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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권마다 500 페이지에 육박하는 거대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을 읽었는데, 뿌듯하다는 느낌도 딱히 재미있다는 느낌도 없이 그저 마음에 너무 찝찝하다. 이런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더러운 느낌. 아 싫다. 여자가 제공해줄 수 있는 편의와 안락함, 자신의 자존심과 수준을 맞춰줄 수 있는 상대라는 이유로 빌붙어 사는 남자 캐릭터를 이렇게 긴 책이 끝날 때까지 마주하고 있어야 하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것도 남자 혼자서 꾸민 일이 아니라 주인공 이사벨이 존경하는 여인상으로 인정하고 아끼던 여인의 계획 하에 두 사람의 공모로 이루어진 일이었다니. 이 사실을 눈치채고도 사실을 알리지 않은 남자의 여동생까지 포함하고 보면, 정말 젊은 여자 한 사람을 둘러싸고 몇 명의 사람들이 빨대를 꽂고 있었던 건지 정말 참담할 지경이다. 가난하지만 꿈 많고 아름다우며 똑똑한 미국소녀 이사벨. 영국에 사는 이모와 이모부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건너와 양녀처럼 함께 살게 된다. 고루하고 답답한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합리적이며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이사벨은 부유한 영국 귀족과 야심많은 젊은 미국인 사업가의 청혼을 거부하고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사벨을 좋게 평가하던 사촌오빠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자신에게 돌아갈 재산 중 큰 몫을 이사벨에게 떼어줄 것을 요청하고, 그녀가 자신의 의지대로 성장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비밀리에 지원한다. 그러나 이사벨에게 큰 재산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안 마담 멀은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수도원에서 키우고 있는 오스먼드에게 이사벨과 결혼하라고 부추킨다. 도대체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며 따라갈 수가 없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 읽기 힘들었던 소설이었던 듯. 마지막에 사실을 다 알고나서도 남편인 오스먼드와 갈라서지 않고 사촌오빠의 임종을 지키고나서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는 이사벨의 결정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인다. 온통 의문투성이인 길고 긴 장편소설. 18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소설 중 하나라는데, 그닥 매력은 없었던듯. 니콜 키드먼 주연으로 1996년 개봉된 영화도 있는 모양이다. ____________ “난 네가 저지른 흔한 실수로 네가 계속 마음의 상처를 받을 거라고 믿지 않아.” “오, 랠프 오빠, 난 지금 무척 행복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그리고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는 말을 이었다. “비록 네가 미움을 받았다 해도 사랑받기도 했다는 것 말이야. 아, 이사벨, 사랑해!” 그는 들릴 듯 말 듯 숨을 몰아쉬었다. 여인의 초상 | 헨리 제임스, 최경도 저 #여인의초상 #헨리제임스 #민음사 #사기결혼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전반부 이사벨이 영국에 넘어왔을 때의 모습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나 행동들을 읽었을 때는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자유와 자신을 갈망하면서 나사가 하나가 없는 느낌이였습니다. 과연 메시지가 무엇일까 생각도 하였는데, 후반부 팬지의 본격적인 등장부터 몰입감이 최고입니다. 이사벨이 정녕 원했던 자신의 모습과 여러 흑막들이 벗겨집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해버린 모습을 느끼고, 젊은 날의 이상을 찾아서 노력하는 이사벨과 항상 진심을 다해 조언하고 걱정했던 랠프 터쳇이 최고의 캐릭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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