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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상세페이지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사육 외 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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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정보
  • 2021.03.18 전자책 출간
  • 2016.01.31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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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45.3만 자
  • 29.9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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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C뷰어
  • PAPER
ISBN
9791190885638
ECN
-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작품 정보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인류 구원과 공생을 역설하는 세계적 작가, 오에 겐자부로

“아직도 내 소설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윤리적 자세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개인적인 체험을 녹여 낸 소설에서 핵 시대의 지구와 우주의 관계를 그린 미래 소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보여 준 세계문학의 거장. 전후戰後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60년 가까운 작가 생활 동안 발표했던 모든 단편소설 중에서 직접 스물세 편을 가려 뽑아 고쳐 쓴 『오에 겐자부로 자선단편大江健三郎自選短編』(2014)이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스물한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직후 집필에 들어갔던 『만년양식집』(2013)을 마무리 지으면서 이로써 소설 창작을 마감한다고 선언한 오에는 “나는 어떤 소설가이고, 어떤 시대를 표현해 왔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우선 자신의 모든 단편소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오에 겐자부로 자선단편』을 엮는 일에 착수했는데, 그는 스스로 이 책에 ‘정본定本’이라는 위상을 지웠다. 성性, 정치, 기도, 용서, 구원 등 오에 문학의 주제가 응집된 한 권으로, 그의 평생의 궤적이 뚜렷하게 드러난 기념비적인 선집이다.
스물세 편의 작품들은 초기·중기·후기 세 시기로 나뉘어 실려 있다. 초기 단편들로는 1957년 《도쿄대학신문》에 게재된 「기묘한 아르바이트」와 1958년 상반기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사육」을 비롯하여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좌익 지식인 및 예술가들 양쪽에게 공격받은 「세븐틴」, 『개인적인 체험』의 또 다른 결말을 보여 주는 「공중 괴물 아구이」까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발표된 여덟 작품을 골랐다. 특히 등단 후 2년간 쓰인 단편은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암울한 상황에서 저항의 의지조차 품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젊음을 ‘감금 상태’로 해석한 독특한 작품들로 선명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중기 단편들로는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조용한 생활』『하마에게 물리다』 같은 1980년대와 1990년의 연작에서 열한 편을 골랐는데, 단편들을 겹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 풍성한 테마를 그리고자 했다. 이 작품들에서는 생과 사의 절실함이 압도적인 생생함을 띠고 중층적으로 전개되며, 오에가 평생 동안 문학으로 극복하고자 애쓴 삶의 명제들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후기 단편들로는 1992년에 발표된 「마고 왕비의 비밀 주머니가 달린 치마」를 비롯하여 1990년대에 걸친 네 편을 골랐는데, 이후로 그는 장편소설에 전념하게 되므로 전환점을 맞은 단편소설가로서의 오에를 만날 수 있는 시기이다.

반세기 이상에 걸친 작품 활동의 전모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오에 겐자부로 자선단편』의 또 다른 의미는 오에를 소설가로서 만들어 온 습관이 오롯이 배어 있다는 데 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한 문예지로부터 손질하여 싣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고, 이를 고쳐 쓰는 과정에서 ‘허무’라는 동일한 테마의 「사자의 잘난 척」이 탄생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를 다시 써 보자고 마음먹은 시점이 의식적으로 소설가가 된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일단 쓴 것을 계속 고쳐 나가며 내용이나 문체를 확정 지어 가는 습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에는 평소에도 일관되게 퇴고야말로 소설가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해 왔는데, 이 책 역시 상당한 가필과 수정이 가해졌다. 구두점의 위치와 어순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수식어를 많이 빼고 원래의 설정이나 내용을 변경하는 등 “세부를 적확하게 하고, 현재 사회를 살아가는 나 자신과 공생하는 언어의 감각으로 고쳤다”고 한다.

1935년 일본 시코쿠 에히메 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오에는 아버지의 죽음과 일본의 패전을 겪으며 불시에 사건은 벌어지고 자신과 사회가 이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런 혼돈의 와중에서도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민주주의 헌법과 교육 기본법이었다. 오에의 평생을 관통하는 평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바로 이 시기부터 형성된 것이다. 또한 오에는 고등학생 때 평생의 스승이 될 와타나베 가즈오의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읽고 ‘자유 검토의 정신’에 감명받아 와나타베가 가르치는 도쿄 대학교의 프랑스 문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하는데, 스승에게서 전해 받은 휴머니즘과 관용의 정신은 이후 오에의 삶과 문학의 버팀목이 되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 이후 잇따라 문예지에 소설을 발표한 그는 ‘오에 겐자부로라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나타나서 작가 지망생들이 붓을 꺾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960년대 일본 문단의 군계일학이었다. 등단 후 그는 특유의 역동적인 상상력을 토대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을 표현하되 이를 사회문제와 연계시키려는 작품을 계속해서 선보였고, 아쿠타가와상(1958 「사육」), 신초샤문학상(1964 『개인적인 체험』), 다니자키준이치로상(1967 『만엔원년의 풋볼』), 노마문예상(1973 『홍수는 나의 영혼에 이르러』), 요미우리문학상(1982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오사라기지로상(1983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가와바타야스나리상(1984 「하마에게 물리다」), 이토세이문학상(1990 『인생의 친척』) 등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일본 전후 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1963년 두개골 이상을 가진 장남 히카리의 출생은 그에게 새로운 문학의 경지를 개척하는 계기로 작용했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와 살아간다는 현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소설로 씀으로써 스스로를 상대화하여 현실을 일단락 짓고 앞으로 내디디는 힘을 얻게 했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삼은 『개인적인 체험』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일본 전후 세대의 문제를 인류의 보편적 문제로 확대한 작품으로서 세계문학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웨덴 한림원은 ‘시적인 힘으로 생명과 신화가 밀접하게 응축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현대에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양상을 극명하게 그려 냈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오에 겐자부로라고 하면 장편소설의 인상이 강하지만 그의 문학적 토양을 일구어 내고 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정 지은 것은 초기 단편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단편을 더듬어 가다 보면 각 시기에 쓰인 장편의 전개 방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 자선단편』은 그동안 오에의 작품을 선뜻 읽기 어려웠던 독자들에게 입문서와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세계문학 단편선>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장편소설 위주의 관습에서 벗어나 단편소설에 초점을 맞춘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그동안 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거장들의 주옥같은 작품들과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성과 발전에 불가결한 대표 작가들을 소개할 것이다. 아울러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문학의 변방으로 여겨져 왔던 나라들의 대표적 단편 작가들도 활발히 소개해 단편소설의 발전이 문화의 중심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의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스터리, 호러, SF 등 문학 장르의 분화를 촉진했는데 이러한 장르문학의 형성에도 단편소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한 장르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가들의 단편 역시 새롭게 조명할 것이다.
21세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편소설은 그리스 신화가 그러했듯이 삶의 불변하는 단면을 촌철살인의 관찰력과 응축된 예술적 형식으로 꾸준히 생산해 왔다.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린 칼로 베어 낸 듯 날카로운 인생의 다양한 단면들은 시공을 초월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새로운 문학적 기법과 실험의 도입을 통해 단편소설은 현재도 계속 진화, 확장되고 있다. 작가의 예술적 열정이 가장 뜨겁게 투영된 다양한 개성의 다채로운 단편들을 통해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통찰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작품은 독자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쁜 일상의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세계문학 단편선>은 중심을 잃지 않고 삶과 사회, 나아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본문에서

개들은 몹시 지저분했다. 온갖 종류의 잡종이 거의 다 모여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개들이 서로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대형견에서 소형 애완견까지 또한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간 크기의 비슷비슷한 잡종 개들이 말뚝에 묶여 있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닮은 것일까? 나는 개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볼품없는 잡종인 데다가 바싹 말랐다는 점이 닮았나? 말뚝에 묶인 채 적의라는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린 점일까? 우리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 적의라는 감정은 완전히 잃어버린 채 무기력하게 묶여 서로서로 닮아 가는, 개성을 잃어버린 애매한 우리, 우리 일본 학생. 그러나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일들에 있어 열중하기에는 너무 젊었든가 너무 늙었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 기묘한 나이였고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나는 개들의 무리에 관해서도 금방 흥미를 잃었다.
_ 「기묘한 아르바이트」에서

이 사자들은 죽은 다음 바로 화장되는 사자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조에 떠 있는 사자들은 완전한 ‘물체’로서의 긴밀성,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죽고 난 다음 바로 화장된 시체는 이토록 완벽한 ‘물체’가 되어 보지 못하는 거다. 그것은 의식과 물체의 애매한 중간 상태를 천천히 움직이던 중에 급하게 화장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는 완전하게 물체화될 시간이 없다. 나는 수조를 채우고 있는, 그 위험한 추이를 완주한 ‘물체’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확실하고 견고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이나 수조, 혹은 천창처럼 단단하게 안정된 ‘물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전율 비슷한 감동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래, 우리는 모두 ‘물체’다. 그것도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완전한 ‘물체’다. 죽어서 바로 화장된 남자는 ‘물체’의 양감, 묵직하고 확실한 감각을 모르겠지.
그런 거다. 죽음은 ‘물체’다. 그런데 나는 죽음을 의식의 측면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의식이 끝난 다음에 ‘물체’로서의 죽음이 시작된다. 순조롭게 시작된 죽음은 대학 건물 지하에서 알코올 용액에 잠겨 몇 년이고 버티며 해부를 기다리고 있다.
_ 「사자의 잘난 척」에서

당황한 어른들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며 채광창으로 지하 창고를 들여다보았다. 빨리빨리 자리를 바꾸느라 이마를 툭툭 부딪치며 난리가 났다. 지상의 어른들 태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처음에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돌연 조용해지더니 채광창에서 위협적인 총부리가 내려왔다. 검둥이 군인은 민첩한 동물처럼 나를 잡아채어 자기 몸으로 바짝 껴안고 총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다. 나는 검둥이 군인의 품에 감금되어 고통스러운 절규와 몸부림 속에서 이 잔혹한 상황의 의미를 모두 깨달았다. 나는 포로였다, 그리고 인질이었다. 검둥이 군인은 ‘적’으로 변해 있었고 나의 아군은 뚜껑의 저편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분노와 굴욕감, 배신당했다는 슬픔이 내 몸속으로 뜨거운 불길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포가 부풀어 올라 나의 목구멍을 막으며 오열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억센 검둥이 군인의 품속에 갇힌 채 불타는 분노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렸다. 검둥이 군인이 나를 인질로 삼다니……
_ 「사육」에서

나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선실 잡동사니와 그 그림자 속에서 유령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 눈을 꾹 감고 겁에 질린 채 잠의 공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잠이 들기 직전 나는 언제나 공포에 사로잡혔다. 죽음의 공포, 나는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죽음이 무서웠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실제로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이 짧은 생 다음에 몇억 년도 더 무의식의 제로 상태로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 이 우주, 그리고 또 다른 우주가 몇억 년이고 존재하는데 나는 그동안 죽 제로 상태다. 영원히! 나는 사후의 무한한 시간을 생각할 때마다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나는 물리 수업 첫 시간에 이 우주에서 똑바로 로켓을 쏘면 그 너머에는 ‘무의 세계’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고 만다는 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로켓이 결국은 이 우주로 돌아온다, 무한히 똑바로 멀어지는 동안 돌아오는 것이다, 라고 물리 선생이 설명하는 동안 기절하고 말았다. 오줌을 싸고 똥을 싸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공포에 질려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이 돌아온 다음에 엄습하던 수치심, 악취를 풍기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 견디기 어려운 여자애들의 시선…… 그러나 그보다도 나는 물리적 공간의 무한성과 무한의 개념으로부터 시간의 영원성과 죽음으로 제로가 되는 자신의 존재 등에 공포를 느껴서 기절하고 말았다는 말도 못 하고 선생과 반 아이들에게 내가 간질이라고 믿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로부터 나에게는 마음을 나누는 진실한 친구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없이 먼 곳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죽은 사람이라면 의식이 없으니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꿈속의 나는 무한히 먼 별에서 혼자서 눈을 뜨는 공포를 늘 의식하고 있었다. 악랄한 꿈 배급자의 간교한 발명이다. 죽음의 공포와 그 악몽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른 생각에 정신을 쏟으려고 악전고투를 벌이다가 비몽사몽 중에 회상에 빠져들었다.
_ 「세븐틴」에서

그 분노에 대해서 예를 들어 다카야스 갓짱의 망령이 나타나 ‘넌 결국 자기를 위해서도 타인에게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긴 여행을 와서는 여자 청중에게 무시하는 말을 듣고도 대답 하나 시원스럽게 못 하고, 여행 목적이었던 약속은 바람맞고 그러고도 상대방 원망도 못 하고. 그 얼간이 같은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거야’라는 소리를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무력감이라는 재에 파묻혀 있는 불같은 분노는 내 삶의 근본에 긴 세월에 걸쳐 장착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소설을 써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 경험을 소설로 쓰게 된다 해도 지금 내 속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제대로 그려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우리 아버지가 급사했던 나이에 가깝다. 세는 나이로 쉰 살의 아버지는 한겨울 밤중에 윗몸을 일으켜서 옆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너무 놀라 평생 두통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의 분노에 불타는 소리를 지를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마침내 홍수가 진 강에 거룻배를 타고 나갔다가 죽었다. 그 아들인 나 또한 어정쩡한 자신의 삶을 끝낼 때 불쌍하게도 분노의 고함만 지르게 되지는 않을까? 사후에 원자 혹은 분자로 이 세상에 동화. 그 평안을 가져다주는 죽음에 관한 사상도 우리가 젊은 시절부터 동정이나 하고 진지하게 상대하지도 않았던 그 다카야스 갓짱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 생각이야말로 분노의 고함에 더불어 면할 수 없는 죽음을 응시하는 그 최후의 순간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르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잘한 생각들도 어느새 뜨음해지고 나는 그저 분노의 덩어리가 되어 50미터 정도 되는 두 개의 방사제 둑 사이를 헤엄쳤다.
_ 「거꾸로 선 ‘레인트리’」에서

그런 H를 지켜보고 있는데 불쑥 2주 전에 그가 했던 말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확실히 스나가와로 가는 버스에서 친구들에게 ‘혼의 이륙’ 연습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시절 정형화된 일련의 꿈의 연장에서 본 또 하나의 꿈의 추억이었다. 숲 속 골짜기에 아이들이 모여서 여기저기 비탈에서 글라이더 활공처럼 지면을 뛰어가다가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연습을 했다. 죽을 때 혼이 원활하게 육체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혼의 이륙’ 연습인 것이다. 혼은 육체를 빠져나가면 골짜기의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의 껍데기인 유해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처리되는 걸 내려다보며 글라이더 활공을 계속한다. 그리고 더 큰 원을 그리며 올라가 골짜기를 둘러싼 숲의 꼭대기에 착지하는 거다. 혼은 숲의 수목 가운데서 오랫동안 머문다. 다시 새로운 육체로 들어가기 위해서 글라이더 활공으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날이 오기까지…… 이 죽음과 부활의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골짜기의 아이들이 비탈길에서 양팔을 벌리고 부웅! 하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혼의 이륙’ 연습.
이 꿈에 대해서 『동시대 게임』에 쓰지 않은 건 백혈병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H만큼 그 장편에 골몰한 동안의 나에게는 죽음과 부활에 관한 절실함이 없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H는 생애 최후의 비평에서 그 점을 지적해 주고 떠났다.
_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에서

작가

오에 겐자부로Oe Genzaburo
국적
일본
출생
1935년 1월 31일
학력
도쿄대학 불어불문학 학사
데뷔
1957년 소설 '기묘한 일'
수상
2012년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2002년 레지옹도뇌르훈장
1994년 아사히상
1994년 노벨문학상
1990년 제1회 이토세이 문학상 소설부문
1984년 제11회 카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1983년 제10회 오사라기시로상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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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 (오에 겐자부로)
  • 개정판 | 작가란 무엇인가 1 (파리 리뷰, 움베르토 에코)
  • 개정판 |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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