라는 낙인은 이러한 민중의 정당한 요구와 연대를 억압하는 도구에 불과함을 작품은 날카롭게 꼬집는다. 사산의 슬픔을 뒤로하고 굶주려 죽어가는 남자에게 젖을 물리는 로저샨의 마지막 행위는 이 모든 분노와 비극을 숭고한 인류애로 승화시키는 지점이다. '샤론의 장미'라는 이름처럼 척박한 땅에서 끈질기게 피어나는 생명력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는 행위야말로 어떤 탄압도 꺾을 수 없는 최후의 저항이자 희망임을 증명한다.
지금 읽어야 할 책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이 좀 감상적이게 끝난 것 같아 아쉽지만 그 또한 작가의 의도겠지요.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지루할 것 같은 내용인데도 전개가 빠르고 생생한 현장감과 긴박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끝까지 지루하지않게 읽었습니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챕터들은 짧게 나뉘어져있어 전개가 빠른 느낌이였습니다. 홀수 장, 짝수 장은 각기 따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노동자가 처했던 악조건도 묘사지만, 각 인물이 가지는 독특한 설정과 행동이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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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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