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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내를 찾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검은 책>은 결국 한 남자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 뤼야가 사라지자, 갈립은 그녀의 흔적을 따라 이스탄불의 거리와 건물들을 헤맨다. 그녀가 읽었을 책을 뒤적이고, 그녀의 이복오빠이자 칼럼니스트인 제랄의 집에도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제랄의 글을 읽고,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의 옷을 입으며 점점 그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처음에는 뤼야를 찾기 위해 시작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뤼야가 아니라 제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마침내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에 이른다. 아내를 찾던 남자는 끝내 아내를 찾지 못하고, 대신 다른 사람이 되어 남는다. 이 변화는 사랑을 잃은 남자의 비극이라기보다, 사랑을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었던 사람의 붕괴에 가깝다. 갈립은 뤼야를 잃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뤼야의 남편이라는 위치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 왔기 때문에 무너진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그는 혼자서 존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제랄이라는 더 분명한 정체성 속으로 들어간다. 타인의 삶을 빌려서라도 자신을 유지하려는 그 선택은 절박하면서도 섬뜩하다. 이 모습은 <순수 박물관>의 케말과도 정확히 겹쳐진다. 케말 역시 퓌순을 잃은 뒤 그녀의 물건들을 집요하게 수집하며 그녀의 부재를 견디려 한다. 그러나 그가 붙잡고 있던 것은 퓌순 그 자체라기보다, 그녀를 사랑하던 자신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그 기억을 영원히 고정시키지만, 그것은 사랑의 보존이라기보다, 그 사랑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박제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이 두 소설 속 남자들은 사랑을 잃은 뒤 괴물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자기 자신으로 단단히 서 있지 못했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자를 사랑했다기보다, 그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또렷해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붙잡고 있었던 것에 가깝다. 그래서 여자가 사라진 뒤에도 그녀를 놓아주지 못하고, 그녀의 물건을 수집하거나,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검은 책>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왕자의 이야기는 이 문제를 개인의 차원을 넘어 문명의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익숙한 물건과 색깔, 책과 싸우며 ‘자신이 되기 위한 전쟁’을 벌이던 왕자는, 그것이 사실은 몰락해 가는 제국 전체의 전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되지 못한 모든 종족, 다른 문명을 모방한 모든 문명,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행복해하는 모든 민족은 몰락하고 사라질 운명’이라는 문장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자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존재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대목을 읽으며, 파묵의 소설 속 남자들이 왜 그렇게까지 타인의 삶에 집착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사랑을 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서구와 동양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의식해야 했던 세계의 불안과도 닿아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전통적인 세밀화가들이 서구의 원근법을 받아들이는 문제 앞에서 겪는 혼란 역시,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되는 존재론적 위기였다. 그들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묵의 소설에서 사랑은 언제나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선다. 그것은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을 통해 유지되던 자기 자신의 상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상실을 견디지 못한 채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거나,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는 인물들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채 다른 문명을 모방하며 살아야 했던 세계의 슬픔을 닮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잃고 무너진 남자들이라기보다,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가까스로 자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가깝다. 그 관계가 사라진 뒤에도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끝내 타인의 삶 속에 머무르는 그들의 모습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를 조용히 드러내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이 끝내 놓지 못했던 것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그 사랑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__________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믿을 수 없는 존재와 부재의 투쟁’을 한 지 십육 년 되던 때, 익숙한 물건, 좋아하는 색깔, 영향을 받은 책과 사투를 벌이던 어느 밤에, 창문의 서구식 블라인드 사이로 넓은 정원을 덮은 눈과 달빛을 바라보던 어느 밤에, 왕자는 자신이 벌이고 있는 전쟁이 사실은 자신의 전쟁이 아니라, 몰락하는 오스만 제국에 운명이 달려 있는 수백만 명의 불운한 사람들의 전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자의 인생 마지막 육 년 동안 서기가 어쩌면 수만 번 썼던 것처럼 ‘자신이 되지 못한 모든 종족, 다른 문명을 모방한 모든 문명,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행복해하는 모든 민족’은 몰락하고, 사라지고, 잊힐 운명이기 때문이다. 개정판 | 검은 책 2 | 오르한 파묵, 이난아 저 #검은책1 #검은책2 #오르한파묵 #민음사 #북스타그램
튀르키예의 역사를 기반으로 해서 소설을 꾸며나가기 때문에 절대로 읽기에 수월한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필요한만큼 그 노력에서 얻어지는 달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위대한 작가인 올하 빼리트 파묵의 책은 무조건 다 읽어야 하며 그의 소설 전집을 출판한 민음사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의 비소설 분야도 출판해 주었으면 합니다. 강추합니다.. 단지 좀 주석이 상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역사가 겹치는 소설이라서 주석이 매우 많이 필요한데 많이 좀 부족합니다. 보완해 주셨으면 이 위대한 소설이 더 빛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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