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기소설은 신소설이 확보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위험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영웅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신채호는 역사·전기소설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영웅만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러한 그의 세계관이 형상화된 대표적 작품이 ≪을지문덕전≫과 <수군의 제일 거룩한 인물 이순신전>이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신채호는 역사적 인물의 영웅적 모습을 그리면서, 현재의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를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지도자의 출현을 욕망한다. 그는 민족의 구원자 모델을 역사적 영웅을 통해서 제시한다. 즉, 그는 고소설의 서술체와 전기류 작품의 수법으로 그의 민족주의 사관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작품 속의 영웅들은 탁월한 능력으로 수없는 장애물들을 해결하면서, 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 또한 그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법한, 완벽한 이상을 구현하는 다소 관념적인 인물들이다. 신채호는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개성을 배제한다. 대신 그의 세계관인 민중 혁명 의식, 민족의식, 민족사에 대한 자부심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외적에 대한 적개심, 무능한 조정에 대한 비판 의식,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갖춘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인물들이다.
을지문덕전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의 영웅적 생애를 다루고 있다. 과장되고 현학적인 문체로 역사적 영웅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총 15장에 걸쳐 작가의 자주 의식 고취 의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서론에서 신채호는 ‘떠돌이 도적떼’인 일본을 무찌를 수 없는 이유로 민족의 약함과 열등함을 지적하면서, 현재의 국가적 위기 상황의 극복 방법을 역사적 경험 세계에서 찾고 있다.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 위기 극복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영웅적 모델의 예는 을지문덕이다. 영웅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를 그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우리 민족이 영웅을 숭배하는 근성이 박약함을 한탄하면서, 나라의 영웅을 그 나라의 민족이 모른다면 나라의 힘을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영웅의 생애를 다룬 서사 진행 방식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제1장에서는 영웅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언급한다. 을지문덕이 살았던 고구려 영양왕 때는 우리 민족은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뉘어 전쟁이 잦았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외세의 힘에 밀려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고구려 조정과 중국과의 관계가 순조롭지 못해 국내 정세는 갈수록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처럼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기에 을지문덕은 필연적으로 영웅의 운명을 안고 출현한다. 제2장에서는 적과 투쟁해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초월적 구원자로서의 을지문덕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살수대첩에서의 을지문덕은 외세의 거대한 힘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한다. 그리고 영웅에게는 더 큰 시련이 있지만, 오히려 시련은 영웅을 더욱 영웅답게 한다. 을지문덕은 시종일관 외세에 저항해 ‘겨레의 절호한 모범’이 된다. 을지문덕의 영웅적 행적을 신채호는 제4장에서 자주적 의지와 연결시킨다. 자주 의식의 본보기는 바로 을지문덕에게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5장에서는 민족의 모범이 되는 을지문덕의 생애가 다만 살수대첩을 통해서만 알려진 것을 아쉬워한다.
신채호에게 영웅은 이상적인 인간상의 전형이다. 제6장과 제7장에서의 을지문덕은 외교적인 지략도 뛰어나 외세와의 관계에서도 지혜로운 책략으로 대응한 인물이다.
제8장, 제9장, 제10장에서 신채호는 을지문덕의 활약상이 역사의 기록에 짧게 언급돼 있지만, 그의 빛나는 자주적 의지의 진정성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신채호는 영웅의 전형적인 면모를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에게서 찾는다.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에서는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민족에게 주지시키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신채호에게 을지문덕의 영웅적 행적을 본받는 것은 외세 때문에 흔들리는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결론에서 신채호는 남에게 넘겨주어 우리 겨레는 발붙일 땅이 전혀 없다고 지금의 상황을 한탄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영웅의 출현을 간절히 소망한다는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수군의 제일 거룩한 인물 이순신전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영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을 그린 전기문 형식의 작품이다. 신채호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생을 서론, 본론, 결론의 논설 형식으로 구성했다. 총 19장의 회장체(回章體)로 영웅의 일생을 다루면서,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주제 의식을 형상화했다.
제1장부터 제4장까지는 이순신의 역사적 기록을 언급하면서, 영웅의 신비스러운 출생과 남다른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영웅의 고난 극복이 차례대로 이어진다. 위기에 휩싸인 조정과 간신들로 인한 시련은 영웅을 더욱 영웅답게 만드는 조건일 뿐이다. 이순신은 영웅담의 주인공이 갖추고 있는 뛰어난 능력과 모범적인 성품까지, 완벽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제5장부터 제10장까지는 전쟁의 위기 상황을 대비하는 이순신의 예지력, 거북선의 등장, 그리고 연속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다룬다. 제11장부터 제19장까지도 이순신의 영웅적 행적을 말한다. 동시에 영웅담에서 놓치기 쉬운 영웅의 감수성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또 영웅은 마지막 주검조차도 완벽한 모습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싸홈이 방쟝 급니 내가 죽거든 곡셩을 내여 군심을 경동치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신채호는 죽는 순간까지도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영웅의 숭고한 죽음을 통해 지금의 나약한 민족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한 영웅의 출현만이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결론에서는 영국 해군 넬슨 제독과 이순신을 비교한다. 신채호는 세계 위인과 이순신을 같은 위치에 놓으면서, 영웅의 명예는 그 나라의 존엄성에 따라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또 고통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드리오니 모든 이는 이를 모범으로 삼으라면서, 신채호는 제2의 이순신을 기다린다는 것으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것은 신채호의 영웅 출현의 소망 의지가 단순한 영웅의 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채호에게 영웅의 출현은 국민 모두가 영웅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