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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동쪽의 기담 상세페이지

강 동쪽의 기담

세계문학전집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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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0 전자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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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10.6만 자
  • 4.8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88954634809
ECN
-
강 동쪽의 기담

작품 정보

나가이 가후는 내 예술의 혈족(血族)이다. _다니자키 준이치로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선구자 나가이 가후의 대표 단편선 『강 동쪽의 기담』이 출간됐다. 가후는 모리 오가이, 우에다 빈 등과 친밀하게 교유하며 문단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당대 최고의 문학가였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문단의 총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근대 문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으며, 주로 화류계를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에도의 정서를 묘사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강 동쪽의 기담』에는 나가이 가후의 문학 세계를 잘 알 수 있는 단편 세 편이 실려 있다. 도쿄 변두리를 배경으로 시대적 변화에 물들지 않은 과거의 정취를 그린 「강 동쪽의 기담」,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갈등을 바탕으로 사라져가는 에도 정서를 묘사한 「스미다 강」,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자전적인 작품 「불꽃」 이다. 특히 「강 동쪽의 기담」은 최명희의 『혼불』에도 등장하는,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은 가후의 대표작이다.

<작품 소개>

근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에도 문화에 탐닉한 반시대적 탐미주의자
나가이 가후 대표 걸작선


메이지유신, 산업혁명, 일본제국 헌법 공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간토대지진과 만주사변, 세계대전……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일본은 그야말로 혼란기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나가이 가후는 유학파 고급관료인 아버지의 주선으로 중국,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한시 작가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 기예인 가부키와 하이쿠 등을 익힌 그는, 미국과 프랑스를 경험하면서 에밀 졸라를 비롯한 자연주의 문학에 깊이 경도되었다. 귀국한 그의 눈에 당시의 일본은 서양 문화를 어설프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천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나라에 불과했다. 그는 근대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향락적인 작품들을 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시 발표한 소설 『냉소』 『후카가와의 노래』, 외국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집필한 『아메리카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 등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탐미주의 작가로서 문단에서 위치를 굳힌 나가이 가후는 모리 오가이, 우에다 빈 등과 교유하고, 『미타분가쿠』의 편집인으로 일하며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사토 하루오 등 여러 작가를 이끌었다. 특히 가후의 「문신」 서평은 당시 무명작가였던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단숨에 문단의 총아로 끌어올렸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와는 문학적 성향이 비슷했던 탓에 친분 깊은 관계를 유지했고, 가후와 다니자키는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으로서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여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탐닉하고 갈구한 반면 나가이 가후는 직업여성, 즉 게이샤나 카페 여급을 다루며 그들이 상징하는 과거의 애상과 더러움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주로 묘사했다. 이런 가후를 두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가장 육욕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가장 탈속적인 태도로 쓰는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발표하는 작품마다 연이어 발매금지를 당한데다 대역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가후는 문학가로서 무력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스스로를 통속소설가의 위치로 끌어내리기에 이른다.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본디 추구하던 향락주의와 어우러지면서, 나가이 가후의 작품은 주로 화류계를 배경으로 에도의 정서를 묘사하는 과거지향적인 성향으로 굳어졌다.

시대에 따라 나가이 가후 작품의 테마와 경향은 변했지만 일관된 정신은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과거로의 회귀, 쾌락주의였고, 그는 이러한 정신을 은자적, 나아가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담아냈다. _정병호(옮긴이)

『강 동쪽의 기담』에는 나가이 가후의 이런 문학 세계를 잘 알 수 있는, 도쿄 변두리를 배경으로 시대적 변화에 물들지 않은 과거의 정취를 그린 「강 동쪽의 기담」과 사라져가는 에도 정서를 묘사한 「스미다 강」,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불꽃」 세 편이 실려 있다.

평생에 걸쳐 추구한 과거지향적 아름다움, 「강 동쪽의 기담」

「강 동쪽의 기담」은 나가이 가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과거지향적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다마노이는 도쿄의 변두리 지역으로, 아직 과거의 허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화자인 ‘나’가 만난 오유키 역시 번화가 카페 여급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머리 모양을 하고 기모노를 입으며 아직 순수함을 지닌, “구풍(舊風)에 속”하는 여자다. 겉모습만 화려할 뿐 온갖 위선과 추악함으로 가득찬 중심가를 벗어난 곳에 자리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적막하고 허름한 변두리 사창가. 가후는 이 다마노이와 오유키라는 몸을 파는 여성을 통해 시대적 흐름에 침범당하지 않은 세계를 만들고, 사라진 과거의 환영을 재현하고자 했다. 그 세계 안에서 시간은 격변하는 시대와 달리 느리게 흐른다. 피난처와도 같은 그곳에서 작가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정서와 가치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강 동쪽의 기담」은 나가이 가후의 화류계를 향한 애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 중 정점에 도달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사랑받은 작품이며,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도 「강 동쪽의 기담」이 언급된다.

“오유끼……좋은 이름인데……? 나가이 가후의 여인이로구나.”
(…)
‘오유끼’는 그 허무한 냉소주의자 나가이 가후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였다.
(…)
나가이 가후는 세기말 문예에 도취되어 그 아름다움을 글로 썼다. 그는 에도 예술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며, 향락 퇴폐의 풍조를 문단에 불러일으킨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의 향락주의는 인생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고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무너지게 하고 스러지게 하는 것들에 대한 무력한 증오가, 차라리 그를 냉소적인 시인으로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_『혼불 2』 (한길사, 1996)

사라져가는 에도 정서를 향한 갈망, 「스미다 강」

「스미다 강」은 나가이 가후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인 ‘에도 정서 지향’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아들이 학교 교육을 받고 출세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들은 게이샤가 된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가부키 극장의 배우가 되는 꿈을 키운다. 1900년대 초반 전통 문화와 서양 문물이 공존하면서 생기는 갈등 구조 안에서, 작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아직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스미다 강과 주변 거리, 그리고 소박한 애정과 전통 기예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는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다. 강압적이고 획일화된 근대적 욕망은 자유롭고 애상 가득한 전통 예인(藝人)의 마음을 짓누르고 괴롭힌다. 이는 고급관료였던 가후의 아버지와 실업가의 길을 버리고 글쓰기를 선택한 가후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제목에서도 가후가 추구하는 에도 정서를 엿볼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서양을 모방한 근대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에도 정서가 가장 많이 남아 있던 곳이 바로 스미다 강과 그 주변 거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가이 가후는 ‘스미다 강’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작품을 썼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에서 스미다 강과 그 주변 지역을 무대로 삼았다.

문학가로서의 자기 반성과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 「불꽃」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불꽃」은 나가이 가후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불꽃」의 화자는 전승기념일을 맞아 불꽃놀이가 한창인 날, 홀로 방관자 혹은 이방인의 위치에 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에 대해 술회한다. 그에게 이런 축제는 에도 시대 때부터 순수하게 전승해온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제례나 행사와는 달리, 서양을 모방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현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러 정치적 책략이 숨어 있는 소동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나가이 가후가 왜 현실을 등지고 통속작가로 자칭하게 되었는지 해명해주는 내용이 나온다. 1910년 말 대역 사건(大逆事件)이 일어났다. 가후는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런 사상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의 문학을 통속소설가들의 세계로 끌어내리고자 했다. 사회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며 근대 문명의 이방인이 되어 현실에서 유리되어가길 선택한 것이다. 그런 가후가 마침내 자리잡은 곳은 도쿄 안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사창가의 사람들 곁이었다.

소품이라고는 하지만 「불꽃」은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가후가 자신의 삶의 방식, 가치관을 표명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_후쿠다 가즈야(문예평론가)

<관련 서평>

나가이 가후는 내 예술의 혈족(血族)이다. _다니자키 준이치로

시정(詩情)과 문명비평과 현실관조, 세 면을 모두 갖춘 뛰어난 작품으로 근대 문학사에 독자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_문화훈장 수여 이유

사회적인 허위에 분노하고 자연 그대로의 인간성을 추구하는 것. 이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자 문학이 가야 할 길이리라. 가후는 문학 안에서 오래도록 그 길을 걸어왔다. _사토 하루오(시인)

자신이 살던 도시와 그 도시의 전통에 대한 굳건한 사랑을 품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을 고전적이고 일본적인 글로 아름답게 표현해낸 사람. _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일본문학 번역가)

가후는 시대에 등을 돌리고 방관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많은 문학자들이 할 수 없는 형태로 시대의 밑바닥에 흐르는 심정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_다케모리 덴유(와세다 대학 명예교수)

그는 에도 문학을 재발견하고 외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한, 위대한 선구자였다. _스티븐 스나이더(미들버리 대학교 교수)

가후는 소박한 문체로, 깊은 정취와 고전적인 우아함, 폭넓은 학식과 무한한 환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를 독자들의 마음에 흩뿌렸다. _피에르 포르(일본문학 번역가)

가후의 일본어는 경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워, 나는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_도널드 킨(일본문학 연구가)

한발 밖으로 나가면 살아서 움직이는 자들의 세계. 그러나 여기는 차갑고 고요한 사자(死者)들의 세계. 소설가로서 가후는 그 양면을 모두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_모치다 노부코(근대문학 연구가)

그의 향락주의는 인생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고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무너지게 하고 스러지게 하는 것들에 대한 무력한 증오가, 차라리 그를 냉소적인 시인으로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_『혼불 2』에서

작가

나가이 가후Nagai Kafu
국적
일본
출생
1879년 12월 3일
사망
1959년 4월 30일
학력
캘러머주 대학교
경력
게이오 대학교 교수
수상
1952년 일본 문화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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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동쪽의 기담 (나가이 가후, 정병호)

리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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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걸쳐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다. 일본은 근대화를, 서구 열강이 이룬 물질 문명을 따라잡아 부국강병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목적의식적으로 국가가 주도해 필요한 부분만 압축적으로 수용했다. 이 과정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안그래도 전통 가치의 해체와 새로운 가치의 수용이 가져온 혼란이 가득한데,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국가의 폭력마저 난무하자 이를 지켜본 몇몇 사람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만다. 이 책의 저자 나가이 가후가 그랬다. 이 책에 수록된 <불꽃>이라는 단편에서 가후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려 준다. 일본은 일차 세계 대전에 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의 요구로 참전했다.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도쿄에서 전승기념일을 맞아 불꽃축제가 열린다. 화자는 세상과 동떨어진 방관자의 입장으로, 1890년 대일본제국 헌법발포 축하제부터 근대화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축제와 사건을 돌아본다. 그의 세계관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회상 속에 나온다. 화자는 1911년 출근하다가 죄수들을 실은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1910년에 사회주의자 몇 명이 천황 암살을 계획했다 발각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수많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가 조작으로 검거되어 사형을 당한 ‘대역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이들이 이송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 일화에 대해 나가이 가후는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여러 세상 사건을 보고 들었지만, 이때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문학가인 이상 이런 사상 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되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정의를 외치고 국외로 망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세상의 다른 문학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문학가라는 사실에 스스로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후 나는 내 예술의 품위를 에도 시대의 희작자(통속소설가)들의 작품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담뱃갑을 차고 우키요에를 모으고 샤미센을 켜기 시작했다. 나는 에도 시대 말의 희작자들과 우키요에 화가들이 우라가에 서양 함선이 출현하든 사쿠라다몬에서 다이로가 암살을 당하든 그런 일은 서민이 관여할 것이 아니라고, 이러쿵저러쿵 아뢰는 것이 도리어 황송한 일이라고 넘기고 음서를 쓰고 춘화나 그리던 그 순간의 속마음을 어이없어하기보다 오히려 존경하려 마음먹은 것이다.” 가후는 원래 프랑스에서 산 적도 있고 에밀 졸라를 추종했다. 그가 이전에 쓴 소설은 졸라 풍의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졸라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 하층에 있는 통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는 가후가 자신을 ‘추락천사’로 여긴다고 느꼈다. 루시퍼가 신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천사들은 선과 악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천사들은 인간 세상으로 추방됐다. 이들을 ‘Fallen, 추락천사’라고 부른다. 그는 애초에 하늘에서 추락한 ‘천사’처럼 품위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층 통속의 세계로 내려가도 원래 자아는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지켜보기만 할뿐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자신에게 있어 타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바라보는 시선만 남는다. 그의 시선과 감각은 오로지 자신이 관심을 갖는 쪽으로만 열려있다. 그가 원래 ‘천사’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감각을 거부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아도 괜찮은 것이다. <강 동쪽의 기담>은 나가이 가후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이런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다. 첫 문장이 “나는 활동사진을 보러 간 적이 거의 없다.” 작중 화자는 활동사진(영화)도 보지 않고 라디오 소리도 피할만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감각과 정보를 차단한다. 그가 탐닉하는 대상은 창녀, 고서적, 옛날 느낌이 나는 거리다. 그가 고고하게 살 수 없게 만들었던 계기가 근대화를 밀어붙이는 일본 정부의 폭력이었다. 그는 근대화 이전 모습에 집착한다. 자신이 수치심을 느끼게 했던 정치적 사건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더러운 도랑 옆 골목에서 뒷골목 작부 오유키를 만난다. 그녀에게 화자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마음대로 생각하게 둔다. 이와 반대로 그는 그녀를 관찰하고 과거 이야기도 들으며 그녀에 대해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녀가 뮤즈로 작용해 잘 풀리지 않던 소설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 절대 동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래쪽 사람일 뿐이다. 그저 성욕을 풀고,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시선은 곧 권력이다”라는 말은 미셸 푸코가 근대 초기 원형감옥을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밝히면서 유명해졌다. 작중 화자와 오유키의 관계는 간수와 죄수의 관계 같다. 그는 오유키를 대상으로만 보고 자신의 시선에만 집중한다. 한편, 주체의 시선이 객체에 닿으면 객체가 주체를 바라보는 ‘응시’도 따라나온다. 그런데 그녀가 화자를 바라보는 ‘응시’는 그에게 다다르지 못한다. 화자는 그녀에게 거짓 자아를 내세워 응시를 회피했다. 원형감옥에서 죄수가 간수를 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자는 선입견을 앞세워 그녀의 미래가 어떨거라고 추정만 하고는 떠나버렸다. 그는 ‘추락천사’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개입하지 않고, 영향받지도 않는다. 여기에서 어떤 문학적 진실이 나타날 수 있을까? 세상을 관조하는 태도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은 철학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관조하는 태도를 지고의 경지로 여기기도 하지 않았던가? 삶과 예술을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진실을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주체의 (일방적인) 시선을 넘어서야 한다. 이 시선에서는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입자가 물질과 파동의 두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중성을 증명한 이중슬릿 실험을 떠올려보자. 누구도 지켜보지 않은 채, 입자를 이중 슬릿에 통과시키면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 두 슬릿을 모두 동시에 통과하는 파동의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 과정을 ‘관측’하면 입자는 알갱이처럼 하나의 슬릿만 통과한다. 어디를 통과했는지 위치가 확정된다는 뜻이다. 주체의 시선이란, 이 실험에서 관측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삶과 예술에서 진리는 확정된 위치에 있지 않다. 실험을 관측하지 않았을 때 생겨난 파동의 흔적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주체의 시선이란 그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지나지 않는 셈이다. 우리는 파동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횡단하여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본질을 알고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추락천사’가 인간 세상에 존재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는 동떨어진 주체가 아니어야 한다. 애초에 그가 원했던 바가 세상을 관조하는 상태라면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로서 세상을 부유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글쓰기를 보여준 작품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다. 이 두 작품에서도 인물 혹은 화자는 근대화에 상처입고 소설가를 지향한다. 그러나 가후와 달리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부유하는 객체로서, 세계의 시선을 받는다. 이들은 그 시선에 반응해 ‘응시’하며 정해진 길이 아닌 우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그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들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얻고 본질을 탐구한다. 그런데 왜 나가이 가후의 작품이 인기 있으며 추앙을 받을까? 가후의 글은 과거에 대해 추억어린 향수를 느끼게 한다. 문장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매끈하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 그러면서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관조적인 태도가 때론 멋지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는 삶과 세상이 내포한 진실과 본질이 없다. 이것들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려움이 없이, 그의 말대로 ‘게다를 신고 어슬렁’거리는 듯한 작품의 분위기가 친근감과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회색 분자에게 안도감을 준다. 자신의 비겁함을 알고 부끄러워 세상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이 가후의 글을 읽으면 위안을 받지 않겠는가. 나도 그랬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의 비겁함을 변명해도 괜찮다는 달콤한 위로를 얻었다. 한편, 가후는 자신과 동시대의 많은 사회주의자가 나중에 변절해 군국주의자가 되었을 때, 창녀들과 노는데 몰두했으므로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비겁한 도피가 변절을 예방한 셈이다. 변절자보단 비겁자가 더 낫지 않겠는가? 변절의 오명을 지닌 나는 가후가 부럽기까지 하다.

    kra***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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