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부조리 문학의 최고봉
19세기 초 산업 혁명으로 과학과 기술과 도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자연과 인간을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늘어났다. 이러한 사상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고 반발한 것이 바로 낭만주의이다. 특히 낭만주의 문학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기보다 비현실적이더라도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풍부한 창작이 꽃피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 덕분에 낭만주의 문학 중에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발칙하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질 만큼 독창적인 재미와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이 많다.
세계 100대 영문학 중 하나로 꼽히는 장편소설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에드거 앨런 포, 너새니얼 호손과 함께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3대 거장이다. 이미 보물창고에서는 『너새니얼 호손 단편선』과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펴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낭만주의 문학의 정수를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멜빌의 또 다른 대표작 『필경사 바틀비』를 새롭게 출간하여 3대 거장의 작품을 고루 갖추게 되었다. 그동안 포와 호손에 비해 덜 알려진 멜빌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있던 국내 독자들은 물론이고 멜빌의 텍스트가 지닌 매력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던 일반 독자들에게 무척 반가운 소식이다.
『필경사 바틀비』는 미국 문학사상 가장 난해한 작품이자 실존주의를 드러내는 부조리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자본주의의 허점과 한계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192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중산층의 몰락과 경제 대공황을 예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형식이 아닌 다양한 비유와 상징에 있다. 세계 금융과 자본주의의 중심지이자 위선과 고독으로 가득한 월 가(歌)의 한복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선호하지 않음’으로써 거대한 사회의 흐름에 등 떠밀리는 자기 삶에 제동을 건 불가사의한 인물 바틀비에 대한 묘사는 인간 내면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멜빌의 심도 있는 고찰을 담고 있다.
작품 속 배경은 발전에만 급급해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당시를 그리고 있지만 그 모습은 마치 눈코 들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를 예견한 것만 같아, 독자들은 멜빌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필경사 바틀비』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미국 대학위원회 SAT를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대학교에서 필독 도서로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지닌 교양서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선호’한 멜빌의 역작
뉴욕 월 가의 한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던 화자(나)는 새로운 필경사로 바틀비를 채용한다. 하지만 이 정체불명의 사내가 근무한 지 3일째 되는 날, ‘나’는 황당무계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바틀비가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는 기상천외한 이유로 ‘나’의 지시를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바틀비가 ‘선호하지 않는’ 일은 늘어만 간다. 심부름에서부터 필사 일은 물론 급기야 사무실에서 나가 달라는 요구까지 거절한다. 과연 바틀비는 누구이며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3대 거장을 면면이 살펴보면 바틀비라는 캐릭터가 작가 허먼 멜빌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포는 편집자 겸 작가로서 당대의 비평가와 독자로부터 독특한 문학성을 인정받았으며, 호손 또한 멜빌이 존경과 질투를 동시에 느낄 정도로 성공한 작가였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달리 멜빌은 생전 자신의 문학 세계를 평단과 독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그의 작품들은 번번이 외면을 당했다. 호손에게 헌정한 것으로도 유명한 장편소설 『모비 딕』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독자들은 멜빌에게 그만의 철학과 사유가 담긴 작품보다는 선원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이 녹아 있는 모험 소설을 원했다.
멜빌은 독자의 기호와 자신의 기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자신이 선호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선호하지 않는 바를 강요당하던 시기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필경사 바틀비』다. 이 작품 또한 어려워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문예 잡지에 팔기 위해 쓴 것이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대중성과 자기 고유의 문학성을 고루 담아낼 수 있었다. 더구나 필경사라는 직업을 떠올려 보자. 복사기가 없던 시절에 등장한 직업인 필경사는 서류를 베껴 써 사본을 만드는 일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글자를 적어 내려가야 했던 바틀비의 쓸쓸한 어깨에서 가계를 위해 글을 써야 했던 멜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흐름과 현실의 규칙에 맞서며 살고 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 우리는 그 사이에서 선호의 차이라는 균열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틀비라는 캐릭터는 우리 자신을 형상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바틀비의 한계가 안타깝고, ‘선호하지 않는’ 태도에 기괴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끼며 ‘피라미드의 한가운데 갈라진 틈’을 비집고 돋은 한 포기의 풀을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클래식 보물창고> 시리즈로 마련된 『필경사 바틀비』는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이 공유했던 뭉클한 울림을 선사하며 더 나은 내일을 ‘선호’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주요 내용
화자인 ‘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 가(街)에서 비교적 손쉬운 의뢰만을 받는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안정적인 삶으로 정평이 나 있고 그러한 평가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바틀비라는 청년을 새로운 필경사로 채용한다. 바틀비는 허기를 면하듯 필경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3일째가 되는 날, 바틀비는 내 지시를 ‘선호하지 않겠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바틀비가 선호하지 않겠다며 거절하는 일은 점점 늘어간다. 심부름에서부터 본업인 필사 일까지 거부하고 급기야는 사무실에서 나가 달라는 요구까지 거절한다. 그렇게 바틀비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에 그저 머무르게 된다. 나는 바틀비를 이해하고 도우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바틀비를 내버려 둔 채 사무실을 이전한다. 그리고 얼마 후 감옥으로 이송된 바틀비를 찾아간 나는 그의 임종을 지켜본다.
▶ 차례
필경사 바틀비
역자 해설
작가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