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수집가 곽재식의 K-크리처 판타지
기상천외한 토종 괴물들을 소환하다!
◎ 도서 소개
드넓은 상상의 바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괴물 이야기
『크리처스』는 오랫동안 우리 전통 설화와 민담, 문헌 기록 속 토종 괴물들을 집요하게 채집해 온 괴물 박사(?) 곽재식의 야심작이다. 곽재식은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 주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 신비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토종 괴물들을 우리 앞에 소환시킨다. 곽재식 작가의 재기발랄한 입담이 다수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써 온 정은경 작가와 안병현 그림 작가를 만나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물, 『크리처스』 6권이 찾아왔다.
마귀침, 은산호와의 전투에서 간신히 승리한 소소생. 그런데 둘이 느닷없이 소소생을 두령으로 모시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닌가. 엉겁결에 천하제일 해적 자리까지 떠안은 소소생의 소문은 퍼지고 퍼져, 소소생을 쓰러트리고 천하제일 해적이 되려는 해적들로 보물 창고는 문전성시! 철불가는 소소생과의 대결에서 진 이들을 하나하나 부하로 거두어들이니 놀고먹어도 재물이 알아서 쌓이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강력한 힘, 끝없이 늘어나는 재물, 수많은 해적들이 우러르는 명예가 있어도 소소생은 여전히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고래눈이 보물 창고를 찾아온다. 소소생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래눈이 자신에게 고백 쪽지와 사탕을 줬다고 믿었으니 철불가의 만류에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고래눈의 차디찬 거절…! 그 싸늘함에 소소생의 불꽃마저 식어 버리고, 소소생은 평범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 한편, 얼음 도깨비가 된 흑삼치는 강력한 한기를 뿌리며 김해경으로 다가오는데……. 불 도깨비의 힘을 잃은 소소생이 과연 얼음 도깨비가 된 흑삼치를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도깨비로 만든 장동의 행방은?
『크리처스』는 마치 영상을 보듯 시청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소설이다. 쉴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들과 비장한 장면에서 돌연 팽팽하던 긴장감을 유머로 반전시키는 재치, 역사적 고증과 상상의 힘을 버무려 환상적인 세계관을 재현한 그림은 텍스트의 한계를 뛰어넘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10대 청소년은 물론, 새로운 한국형 크리처물을 고대해 온 팬이라면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선택일 것이다.
◎ 책 속에서
“해적끼리의 대결에서 패했으면 남은 건 죽음뿐이다. 그게 해적의 법칙이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데 지친 소소생이 타이르듯 말했다.
“설령 내가 천하제일 해적이 됐다고 치자. 그래서 뭐? 난 덕담꾼이지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아니야.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아.”
갑자기 마귀침이 한쪽 무릎을 꿇더니 말했다.
“두령!”
-p.21
“철불가만 좋은 거잖아요. 난 언제 사람이 되냐고요.”
“지금 네가 사람 대접 못 받니?”
“아뇨?”
“무시받고 사니?”
“아뇨…….”
“그럼 사람으로 사는 거 아니야?”
“어, 그렇긴 한데…….”
하여간 철불가의 말발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매일 결투를 벌였더니 천하제일 해적이라며 떠받드는 부하들만 늘어날 뿐. 이제는 무슨 생활 공동체처럼 오순도순 장보고의 보물 창고에 모여 살게 되었다.
상황은 언제나 소소생의 생각과 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상황을 반대로 저어 가는 사람은 철불가였다.
-p.43~44
소소생은 정말로 그 옛날 사포 시장에서 덕담을 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구박하고 욕을 해도 그때가 좋았다.
“만약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다가 보이는 작은 산에 집을 짓고 싶어. 거기서 시장을 오가며 덕담을 하는 거지. 덕담을 하고 받은 재물로 맛있는 음식을 사서 집에 돌아가면, ……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남은 하루를 보내고 싶어.”
소소생이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누구? 철불가?”
범이가 귀를 후비면서 물었다.
“미쳤냐? 내가 왜 철불가랑 살아?”
“그럼 철불가 말고 누구? 너 친구 없잖아.”
“친구 말고!”
“그래서 누구?”
“…….”
소소생이 뜸을 들이자 범이가 답답해서 가슴을 퍽퍽 쳤다.
“됐어, 말하지 마!”
“그게……. 조…… 좋아하는 사람.”
“누구?”
“고래눈!”
소소생은 두 눈을 딱 감고 질러 버렸다. 물을 마시던 고래눈이 소소생의 말을 듣고 철불가에게 물을 뿜어 버렸다. 범이 또한 마시던 과일즙을 입에서 주르륵 흘렸다.
-p.74~75
“시시하군.”
흑삼치가 이 비장과 박 한찬의 부하를 보며 말했다.
“신라의 바다는 이제 우리 것이니, 다음은 육지다. 김해경을 시작으로 신라는 육지와 바다가 전부 얼음으로 뒤덮일 것이다. 그리되면 온 세상이 내 것이 되겠지.”
얼음 도깨비가 되어 막강한 힘을 얻자 흑삼치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인간의 나약한 육신에 갇혀 있던 거대한 욕망과 차디찬 본성에, 그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더해진 것이다.
“가서 전해라. 얼음 도깨비들이 찾아간다고. 이번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울 것이라고.”
-p.98~99
“이 위기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지귀뿐이야. 얼음 도깨비의 상대는 불 도깨비니까…….”
소소생은 고래눈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저는 고래눈의 진심을 듣고 더 이상 불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짜로라도, 진심이 아니어도 좋으니, 저를 좋아한다고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절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말이라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신다면 다시 지귀가 될…….”
소소생이 주절주절 말하는 틈에 고래눈이 소소생의 옷깃을 잡아끌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
소소생이 눈을 번쩍 떴다. 소소생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가슴에서 화르르 시뻘건 불길이 일어났다. 소소생의 검은색 눈동자가 새빨간 색으로 변하더니 가슴에서 시작된 화염이 소소생의 온몸을 휘감았다. 전에 없이 강렬하고 밝은 불길이었다. 불 도깨비 지귀로 돌아온 것이다.
고래눈이 말했다.
“됐나?”
소소생은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온몸에서 폭발하듯 불길이 일었다. 꽃잎 회오리에 감싸인 것처럼 분홍빛이 일렁이는 불이었다.
“됐다마다요!”
-p.121-123
“소소생, 너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니? 지귀의 힘이 있으면 온 세상을 가질 수 있는데 정말 그걸 포기하겠다고? 모두가 널 두려워하고 경배하고 네 말에 복종할 텐데?”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전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보다 웃게 만드는 게 더 좋아요.”
소소생은 그렇게 말하며 푸른색 사탕을 입에 넣었다.
“에휴, 원래 안 웃겼는데. 뭘 자꾸 웃기겠다고.”
철불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