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스의 목가적인 대표 시편들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김소월과 함께 워즈워스의 이름쯤은 알고 있다. 「무지개」와 「수선화」의 작자인 자연시인으로 혹은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란 명언의 토로자로서 말이다. 초서를 별격으로 친다면 셰익스피어와 밀턴 다음가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라는 매슈 아널드의 워즈워스 평가는 반드시 비평적 일치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수용되고 있다.
―유종호, 「해설: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에서
19세기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자 자연주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의 대표작을 묶은 시선집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가 출간되었다. 익히 알려진 「수선화」부터 「틴턴 사원 위쪽에서」, 그리고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구로 유명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짤막한 서정시들로 유명하며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 등 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1843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비평적 일치를 얻고 있는 워즈워스의 잘 알려진 면모이다. 그러나 워즈워스 자신이 『서정담시집』의 재판에 부쳤던 「서문」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신고전주의의 시론을 전복하려 한 혁명가에 가까웠다. 먼저 그의 시편은 ‘사건 및 상황을 평민의 생활에서 취하려’ 했다. 이전까지의 비극이나 서사시 등에서 제왕과 귀족만을 다루었다면 워즈워스의 시에서는 농부와 어린이와 죄인과 불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서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
또한 그는 시어들을 가능한 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쓰는 말에서 가져와 서술 혹은 묘사하려 했다. 시에 고유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특수한 시어나 수사적 장치를 통한 시적 허용에의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 두었던 고전주의의 암묵적 전제를 거부한 결과였다.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라는 그의 지론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를 쓰는 것은 ‘어떤 상상의 색채를 입혀서 평범한 사물들이 비범하게 비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목적 하에 쓰인 시들은 그대로 워즈워스의 작가관을 반영한다.
보라! 들판에서 홀로
가을걷이하며 노래하는
저 고원의 처녀를,
멈춰 서라. 아니면 슬며시 지나가라,
홀로 베고 다발로 묶으며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귀 기울여라! 깊은 골짜기엔
온통 노랫소리가 차 있구나.
―「가을걷이하는 처녀」에서
이 세 가지 특성은 또한 1789년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찬미했던 워즈워스의 민주적 이념이 담긴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시인이란 무엇인가? 누구에게 그는 말을 거는 것인가? …… 시인은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1789년의 정신세계를 물려받은 시인의 시 세계에서 엿보이는 ‘자연 사랑’이 결국 ‘인간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은 그가 ‘평민의 생활’을 다룬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시에 내장된 이데올로기는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다는 예술적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
1973년 시작한 역사적인 <세계시인선>
44년간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온 시리즈
민음사 50주년 기념 리뉴얼 발간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 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 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품은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